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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Jan 11. 2024

마지막 가족여행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그가 화장실에서 돌아오기 전에 눈물을 감췄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붉어진 눈과 눈물로 젖은 뺨을 보이지 않으려 괜스레 먼 곳을 바라보는 척했다. 다행히 눈물도 적당히 눈치가 있었는지 적당한 때에 그쳐주었다. 첫 번째 가족사진이란 미션을 마치고 다시 여행길에 올랐고 목적지는 편도로 1시간 내의 을왕리 해수욕장이라 부담이 없는 거리였다.


그와 연애할 땐 참 많은 곳을 꽤 잦은 빈도로 여행했다. 주로 강원도 쪽으로 1박 2일 여행을 다녔는데 갈 때마다 아주 신나는 노래를, 아주 크게 틀어놓곤 흥얼거리며 운전하는 그의 옆자리엔 항상 내가 있었다. 나 21살 적, 그는 23살 적 시절. 여행지를 향하던 벅찬 설렘과 창문을 여니 얼굴을 때리듯이 스치던 시원한 바람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그 시간, 그 공간, 그 바람까지 기억 속에 박제된 것처럼 선명하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숨을 못 쉬어 심장이 뛰는지, 즐거워서 심장이 뛰는지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우린 그때처럼 아주 신나는 노래를, 아주 크게 틀어놓고 목적지를 향해 갔다. 16년 전엔 풋내 나는 '20대 초반의 연인 둘'이었지만 지금은 '단란한 가족 넷'이다. 뒷좌석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가 연애할 때 듣던 노래를 같이 부르고 있었다. 두려운 내일은 없는 것처럼 하나같이 모두 신나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셋이 침대에 널브러진 모습이 웃겨 사진을 찍어주곤 바로 호텔의 인피니티 풀로 올라갔다. 겨울의 바닷바람은 참으로 매섭다. 아이들과 남편의 추억 어린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물 밖에서 이를 덜덜 떨어가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카메라 속 사진의 프레임 안에 내가 들어가고 싶어지면 같이 찍자고 팔을 들어 올렸다. 짧은 팔을 최대한 뻗어가며 어떻게든 예쁘게 찍어보려 용을 쓴다. 마지막 가족여행 일지도 모르니 예쁘게 찍어주고 싶었는데 아이들은 엄마 속도 모르고 상황도 모르고 장난치느라 엉망인 표정을 일부러 만든다. 여기저기 도망치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다 짜증도 내가며 사진 찍기 급급했다.


어느새 인피니티 풀 너머로 발갛게 노을이 진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는데 해는 마음이 급한지 붙잡는 내 맘도 모르고 산 뒤켠으로 뉘엿뉘엿 넘어간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가족사진이 있다. 아이들 둘과 수영장 안에서 노을을 바라보고 있고 내가 그 뒷모습을 찍은 사진, 그 사진과 똑같은 구도로 찍어주는걸 마지막으로 따뜻한 물안에 몸을 담갔다. 그동안 좋지 않던 부모님 사이가 갑자기 좋아지고 바빠서 시간을 잘 보낼 수 없었던 아빠랑 같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신나는 것들을 잔뜩 하니 아이들은 "너무 행복해요.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라고 몇 번이고 말했다. 나는 다가 올 수술이 두려워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고 아이들은 행복해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한다. 각기 다른 이유이지만 우린 모두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여행에 와서도 약 먹는 시간은 정확히 지켜야 한다. 진통제와 각종 알약을 합치니 한 번에 털어 넣는 알약이 13알이나 된다. 그중 뇌부종을 줄여주는 덱사메타손을 8알씩 세 번, 총 24알을 시간에 맞춰 복용했는데 효과가 대단히 좋은지 두통도 말끔히 사라졌다.


간호사인 아가씨(남편의 여동생)는 남편의 발병 이후 상태를 관찰하기 위해 꾸준히 전화통화를 걸어왔다. 내가 물을 사러 잠시 마트에 들른 사이 남편은 여동생과의 통화에서 "나 수술 안 하면 안 될까? 약 먹으니까 하나도 안 아파. 내가 아픈 게 믿기지가 않아. 이렇게 약 먹으면 평생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 수술했다가 못 깨어나면 어떡해.."라고 말해서 아가씨를 울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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