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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Dec 17. 2023

남편이 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릴 자신 있어

그대를 너무 미워하던 때


남편을 내쫓아 1년여 동안 별거를 하기까지 내가 그를 얼마나 미워했냐면, 

정말 남편이 내일 당장 죽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며 호언장담을 하곤 했었다. 뇌종양 판정받기 3개월 전의 일이었다.


"언니 난 진짜 남편이 내일 당장 죽어도 눈물 한 방울도 안 흘릴 자신 있어"


내가 얼마나 남편을 미워하는지 아는 언니는 그 모질고 못된 말을 내뱉는 날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을 향한 나의 분노와 원망을 그저 안타까운 눈빛으로 위로할 뿐이었다.





남편의 직업은 요리사다. 결혼 전이었던 25살부터 치킨, 호프집 장사를 하면서 밤낮이 바뀐 생활을 했다. 낮엔 잠을 자고 오후 4~5시경, 겨우 일어난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결혼 1년 차, 시댁의 주식빚을 갚기 위해 신혼 전세자금을 정리해 드리고 시댁으로 합가를 하게 되었다. 남편은 장사를 하며 낮에는 잠만 잤으므로 모든 육아는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첫아이 돌이 지날 즈음 지방으로 내려가 친구와 동업하겠다는 말을 들었고 친정엄마는 그렇게라도 나가서 살라며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온 날 지방으로 보내셨다.


연년생 둘을 40킬로 초반에 가져 27살, 28살에 연달아 낳고 매일 코피를 흘리는 걸 봐도, 남편은 아이들이 울 때 단 한 번도 나서서 안아주질 않았다. 남편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첫아이가 뱃속에서 발차기를 시작했다. 비로소 느낀 생명의 잉태는 형용할 수 없이 경이로웠다.

배가 불러오기만 할때는 모르던 감정이었다.

내 살속에서 생경히 느껴지는 생명의 동태(動態)는 내가 한명의 사람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알게하는 위대하고 고결한 경험이었다.


"이것 좀 봐 여보~애기가 발로 차!" 흥분을 감추지 못해 달뜬 목소리로 기뻐하며 그의 손을 가져다 내 배 위에 올려놓았다. 아이는 요동쳤다. 남편은 이게 뭐냐며 징그럽다고 손을 떼었다.


뱃속의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 달라하면 피곤하다 얼버무렸다. 심지어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들을 쳐다보며 "나는 애가 예쁜 줄 모르겠어 말이 통해야 예쁠 것 같아" 라고 계부가 할 법한 말을 하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남편은 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타고나게 부성애가 부족하기도 했을뿐더러 아빠로서의 모든 건 너무나 서툰 사람이었고, 사랑을 주는 법에 무지했다. 그마저도 본인 역시 아버지로부터 자식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을 배운 적이 없다는 핑계로 무마해버리곤 했다. 

제 자식을 유독 아끼는 부모들을 봐도 유난이라며 못마땅한 눈빛으로 흘겨봤다.


아이들은 점점 크고 아빠는 늘 잠만 자거나 부재중인 사람이었다. 때문에 딸이 유치원에서 가족사진을 그릴 때 남편을 제외하고  가족만 그리는 일이 생기기도 하였다.

나는 남편에게 그 그림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애들이랑 안 놀아주면 나중에 애들이 커서 오빠한테 안 가. 나중 돼서 후회하지 마"


가장으로서의 의무는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남편에겐 귀를 막은 것처럼 들리지 않는 소리였을 것이다. 일에 지쳐 집에 들어오면 술을 마셔야지만 잠이 온다는 핑계로 매일 소주 2병을 마셨다. 훗날 술은 남편이 암에 걸리고 가장 후회하는 일 중에 하나가 되었다.






나는 외관상 쾌활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속마음은 남편과의 관계가 내 인생의 발목을 붙잡는다는 생각에 불만족스러웠다.


매일 늘어난 옷에 기름 얼룩진 운동복만 입고 다니는 남편.

매일 소주 2병을 마셔야지만 자는 남편.

몸무게가 100킬로가 넘어버린 남편.

아이들의 소중함을 모르는 남편.



저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거야!



내 인생의 모든 불행은 온전히 이 사람 탓이었다.

