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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Jan 14. 2024

마지막 가족여행 2

생각지도 못한 호의를 받았다


해가 산 뒤로 완전히 넘어가자 바람이 더 추워졌다. 슬슬 아이들이 배가 고픈 시간이라 수영을 마무리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숙소를 나왔다. 근거리에 해수욕장이 있었으나 추운 겨울저녁에 아이들과, 환자와 같이 걸어 나오기에는 무리라는 판단이 들어 차를 끌고 나와 2분 거리의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차를 댈 곳이 마땅찮았다.


식당을 이용할 손님 아닌 자, 식당 앞에 감히 주차할 수 없다. 호객하시는 할머님, 할아버님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다. 내 식당을 이용할 손님에게는 한없이 친절하지만 내 식당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불친절한 그곳의 섭리를 잘 알고 있는 터였다. 나에게 득이 되는 사람이 아니면 손바닥 뒤집듯이 내쳐버리는 그런 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이내 '에이 어디든 똑같겠지' 하는 맘에 아무 곳에나 주차하고 안내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리저리 재어보는 시간도 사치였다. 그런 고민은 시간이 있을 때나 하는 일이었지 우리에겐 시간이 없었다. 그런 고민을 할 시간을 아껴 하나의 추억이라도 더 만들어야 했다.




들어간 식당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여러 사람들이 내뿜은 호흡과 열기로 창에는 결로가 가득 차 흘러내리고 있었다. 두 개의 테이블이 비어있었지만 호객행위에 이끌려 들어온 손님들로 금세 채워졌고 그 중 우리처럼 가족단위로 온 손님은 없었다. 친구들과 놀러 온 남자들, 불륜으로 보이는 중년커플, 젊은 연인 등 여러 손님들이 저마다 한 테이블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간단히 식사만 하고 갈 요량으로 칼국수 4그릇을 시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 테이블 옆에 앳되어 보이는 젊은 커플이 앉아 조개구이를 시켜 먹고 있었다. 나도 내 앞에 있는 이 사람과 연애할 때 조개구이 먹으러 이 해수욕장을 몇 번 왔었다. 다른 건 몰라도 조개구이 먹을 때만큼은 절대로 내가 손을 대지 못하게 했었다. 조개가 익기 시작하면 끝이 날 때까지 내 앞접시에 쌓이는 조개 살만 쏙쏙 골라 먹으며 행복하게 웃던 어린 날이 생각났다. 같은  공간인데도 어린날의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왠지 씁쓸한 웃음이 나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식당에는 할머님 두 분이 서빙을 하고 있었다. 주문을 받고 갔다가도 다시 돌아와 묻고 우리 테이블 음식이 아닌데 가져다주질 않나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몇 번의 실수 끝에 우리가 시킨 음식이 나왔는데 남편은 가격이며 양이며 맛도 형편없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나도 아쉬웠지만 나마저 툴툴거리면 마지막 여행을 망쳐버릴까 봐 '그냥 먹자' 달래 가며 식사를 시작했다. 몇 젓가락 뜨던 딸아이가 콘치즈가 먹고 싶다고 한다. 할머님이 서빙 실수로 옆테이블에 콘치즈를 두 번 가져다줬다 하나를 다시 가져갔는데 그걸 보곤 먹고 싶은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콘치즈는 조개구이나 회를 먹는 테이블에 주는 음식이었으니 칼국수를 먹고 있는 우리에겐 해당사항이 없었다. 조금 망설이다 할머님에게 조심스레 여쭤보았다."할머님, 아이가 콘치즈가 너무 먹고 싶다고 하는데 저희가 비용을 지불할 테니 하나 가져다주실 수 있나요?" 할머님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바빠서 안돼" 


남편의 볼멘소리까지 달래 가며 시작한 식사였는데 후회가 되었다. 처음부터 잘 알아보고 들어올걸. 조금만 더 친절한 식당을 찾아볼걸.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 탓으로 느껴졌다. "먹고 싶은데.."아이는 중얼거리며 울상이 되었다. "엄마가 집에 가서 꼭 해줄게 조금만 참자" 말하면서 내 마음도 울상이 되었다. 저 콘치즈가 뭐라고 딸아이 기를 죽이고 우리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여행을 이런 기분으로 망쳐야 하나 속이 상했다.


그때 옆테이블의 아가씨가 말을 걸어왔다."저기.. 이거 한 번도 손 안 댔는데 드시겠어요?" "어유 아니에요~~ 드셔요 저희 괜찮아요"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저희 이거 정말 안 먹어서 그래요. 드세요" "아이.. 그래도...""정말 괜찮아요" 웃으며 건네어오는 호의를 세 번 거절할 순 없었다. 고개를 숙이며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 들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젊은 연인은 우릴 보며 웃었다. 그리곤 서로를 마주 보며 다시 싱긋 웃었다. 내가 저 나이 때 아이를 가진 부부를 보며 우리의 미래를 상상했듯이 저 연인도 우리를 보며 미래의 모습을 상상했을까?



계산을 하며 음료수 두 잔을 더 계산했다. 그리고 우리가 간 다음에 저 젊은 커플의 테이블에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다 혹시 가게에서 전해 주지 않고 떼어먹을까 노파심에 아가씨에게 말을 걸었다."너무 감사해서 음료수 두 잔 계산해 놓았어요. 꼭 드세요""아 안 그러셔도 되는데""아니에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아이가 먹고 싶은 걸 먹었어요""잘 먹을게요. 저도 감사합니다" 쑥스러워하는 아가씨에게 눈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자칫 나쁘게 기억될 수 있던 여행의 불편감은 이름 모를 친절한 여행객의 호의에 의해 불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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