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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May 18. 2024

25년 지기 친구가 시한부여도 135만원은 받아야 해

남편은 중학교 친구와 10년 여가량 동업을 했다. 정확히는 친구와의 동업은 본인의 의사가 아니었다. '친척형'이 '남편의 친구'와 동업을 하기로 해놓곤 일을 못하겠다 가게에 와 난장을 부렸다.


이 일을 어쩌냐며 네가 괜찮다면 우리가 내려가는 건 어떨까? 조심스레 물어오는 남편에게 "그럼 우리가 내려가자" 했다. 미혼이었던 친척형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면 그렇게 난리를 쳤을까 싶은 측은지심이었지만 훗날 돌이키니 이 선택은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 이렇게 한들 도대체 누가 알아줬을까.  


첫아이는 돌잔치를 마친 직후였고 뱃속에는 둘째가 막 2개월 차에 들어선 채로 단출한 살림을 챙겨 충북으로 내려갔다. 남편은 겉으로는 호탕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중재자 같은 타입이다. 그리고 동업자는 많이 예민한 편이다. 남편은 그냥 두면 한없이 게을렀는데 반면 동업자는 아주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게으르고 속 좋고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 불평불만이 많고 예민한 데다 부지런한 사람과 일을 해야 했으니 그 안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 둘을 양육하고 있었고 동업자 부부는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가게가 어려울 적 우리는 아이들을 기르고 있었기에 동업자가 양보해서 조금씩 더 가지고 왔다고 했다. 남에게 신세 지는 걸 싫어하는 나는 그럴 때마다 "이거 나중에 다 정산해서 동업자 오빠한테 주는 거지?"라고 이야기하고 남편은 "그럼 다 적어놓고 있어" 하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회복되지 못한 가게를 터무니없는 헐값에 정리하고 프랜차이즈 사업에 직원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한 남편과 동업자는 빚도 반으로 나누었다. 정확히 어떤 비율로 어떻게 나눴는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공평하게 나누었다"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남편이 말한 그 '공평하게'에 그동안 우리가 한 번씩 조금 더 가져오던 돈이 포함되어 있는지 아닌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18년 동안 봐온 남편은 본인이 손해를 보면 보았지 친구에게 피해를 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련히 알아서 나누었겠지 싶었다. 


새직장에 들어가기 전 두통약을 먹어도 듣지 않는 두통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갔던 병원에서 덜컥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남편이 시한부 판정을 받고 가장 먼저 연락을 끊어야겠다 말한 사람은 동업자친구였다. 사실 일을 하는 내내 너무 힘들었다고, 정말 많이 힘들었었다 말했다.


 그전까진 힘들었던 남편의 속내를 전혀 짐작하지 못했었다. "동업자가 아르바이트생이나 직원들에게 싫은 소릴 잘해서 내가 나서서 애들에게 싫은 소리를 안 해도 되니 너무 편하다", "나는 게으르고 동업자 친구는 부지런해서 내가 맞춰가니 다행이다"란 식의 친구 칭찬만 했던 남편이었는데 본인의 인생이 뒤집히니 진짜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남편은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잠수를 탔기에 동업자가 연락될 수 있는 사람은 나와 어머님, 여동생이었고 동업자는 그 기간 동안 나와 어머님, 남편의 여동생에게 본인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남편을 얼마나 걱정하는지를 토로했다.


처음엔 우리 세명 다 그 연락을 받았으나 점차 계속 힘들다 이야기하는 전화와 문자를 피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아무리 힘들다 한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내 남편보다, 남편이 시한부 판정을 받아 새파랗게 어린 두 아이를 혼자 기를지도 모르는 나보다, 하나뿐인 아들이 시한부 판정을 받은 어머니보다, 하나뿐인 오빠를 떠나보낼지도 모르는 아가씨보다 힘들까.


동업자에게 돈을 달라 연락온건 총 세 번이었다. 당연히 장사를 하다 보면 소득세, 수수료 같은 부분이 발생한다. 더더군다나 오랜 기간 같이 장사를 했으니 다 나누었다고 해도 폐업을 한 이후에 발생되는 금전적인 부분이 있다.


