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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Dec 20. 2023

깨진 유리조각은 붙여도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아.

그 유리조각이 내 마음이야


시부모님이 합가설득을 위해 일주일에 세 번 방문하시고 간 그날,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별거 생각해 보자. 나 당신이랑 좀 떨어지고 싶어"

"나중에 카톡 할게"

"당신한테 선택권을 주는 게 아니야"


그렇게 나는 남편을 집에서 내쫓았고, 남편은 내 삶에서 내 쫓겨졌다.


그때의 상황이 어땠더라.. 하면서 2년이 지난 카톡을 뒤져보았는데 남편을 향한 서슬 퍼런 분노가 하늘을 찌를 기세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태풍에 범람하는 하천처럼 분노에 이성이 잠식된 게 분명한 그때의 나. 눈물은 기쁨, 슬픔, 분노, 환희 같은 감정의 형태에 따라 결정의 모양이 달라지는데, 그 당시 내 눈물의 결정은 잘 벼린 칼날처럼 기어코 이 사람을 상처 내겠다는 악과 독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짜낼 수 있는 만큼의 표현으로 최대한 상처받을 모진 말의 형태를 비수로 만들어 몇 번이고 남편을 찌르다가도


"나도 그렇게 상처 주고 십 년 지나서 '내가 이때까지 잘못했어 미안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제발 나도 진짜 더 이상 망가지기 싫은데 왜 자꾸 사람 독해지게 만들어 나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

왜 자꾸 사람 독기 오르고 못된 말 하게.. 나 진짜 순했던 사람인데 나 왜 자꾸 모질게 만들어 너"


 라며 소리 내어 통곡했다. 미움, 분노, 원망, 비탄, 통곡이 점철된 시간이었지만 남편을 내쫓음과 동시에 고요해졌다.

나는 드디어 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







헛다리를 짚었다.

(남편의 마음)


인정하지 않았다. 본인이 백 번 잘못한 건 맞지만 그 잘못의 크기가 별거라는 결과가 되어 돌아오는 게 억울했으니 '내가 지금 코로나로 돈을 못 벌어서 그러는 거야. 어떻게든 돈을 더 벌어야 해'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여기서 수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마음 약한 아내가 다시 집으로 들어오라 할 거라 믿었다.


1달, 2달.. 가게의 추운 창고에서 난로 틀고 웅크려 자고 있다고 해도 아내는 꿈쩍하지 않았고 몇몇 친한 친구들에게만 별거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해준 게 왜 없어! 그래도 그동안 적지 않게 돈 벌어왔고 가족 신경은 못썼지만 그건 상황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해외여행도 두 번이나 다녀왔는데.. 그땐 좋아했으면서.. 내가 돈을 못 버니까.. 그러니까 나를 버리는 거야'


처음엔 미안한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별거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감정은 뱀처럼 똬리 틀며 시시각각 변해갔다.

아내 편을 들어주지 못한 미안함과 가족들을 못 챙긴 후회에서 '내가 도대체 잘못한 게 뭐가 그리 많은데'라는 분노가 일다가도 끝내는 자괴감과 스스로를 향한 책망으로 술잔을 기울였다.

여전히 술을 먹지 않으면 잠이 들지 않았다.








 

내가 없으면 못 살 사람들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


나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남편과 엄마, 두 명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자명하게 알고 있다. 이 둘은 내가 없으면 목숨이 붙어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지 못한 상태의 비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현실은 정작 나 없인 못 살 그 둘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괴롭히는 두 명이라는 게 문제다. 남편을 향한 원망의 둑이 차올라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이젠 이 사람과 그만하고 싶다 했을 때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거봐 내가 뭐라 그랬어. 결혼하지 말라고 했지? 네가 선택한 거야. 그냥 참고 살아"


엄마와도 연을 끊었다.

득달같이 남편을 내쫓고 천륜의 엄마와도 연을 끊은 독하고 파렴치한 년, 그게 나였다.








깨진 유리조각은 붙여도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아.





이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해야 더 잔인하게 도륙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의 남편을 부르던 호칭은 "야""너""당신" 이렇게 세 개였다. "오빠가 오빠 같아야 오빠소리를 하지 연장자 노릇도 못하는 게 무슨 오빠야. 네까짓게" 라며 비아냥대기는 일쑤였고 "야" "너"로 시작한 마지막 호칭은 당신이었다. 가족과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남편만 쏙 꺼내 나와는 상관없는 '당신'이라는 호칭으로 심리적 거리감을 그었다. 남편은 실제로 야, 너라는 호칭보다 당신이라는 호칭을 가장 마음 아파했으니 상처주기 대작전은 성공이었다.


남편은 별거 이후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반성하는 척만 하려 했을 테지만 이 지경까지 이르게 한 원인이 본인이라는 자괴감과 책망이 자리 잡은 후에는 내 맘을 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때부터 집으로 모르는 배달이 오기 시작했다. 처음 2번가량은 배달의 주문자를 찾기 위해 매장으로 전화해 잘못 도착한 음식에 호들갑 떨며 "어쩌죠? 이거 제가 안 시켰는데요"라고 물어봤으나 남편이 주문했다는 걸 알고 난 후론 매장에 전화하지 않았다. 모르는 배달이 오면 그건 남편이 내 맘을 돌리기 위한 뇌물이었다.

 

어느 날은 커피, 어느 날은 달달한 마카롱, 어느 날은 조각케이크..

카페인 때문에 4시 이후에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내 철칙도 남편은 이 시기에 알게 되었다. 오늘은 애들 생각이 나 스파게티를 만들었다고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직접 배달을 오기도 하고,  

"일하고 오느라 힘들었지? 마카롱 보내줄까?" 라며 물으면 "그래" 한마디에 30분  기분을 풀 마카롱이 띵동 소리와 함께 현관 앞에 도착하곤 했다.


그러나 남편의 가상한 노력과는 다르게 별거철회는 이뤄지지 않았다. 남편도 답답했는지 노력하고 있는데 도대체 왜 안 받아주냐며 물어왔다.

  


"깨진 유리조각은 아무리 기를 쓰고 붙여도 깨지기 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어.

생각을 해봐.. 10년 동안 계속 금이 간 유리잔이 깨졌어. 깨진 유리는 무슨 짓을 해도 깨지기 전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거야.. 몇 달 동안? 그래 당신 노력했지. 근데 내 마음이 깨져버린 유리조각이야. 다시 붙일 수가 없는 걸 어떡해"


남편은 깨진 나를 되돌릴 수 없음에 좌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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