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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Dec 09. 2023

그대, 제발 살아요

39세에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은 남편, 그 옆에서 적는 간호 에세이



여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 이제 우리 아이들이랑 잘 살아야 하는데 행복해야 하는데..



남편의 뇌종양을 처음 발견한 날, 나는 시청에서 진행하는 하루짜리 단기 알바를 하고 있었다. 마술사가 화려한 몸짓으로 동네 어르신들의 혼을 쏙 빼놓는 행사가 슬슬 마무리되며 정신없던 5시쯤. 남편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왜 전화했냐며 짜증 섞여 받았던 그 전화에서 남편은 조금은 어안이 벙벙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병에 걸려 미안하다고..


한때 그를 너무 미워해서 이혼도장을 찍어달라며 1월 1일에 이혼서류를 내민 적도 있었고, 남편과는 못살겠다고 집 밖으로 쫓아내 10개월간 별거를 한 기간도 있었다. 어느 날 초등학교 3학년 아들에게

"아빠도 사랑하지만 아빠는 집에 별로 없어서 아빠보다 엄마를 더 사랑해요"라는 말을 듣곤 내가 아이들에게 아빠의 자리를 빼앗는 느낌이 들어 다시 살기로 결심했다

마음을 바꿔줘서 고맙다고.. 받아줘서 고맙다고 말한 남편은 3주 만에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이혼 결심, 별거, 4기암 판정까지 이 모든 일은 1년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앞으로 아이들과 가족들 생각만 하며 살아가겠단 희망에 부풀었던 그대는, 이젠 파서 다행이라며 아파서 가족의 소중함을 더 알게 되었다 말한다. 세상에 암에 걸려서 행복한 사람은 자기밖에 없을 거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그 말이 단지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없는 진심이었음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대, 한때는 내 인생에 사랑을 처음 알게 해 준 사람이었고

그대, 그때는 내 인생을 가장 힘들게 만든 사람이었고

그대, 지금은 내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사람


그래.. 그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내 인생을 걸쳐 모든 시간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매일 남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하는 말

"아프지 마.. 아픈 거 다 날아갔으면 좋겠다"


울다 웃다 그렇게 써 내려가는 당신과 나의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건강에 좋다는 어싱 맨발 걷기, 건강에 좋다는 건 다 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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