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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Dec 10. 2023

"언니 나 너무 무서워"

내 감정이 물에 물감 탄 듯 번져 나갈 때



언니 나 너무 무서워




11월의 어느 날,


일어나지 못하고 근 이틀은 누워서 밥 먹는 것 말고 아무것도 못하던 남편을 보며 왈칵 눈물이 흘러나왔다. 제일 친하게 지내며 의지하던 언니에게 무작정 무섭다고 말을 걸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도 않는 카톡창을 부여잡고 설명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언니의 나도 무섭다는 말이 왜 그다지도 위로가 되었을까



그래, 내가 무서워해도 되는 일이구나

내가 강한 척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무섭다는 감정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울어도 된다는 안도의 마음은 도화선이 되었다. 아들 방에 주저앉아 끅끅 소리를 삼키며 울어댔다. 울 때는 반드시 소리 없이 울어야지만 한다. 남편이 자고 있는 안방까지 나의 흐느낌이 닿지 않도록 빌면서..

내가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의 감정의 불안을 남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으리라





남편이 아프고 난 뒤 엉엉 소리 내며 울었던 일은 내 기억으론 4번이 채 안 되었다. 그리고 날은 남편의 악성뇌종양 판정을 받은 날 이후 가장 크게 울었던 두 번째 날로 기억한. 


남편의 얘기를 담담히 말하는 나를 보며 당황해하던 20년 지기 친구들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지금 이 친구에게 무슨 표정으로 무슨 위로의 말을 해야 할까' 라던 얼굴이랄까.    


이러한 상황에도 설거지를 하며 춤을 추기도 하고 아이들과도 깔깔거리고, 베트남에서 시집온 외국인 며느리를 흉내 내는 개그우먼을 꽤 높은 싱크로율로 따라 해 남편의 감탄을 자아내며 웃음보를 터트렸다.


매일같이 남편에게 철없이 조잘거리며 농담을 건네고 "그래~ 역시 내가 있어야지 웃지? 연애할 때부터 내 개그를 너무 좋아한다니까? 으구~ 그때 이혼했으면 성찬이 어쩔 뻔했어?!"라고 당당하게 너스레를 떨면 남편은 "그래~그러니까 말이야"라고 대답하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나는 그 일련의 행위에서 아픈 남편을 웃겼다는 나름의 성취감을 느꼈다. 그래 이 사람에게는 역시 내가 필요하구나.






22년 12월, 첫 번째 수술을 성공적으로 했다. 이후 남편은 놀랍도록 정상인과 같은 생활을 이어 나갔다. 우린 낚시도 다니고 계곡에도 놀러 다니는 시간보냈다. 이때까지 못했던 것들을 다 해주고 싶다며 모든 가사활동을 남편이 도맡아서 했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으나, 두 번째 개두술을 하기 전인 8월부터는 급격하게 상황이 나빠짐이 눈에 보이게 되었다. 판정받기 전에 남편은 100킬로에 육박했었는데 11월 감마나이프 수술까지 총 세 번의 수술을 감행한 이후 68킬로까지 떨어져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태였다


누워있는 남편을 보며

'저렇게 누워있다가 다시 못 일어나면 어떡하지?

'엊그제는 나와 저녁 산책도 했는데 일어나는 거지?'

'뭔가 잘못되었을까?'

'아..저녁산책을 할 수 있었던 때가 차라리 상태가 좋았던 것이었구나!'


불현듯 떠오르게 된 두려움은 감정의 기폭제가 되어 생각의 꼬리를 물며 나를 삼키고 있었다.





그래도 툭툭 털었다.


소리 죽여 20분을 실컷 울다 보니 많이 가라앉은 마음으로 시원하게 울고 왔다고.. 나 이제 괜찮다고 언니에게 말하곤 눈물 젖은 손을 바지에 쓱쓱 비비며 닦아댔다. 마음을 털고 싶었던 것처럼 바지에 붙은 먼지를 터는 시늉을 했다.


며칠 뒤 남편이 기운을 차려서 다시 산책을 나가게 되었을 때


"여보 사실 나 여보가 이틀 동안 아무것도 못했던 그날 울었었다~? 오빠가 못 일어나고 계속 누워있으니까 너무 무서운 거야. 이틀 전에는 산책도 했는데 왜 못 일어나지~? 하면서~~ 근데 내가 운 거 오빠가 알면 속상해할까 봐 티는 안 냈었어 헤헤헤"


터지는 울음은 꼭꼭 숨기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이미 지난 일이니 솔직하고 싶은 아이러니한 감정에 말이 흘러나왔다. 남편은 그런 일이 있었냐며 주머니 속에 맞잡은 내손을 꼭 쥐어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손을 잡고 따스한 햇빛이 얼굴에 비치는 오후를 걸었다. 며칠 만에 걷는 날이었다





에 물감 탄 듯 번져 나갈  물에 물감 탄 듯 번져 나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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