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인 재산조회를 했더니 남편의 빚이 나왔다
다 갚았다며?
남편이 사망한 지 정확히 한 달 뒤인 4월 18일에 안심상속 원스톱서비스(사망자 등 재산조회 통합처리)를 신청하였다. 날짜를 맞추고자 함은 아니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신청날짜가 그리되었다. 안심상속 원스톱서비스는 나라에서 진행하는 행정업무로 사망신고와 동시에 또는 사망일이 속한 달의 말일부터 6개월까지 상속인이 사망자의 금융거래, 토지, 자동차, 세금 등의 재산 확인을 위해 개별기관을 일일이 방문하지 않고, 한 번의 통합신청으로 문자·온라인·우편 등으로 결과를 확인하는 서비스로써 정부 24(www.gov.kr)에서 간단하게 신청이 가능했다.
신청버튼 마지막에 뜨는 팝업이 있다. 신청이 들어가면 즉시 사망자의 명의로 되어있는 모든 금융, 인증, 발급등의 업무가 멈추는데 그래도 진행하시겠냐는 메시지이다.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 잠시 내가 놓친 부분이 있을지 생각했다. 몇 분의 고민을 한 후 신청버튼을 다시 눌렀다. 이번에는 팝업메시지도 동의로 눌렀다.
다음 날 오전에 확인해 볼 겸 로그인을 시도해 보니 남편의 보험회사, 은행, 주식의 어플에 모두 들어가지질 않는다. 빨리빨리의 대명사인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사망자의 행정업무, 이마저도 빛처럼 빠른 처리에 왠지 모르게 놀라웠다. 이젠 남편의 이름으로 어떠한 인증업무도 할 수 없다는 의미가 믿기지 않아 놀라웠던 것도 같다. 이젠 행정상으로도 남편을 보내주어야 할 때였다.
안심상속접수가 되었다며 문자가 온 날짜가 22일이었고 23일부터 본격적으로 조회내역문자가 날아왔다. 사망자의 토지소유결과, 대한지방행정공제회, 근로복지공단 퇴직연금, 전국지방세 미납 및 환급금, 건설근로자공제회(퇴직공제 가입이력), 소상공인시장 공단 대출내역, 예금보험공사, 각종 은행의 예금/대출/공제/포인트유무, 과학기술인공제회, 대한지방행정공제회, 금융투자협회(증권계좌), 국민연금 대여금 채무, 한국예탁결제원, 한국대부금융협회, 국세정보, 생명보험협회, 군인공제회, 산림조합의 내역이 총 10일 동안 차례대로 수신되었다. 탈탈 털어 조회할 것이 더 이상 남질 않았는지 5월 3일 이후론 문자가 수신되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에 젊은 남자의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망자의 명의로 사업자 대출을 받은 이력이 있는데 혹시 알고 계시냐 묻는 전화에 당황한 기색을 미처 숨기지 못하고 "네? 남편이 다 갚았다고 했는데요? 남아있는 빚이 없다고 했는데.."라 답했다.
사업을 하며 받았던 대출과 코로나 때 생활비가 없어 받았던 대출 등의 빚은 남편이 본인의 진단금으로 모두 갚았다 알고 있었던 터라 더욱 당황스러웠다. 어느 통장에서 원금상환과 이자금액이 나가고 있었는지, 언제 받은 것인지 묻는 말에 아무것도 답변할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직접 은행으로 찾아가 관련서류를 내밀고 상담을 해야 답변드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이미 망자가 되어 은행기관을 찾을 수 없는 사람 대신 빚을 갚아야 하는 1순위 상속인이 전화로 알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단 채무금액이 1198만 원이란 것은 알 수 있었다.
그것마저 갚으려고 하면 지방에 있는 그 은행에 가서 직접 갚아야 한다고 한다. 편도로 2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다. 내 명의로 대출을 받아 본 적도 갚아본 적도 없는 나는 간단히 전국의 은행망을 이용할 순 없는 건가 하는 마음에 의아했지만 순응할 도리밖에 없었다. 알지도 못하는 빚이 나온 것도 당황스러운데 빚을 갚으려면 왕복 5시간이 넘는 거리를 가야 한다는 사실이 황당했다.
사망자의 채무에 관한 연체이자는 3개월간 면제가 되는지라 여름방학 때 충북에 놀러 갈 겸 가서 갚고 오겠다 말했다. 펄쩍 뛰며 '빚은 빨리 갚아버리는 것이 낫다'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돈을 갚는 일도 쉽질 않았다. 관련서류 내밀고 그 자리에서 그냥 이체하면 될 일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돈이 있는 은행에 가서 수표를 발행해 오라고 한다. 담당직원에게 어찌하여 일처리가 이렇게 불편하게 되는지 물었는데 현재 이자가 체납되어 있는 상태이고(남편 사망 전 1달치 미납) 여러 행정상의 이유 때문에 이체가 어려울 수 있단다. 이해하길 포기하고 주거래 은행인 신한은행으로 가서 난생처음 수표를 발행했다. 천만 원짜리 1장, 백만 원짜리 1장, 25만 원짜리 2장, 현금 50만 원을 인출해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우리은행으로 갔다.
전화상으론 확인해 드릴 수 없다, 답변드릴 수 없다 깐깐하게 굴던 것과 다르게 가족관계증명서와 사망진단서 두장의 서류만 확인하고 바로 빚을 갚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세상에 남겨 둔 남편의 흔적을 한 번 더 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