여자로서, 아내로서 존중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내 삶이 너무 비참했다. 자기 연민에 가득 차 이혼하자는 얘기로 남편을 들볶기 시작할 때  이 상황을 모르시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다시 합가를 하자며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시부모님은 은퇴를 하시고 우리가 있던 지방으로 내려오신 동업하던 가게 2개 중에 한 개인 식당의 주방과 홀을 맡아 일해주셨다. 나도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있는 시간에 시부모님과 가게의 일을 함께 도왔다.


코로나로 외출이 적어지자 매출은 곤두박질치고 임대료만 나가게 된 식당을 정리하게 되면서 시부모님이 다시 도시로 이사를 가는 상황이 생겼다. 지금 너희들이 힘드니 살고 있는 집을 정리하고 같이 도시로 가서 살자며, 이미 아이들 방은 어디로 한다는 계획까지 마치고 나를 설득하러 오셨다.


그간 시부모님의 노력과 희생은 감사했지만 내가 당장 이 사람과 사네 못 사네 씨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합가요구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제발 찾아오시지 못하게 막아달라며 몇 번이고 남편에게 부탁했다


"나 어머님 아버님이랑 같이 살 자신 없어. 내가 거절 못하는 거 알잖아.

당신이 부모님 못 오시게 좀 막아줘"


"내가 하.. 엄마아빠를 어떻게 막아.."


"왜 못 막아! 오지 마시라고 나 힘들다고 같이 살 생각 없다고 하면 되잖아!!"


"내가 엄마한테 저번에 말했는데 자꾸 가시는 걸 어떡해.."


 "내가 싫다잖아.. 내가 싫다는데!

나는 우리 엄마 아빠가 당신이 싫다는 거 강요하면 제발 가지 마시라고 무릎 꿇고 빌 수도 있어!"


남편은 언제가 될지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먼 훗날의 유산 때문에 시아버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본인이 컨트롤할 수 없는 사람이고 어머니에게 가시지 말라 말했지만 두 분이 가시는 건 그건 본인으로써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했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네가 괜찮다면 같이 사는 건 어떻겠냐 물어본다.


남편은 항상 나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표면상으로는 내게 의사를 물었지만 부당하더라도 종국엔 내가 동의할 것이라 생각했으므로 결론적으론 내 의사는 상관이 없었다. 동업자와 일할 땐 동업자 눈치 보느라 나와 아이들은 뒷전이었고, 동업자가 투자를 더 많이 해서 미안하다는 핑계는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시댁 눈치까지 보느라 내게 희생을 강요했다. 나는 구석 끝까지 몰려 퇴로가 막힌 쥐가 된 기분이었다.


 시부모님이  설득하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을 우리 집으로 오신 날이 있었다.


나는 견디지 못하고 폭발했다.   



《당부의 말씀드립니다》


이 글은 남편의 허물을 들추고 욕을 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제 작가 소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죽음 앞에서 가족 간의 원망을 이해와 사랑으로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어리석었던 저희의 과거를 반면교사 삼으실 수 있길 바라면서 적은 글로 남편과 불화가 생긴 원인을 적기 위해 불가피하게 풀어낼 수밖에 없었던 에피소드입니다. 저의 이야기가 보시기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찬찬히 제 앞뒤글을 보시면서 절 욕하거나 남편을 욕하시기보다 넘어지고 일어나 서로 안아주고 다시 사랑하는 가족애를 풀어내려 했음을 보아주세요. 제 글을 다 읽으시고 비난하시는 분들은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앞으로의 비난댓글은 그냥 넘어가도록 할게요. 제 글과 댓글에 보시면 항상 건강하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정말 건강을 잃으면 되돌릴 수가 없더라고요.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건강하시길 소망합니다.


참고로 "깨진 마음이 붙었습니다"의 글은  포털사이트 메인에 오른 후 제 심정을 고백한 글입니다. 시간의 여유가 있으시다면 한번 읽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 깨진 마음이 붙었습니다 (brunch.co.kr)


2.  여보, 당신과의 일을 글로 쓰고 있어 (brunch.co.kr)


3. 브런치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p-live/41



해당 글을 연재하고 있는 브런치입니다

[그대, 제발 살아요]

https://brunch.co.kr/@p-live/11

https://brunch.co.kr/@p-live/20

https://brunch.co.kr/@p-live/4

https://brunch.co.kr/@p-live/5

https://brunch.co.kr/@p-live/28

https://brunch.co.kr/@p-live/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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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p-liv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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