남편은 동업자가 돈을 달라하면 한 푼도 빠짐없이 정확히 주라 몇 번이고 말했고, 그래야지 피곤하지 않아 진다고도 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너무나 당연히 돈을 주는 게 맞다 생각하고 있었기에 몇 달에 한 번씩 정리되지 않은 소득세와 세금을 달라는 이야기에 요구하는 금액인 350만 원과 42만 원을 보내주었다.


동업자는 본인이 얼마나 남편을 걱정하는지에 대해 말하면서도 돈을 달라했다. 그리고 내 귀에 뒤에서 들리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 동업자가 "내가 성찬이한테 못 받은 돈이 너무 많다"라고 이야기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빚도 나누었고, 돈 달라고 연락하면 군말 없이 꼬박꼬박 보내주고 정산 안된 돈이 있다면 바로 보낼 테니 얘기해라, 건강하라 덕담까지 나누는데 도대체 무엇이 그리 못 받은 돈이 많았을까? 그렇다면 차라리 너희 걱정에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고 냉정하게 못 받은 돈만 달라고 연락하지 싶었다.


작년 12월, 동업자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장사할 때 본인 보험으로 대출받았던 돈이 있었다며 본인이 최대한 해결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본인이 작년 의료, 연금 밀린걸 이미 230만 원가량 냈고 이거(보험대출 270만 원)까지 본인이 부담하기에는 힘이 든다며 이전에 가게돈으로 우리 집 세탁기, 건조기를 구매했다는 일을 들먹거렸다.


나는 즉시 남편에게 우리 집 세탁기와 건조기가 가게돈으로 샀었던 거냐고 물었다. 남편은 맞다고 했다. 나는 돈 달라고 연락 사실보다 그동안 본인이 못 받은 돈이 얼마인지 계산해 가며 이것까지 내가 부담하면 너무 손해일 거라 철저하게 계산해 연락을 행태가 속이 상했다. 그냥 차라리 얼마를 달라 단순히 얘기를 하면 나았을걸 상황을 재가며 득실을 따졌을 그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동업자 친구에게 이렇게 연락이 왔다고 말하니 남편은 눈을 감고 "이번까지만 보내주고 우리도 너무 힘들어서 앞으론 못 보내주겠다고 해"라고 했다. 그때 남편은 *악액질로 구역구토가 너무 심해 아무것도 못 먹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시기였었다.


나는 동업자에게 바로 돈을 보내고 "오빠 보냈어 사실 우리도 지금 성찬이 오빠 병원비로 카드값이 초과되어 돌려 막기하고 있는 상태야. 성찬이 오빠가 보험 되는 항암제가 이제 안 들어서 비보험으로 병원비만 500 넘게 나가. 오빠 상태가 안 좋아서 이번에 수술 할 수도 있거든. 그래서 보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거 같아"라고 답장했다.


상황 알면서 이런 일로 연락한 본인이 너무 면목이 없다며 다신 돈 보내달란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답장을 받고 오빠도 정산 때문에 어렵게 말 꺼냈을 텐데 미안하단 말은 말고 건강 챙기라고 말하는 것을 끝으로 동업자와의 연락을 마무리했다.


남편이 죽은 뒤 남편의 장례식에 초대받지 못한 남편의 친구들이 노발대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동업자 역시 본인한테 이야기하지 않은 것에 대해 섭섭함이 꽤 크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모든 건 남편의 의사였다. 남편이 그들을 자신의 장례식에서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그것 말고 또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악액질 : 암, 결핵, 당뇨 같은 내분비계 만성질환, 심장, 호흡기 병, 만성신장질환 환자에서 나타나며 칼로리를 보충해도 영양학적으로 비가역적인 체질량의 소실이 일어나는 전신 영양 부족 상태를 말한다. 영양실조나 기아(starvation)는 마르긴 해도 근육량은 유지되는데, 악액질은 단백질이 주요 성분인 근육이 현저히 감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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