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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Jun 01. 2024

남편을 팔아 번 돈이 입금되었다

"넌 나(내 이야기)를 팔아서 돈을 벌어"


작년 한 해동안 남편이 몇 번이나 내게 강조하면서 이야기했던 말이었다. 본인을 판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지, 우리의 이야기를 떠벌리기 시작하면 본인이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이 될지, 나는 어찌나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일지 알고는 하는 소리인지.. 이사 오면서 새로 샀던 짙은 오크색 나무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한 손엔 핸드폰을 쥐고 헤실헤실 웃는 남편이 눈에 가득 담긴다. 실없는 말을 해맑은 얼굴로 건네어오는 남편을 보며 이것이 저 사람이 내게 그동안 빚져온 죄책감을 더는 방법이겠거니 싶었다.


'나를 판 돈으로 남겨질 너와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작년 여름, 실제로 나는 남편의 이야기에서 사업 아이템을 착안해 정부지원금을 탔다. 의미 없는 유튜브 영상을 보던 와중에 알고리즘이 나를 정부지원창업으로 인도했다. 정부에서 돈을 받아 창업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던 나는 몇 개의 유튜브를 통해 정부지원창업 프로그램의 일정을 파악한 뒤  합격한 사업계획서를 구해 분석했다. 평소 나는 사람이나 현상을 가만히 지켜보며 분석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경영학 수업을 들어본 적도 관련지식도 전무한 나는 오로지 직감적인 분석만으로 사업계획서를 파헤쳤다. 사업계획서 한부를 제작하는데 합격사계서 분석, 통계자료 수집, 이미지 디자인, 서류 제작까지 꼬박 한 달이 소요되었다.


그렇게 처음 제출해 본 사업계획서가 신사업 창업사관학교 1차 서류, 2차 대면면접을 통과해 500만 원의 창업지원금이 나왔다. 남편으로 인해 사업아이템을 발견하고 처음으로 돈을 벌게 된 일이었다. 정부지원창업도 사업아이템도 글을 쓰는 일도 모두 어느 날 문득, 갑자기 떠올랐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너 같은 사람이 돈을 벌고 나 같은 사람이 살림을 했어야 했는데" 라며 지나버린 나날을 아쉬워했다.


에세이로 글을 쓰는 일도 나의 이야기가 터놓고 싶은 마음에 끄적거릴 곳을 찾게 되었고 언젠가 한번 귀동냥으로 들었던 브런치가 떠올랐다. 첫 번째 연재글을 올리던 날, 첫 라이킷을 지켜보며 발그스레 차오르던 달뜬 열감이 잊히질 않는다.


한편으론 신이 나면서도 한편으론 글쓰기가 두려웠다. 과거의 상처를 억지로 가라앉혀 뿌연 앙금(가루가 물에 가라앉아 생긴 층)으로 재워두었던 것을 글로 헤집어 현재와 섞이게 하는 일은 굉장히 많은 감정소모와 피로를 양분으로 요했다. 다시금 앙금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개운치 않은 감정)을 글로 토해내는 과정이 너무 괴로운 나머지 코가 다 헐어 엉망진창이 될 정도로 울었다. 글을 적다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으면, 눈물 콧물 범벅으로 휴지가 완전히 다 젖어 더 이상 적실곳이 없을 만큼 울다 다시 글을 적었다.


책상 가득 젖은 휴지를 쌓아가며 작성했던 글이 '남편이 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릴 자신 있어'와 '깨진 유리조각은 붙여도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아'  글이었다. 적던 글의 제목이 '남편이 죽어도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을 자신 있어'였는데 그렇게 표독스러운 제목과는 다르게 남편이 죽지도 않았는데 진창이 될 정도로 우는 여자가 나였다.

 

'남편이 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릴 자신 있어'의 글을 올리고 다음날부터 이상한 알림이 뜨기 시작했다. 조회수 1000 단위를 30분도 안 되어 돌파했다는 메시지였다. 처음으로 다음 포털사이트와 브런치 메인에 걸렸다. 제대로 된 글을 못한 써보지도 못한 초보가 이제 고작 네 번째 글을 올린 참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과분한 행운이었다. 글의 조회수는 순식간에 10000을 넘었다. 만이 넘은 이후부터는 2만, 3만 단위로 알람이 왔다. 자극적인 제목 덕분에 글의 조회수는 며칠 만에 9만을 돌파했다.


그 글을 적기 이틀 전, 남편에게  "여보, 당신과의 일을 글로 쓰고 있어. 우리가 좀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잖아? 오빠가 보고 싶으면 봐도 되는데, 상처받을까 봐 그게 좀 겁이 나네" 라 고백하는 나의 말에 남편은 "내가 상처받을게 뭐가 있어. 사실 그대로를 말하는 건데"라고 답하였다. 네가 나를 욕해도 돈으로만 연결되면 본인은 괜찮다고 말하던 사람. 나를 팔아서라도 글로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 말하던 사람.  


나는 그런 그에게 손사래를 치며 돈을 벌기 위한 속내로 글을 적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우리의 이야기를 터놓고 싶었노라고, 이렇게라도 숨을 트고 싶었다 말했다. 그대, 제발 살아요의 연재 후반부터 응원하기 기능이 활성화되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함은 아니었는데.. 나 너무 속물 같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양심은 저 멀리 제쳐두고 계좌번호를 입력했다.


남편이 퇴원한 지 3일 사이에 발작을 일으켜 구급차로 이송되며 겪었던 일을 적은 '내일, 남편을 다시 볼 생각에 설레네요' 글이 브런치 상단에 올라가 응원하기가 쏟아졌다. 당시 브런치 말고 어디에서 유입되는지 경로를 알기가 어려웠는데 병문안을 왔던 친정오빠와 새언니의 말이 카카오톡 브런치스토리 채널을 등록하면 오는 카톡광고에 내 이야기가 소개되었다고 했다. 신기해서 카톡을 캡처해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 후로도 나와 남편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기도해 주시는 분들의 애정과 관심을 받으며 연재를 이어나갔다.


"여보 나 후원받았다? 글 쓰는 거 있잖아. 거기에 응원하기 기능이 있는데 오빠랑 내 이야기 보고 응원하는 금액이 들어와~"


이때의 남편은 말과 행동이 어눌했지만 정신은 온전했었어서 "지짜(진짜)?'라는 말과 함께 동그랗게 뜬 눈으로 놀라워했다.


"오빠 팔아서 돈 벌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하더니 결국 진짜 돈이 들어오기는 하네"

우리 둘은 멋쩍은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첫 정산금이 입금되던 날은 아이들의 학부모 상담이 있었다. 처음으로 한부모가 되어 맞는 학부모 상담에 긴장감을 감추지 못한 채로 분주하게 화장을 하며 준비하던 중 응원하기 금액이 입금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그 순간 마치 하늘에 있던 남편이 내게 힘내라며 돈을 보내준 것 같았다. 그렇게 남겨질 나와 아이들을 걱정하더니만..


"하늘은 어때? 나랑 아이들 걱정 이제 그만하고 거기선 좀 놀아. 나 보기와는 다르게 생각보다 멘털 되게 강한 것 같다는 소리도 들었어. 기특하지? 내가 원래 들장미 소녀 캔디 재질이잖아ㅋㅋ 다 내려놓고 편히 쉬다가, 거기서도 쉬는 게 질려질 때쯤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 어떤 형태로 오든 내가 알아차리고 웃으며 반겨줄게. 거기선 부디 아프지 않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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