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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Jun 07. 2024

정부지원 창업을 포기합니다.

18대1의 경쟁률을 뚫었어도


재작년 남편이 뇌종양 진단받기 전 5개월이라는 잠깐의 시간 동안 건강식품 회사에 취직했었다. 그러나 대표의 폭언과 안하무인인 행동에 치를 떨고 자발적으로 퇴사하였으니 사실상 경력단절이 이어진 셈이었다. (물론 대표도 내가 어지간히 맘에 안 들었을 터이다)


그때 당시 왜 그만두냐 말하는 대표의 말에 '여기 여직원들이 그렇게 다 학을 떼고 도망갔었다면서요? 저도 여기 있다가 명 깎아 먹을까 봐 갑니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맙시다'라고 말하고 싶은걸 꾹 꾹 눌러 참고 무미건조하게 "남편의 일 때문에 이사 갑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실제로 퇴사하고 한 달도 안 되어 남편의 일로 이사가 확정되었다. 새빨간 거짓말이었으나 결론적으로 거짓말이 아니게 되었다. 이래서 말 함부로 하지 말라 하던가. 


그래도 그 과정에서의 깨달음은 있었다. 정부지원으로 되는 사업이 굉장히 많다는것. 그 회사는 지방에 몇 안되는 젊은 영농후계자가 대표였어서 각종 지원을 많이 받고 있었다. 입주해있는 공장 건물, 홈페이지 제작, 상세페이지 디자인, 인건비(인당160만원), 하다못해 문구류도 정부지원금을 타서 썼다.


그때부터 정부지원 창업과 사업에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재직당시 내가 같이 참여한 제품이 홈쇼핑에 진출하는과정을 보며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내 브랜드를 만들어 구상, 기획, 출시, 마케팅의 온 과정을 겪고 싶은 포부가 생겼다


작년 7.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신사업창업사관학교에서 500만 원의 창업지원금을 받아 시제품을 만들었다. 식용꽃 농장과 시제품을 제조해 줄 업체를 알아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각종 검색엔진을 넘나들며 검색을 했다. '건강식품 시제품 제조''식용꽃 농장'을 네이버에 검색해서 업체를 정리하고 구글로 넘어와서 다시 검색하면 네이버에선 나오지 않은 새로운 업체가 나왔다. 엑셀로 정리하며 농장과 공장에 일일이 전화를 돌렸.


만들고자 하는 제품의 콘셉트와 창업하려 하는 회사의 청사진을 설명하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으나  가장 큰 문제는 식용꽃의 가격이었다. 식용꽃을 말리면 부피가 10분의 1로 줄어드는데 그 말은 즉슨 1킬로의 건조 식용꽃을 만들기 위해선 10킬로의 생화가 필요했다. 농장마다 취급하는 식용꽃의 종류, 꽃마다의 가격, 출하시기등이 천차만별이라 최소 구매수량과 금액을 순차적으로 기록했다.


특히 오백만 원이라는 비용은 공장의 MOQ(공장이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최소로 제작해야 하는 물량과 비용) 기준을 충족하기에 턱없이 부족했고 묻는 족족 시제품을 제작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포기하지 않고 날마다 검색을 해 새로운 업체가 나오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북의 식용꽃 농장과 부산의 건강식품 회사에게서 긍정적인 답변을 회신받고 본격적으로 제품 만들기에 착수했다. 연구소에서 테스트용 분말을 보내면 맛, 향, 원료등의 함량을 미세하게 조정해 달라 요청했다. 연구업체에서 기본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횟수가 8회였는데 나는 총 11회를 반려했다. 내가 아주 세세하게 조정해 달라 해서 귀찮으셨을 만도 한데 열정을 높이 샀는지, 제품이 괜찮다 생각하셨는지 기본횟수보다 더 늘려주시겠다 먼저 제안해 주셨다.


우여곡절 끝에 시제품이 나왔다. IP디딤돌 사업을 통해 국가지원금으로 변리사와 특허신청을 마치고 유튜브를 보고 독학해 상표등록을 출원신청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주부가 내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이념으로 6개월 동안 이뤄낸 결과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가지고 24년 예비창업패키지와 신사업창업사관학교(창업준비금 대상자라 창업의 강제성이 없어 재도전 가능)에 도전했다. 서류 제출하는 시기가 남편이 이미 호스피스로 넘어왔던 시기라 제출할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도전하지 않고 후회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간병에 집중해야 해서 ppt제작할 시간이 없었으므로 광고회사에 다니시는 시매부(남편 여동생의 남편)에게 ppt제작을 부탁드렸다.

제출 결과는 예창 패는 1차 서류통과, 2차 면접 탈락했고 신창사는 1차 , 2차 합격을 해 최종선정이 되었다.



혹시 이도저도 안될 시 자그마한 꽃집이라도 차려볼까 말하는 내게 엄마는 "장사하면 너랑 연을 끊는다"라고 하셨다. 남편이 그리된 것도 장사 때문이라 생각하시고 내가 장사나 창업을 하면 아이들을 주말에 돌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셨던 엄마는 극단적인 말로 내게 압박을 가했다.


내가 준비하던 사업을 바라보던 지인들 중 또래는 내게 "한 번 도전해 봐. 포기하긴 아까워"라고 말하고 나보다 나이가 10살 이상 차이나는 이들은 "위험부담이 지나치게 크다" 말렸다. 정부지원금과는 별개로 MOQ에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하면 3000만 원 정도 자비가 들어가야 했다.


엄마와 나이 드신 분들은 최저시급을 받더라도 위험부담 없는 것이 최고라며 사업이 실패할 시 그 책임을 아이 둘과 감당해야 하는 현실을 말했다.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행동은 보여줄 수 있지만 잘된다는 보장, 그건 내가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네 꿈은 사치야"라고 말하는 엄마의 말에 내 꿈은 사치로 전락했다. 그 무엇의 뒷배도 없는 나는 그렇게 휴지조각으로 구겨진 꿈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머뭇거리는 사이 사업협약일이 다가왔다. 내가 포기를 해야 예비순번에게 내 선정결과가 넘어가는 걸 알고 있던 나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내 꿈이 다른 사람의 기회로 넘어가야 는 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이번 서울지역 신창사 합격생 ㅇㅇㅇ입니다. 혹시 이번 경쟁률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 잠시만요..(한참을 자료 뒤적이는 소리)

이번 경쟁률은 18:1이었습니다"


"아... 18대 1이요."


나는 다시 머뭇거리다 이윽고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이번에 신창사를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회 주셨는데 포기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전화를 받는 분께 사과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실 그 말은 나 스스로에게 사과하고  싶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이런 기회를 포기하게 되어 미안했다.


"아니요.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사유를 적어야 하는데 어떤 이유이실까요?"


"생계 때문에 현재 창업을 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렇게 나는 먹고사는 일 때문에 나의 브랜드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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