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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Dec 21. 2023

사람이 안 하던 짓 하면 죽는다는데

말이 씨가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남편을 보며 처절하게 퍼부었던 악담이 전부 씨가 되었다.


"너 이렇게 애들이랑 안 놀아주면 고등학생 되고 다 컸을 때 너한테 안 가"

"야.. 사람이 안 하던 짓 하면 죽는데"

"그렇게 몸 안 돌보고 일하면 나중에 크게 아파서 후회한다"



남편은 별거를 기점으로 나를 꼬시려 노력했을 때만큼이나 내 맘을 돌리기 위해 애썼다. 신혼 때부터 남편한테 더도 말고 딱 꽃 한 송이만 사달라고 부탁했었는데, 그때마다 남편은 갖은 핑계를 대며 사주지 않았다. '퇴근할 때 새벽이라 꽃집이 문이 안 열었다''출근할 때는 바빠서 살 수가 없다''주말이라 꽃집이 안 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받고 싶은 건 남편이 날 위해 꽃집을 들려 수줍은 얼굴로 "아내 줄 꽃 한 송이 포장 해주세요"라 말하고 투명한 포장지에 소박하게 담긴 꽃 한 송이를 들고 오며 내가 좋아할 모습을 상상해 웃음 짓고 집으로 귀가하는, 딱 그 정도의 관심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별거 중에 남편이 꽃 한 송이를 사들고 왔다.


그렇게 바랄 때는 모른 척하다 내가 떠나갈 것 같으니 그제야 내 말이 생각났겠지만 이미 뒤틀리고 깨져버린 내 마음은 남편의 노력과 관심이 영 하찮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급하게 생각나 근처 들를 꽃집이 없었던지 빵집에서 파는 조악한 가짜 꽃을 들고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식탁에 내려놓는다.  차가운 시선으로 남편이 사들고 온 꽃 한 송이를 멍하니 바라보다 낮게 읊었다.

"이미 늦었어"

꽃은 3일 정도 방치되다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남편이 처음으로 혼자 아이들 둘을 데리고 몇 시간 동안 놀고 오겠다고 한다.

근처에 대학 캠퍼스가 있는데 주말에 아이들과 산책도 하고 놀면서 시간을 보내고 오겠다며 넌 집에서 쉬고 있으라 권했다. 나는 그러든지 말든지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니 남편은 어설프고 투박한 손길로 아이들 옷을 챙겨 입혀 3학년 아들, 4학년 딸과 함께 외출을 나섰다. 중간중간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다고 보내줬는데, 어설프게 준비했으니 애들 머리는 산발이고 색은 뒤죽박죽인 옷을 입혀 그지꼴이 따로 없는 얼굴로 셋이 좋다고 웃는 사진이었다. 긴 겨울이 지나 소중하고 작은 새싹이 생명을 움틔우는 화창하고도 따뜻한 봄날이었다


남편은 이제와 나와 아이들의 소중함을 알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먹는 것, 입는 것 그리고 가지고 놀 장난감과 학용품 모두 돈을 벌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니 부족하지 않게 벌어주는 것만이 가장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막상 내가 아이들을 두고 떠난다고 하니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게 제일 큰 목적이 아니라 적게 벌어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가족이란 울타리를 유지하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했다. 별거 중에 남편의 권유로 주말에 한 번은 꼭 같이 외출을 나가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미운 건 미운 거고 엄마가 내쫓은 아빠와의 시간을 보내며 기뻐할 아이들의 마음과 추억까지 내가 뺏을 권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외출 후에는 꼭 술 한잔 기울이는 게 우리 집 분위기였지만 남편의 술 먹는 모습은 너무 지긋지긋했으므로 '나와 아이들과 있을 때 술 절대 먹지 말아"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어쩌다 한 번씩 내게 허락을 받고 술을 한잔 먹을 때면 거구의 남편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너무 잘못했어..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너한테 너무 잘못한 일들만 있는 것 같아"


"울어???"(비아냥 거리며)야 왜 그래 ~ 사람이 안 하던 짓 하면 죽는데"


 남편이 내 앞에서 울 때마다 비아냥대며 저렇게 말했으니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네 번이었다.



 


   


남편이 아프게 될 줄 알고 있었다


결혼 전부터 남편은 몸이 아픈 친구가 있으면 술을 먹어야지 비로소 낫는다는 궤변을 늘어뜨리는 술 신봉론자 이자 술 예찬론자이다. 남편에게 술은 삶이 녹록지 않음을 잊혀줄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위대한 酒님. 자영업 스트레스, 코로나 스트레스, 동업 스트레스는 으레 따라오는 덤이었고 이젠 아내마저 이혼 스트레스를 준다. 일찍 시작한 자영업으로 또래의 월급 평균 보다 좀 더 넉넉하게 돈을 벌었다. 14년을 밤낮이 바뀌어서 일했기 때문에 면역력은 바닥이지만 그게 대수랴. 아빠들은 다 그렇게 희생하는 삶을 사는 법일테니. 운동과 취미를 할 시간은 술로 때우지만 이게 삶의 유일한 낙이다. 매일 먹는 치킨과 콜라도 절대 양보할 수 없다.



이 모든 걸 고스란히 지켜본 나로서는 남편의 병환은 시기상 추측을 할 수 없을 뿐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남편의 병환을 알리던 첫 전화에 나는 정말 우습게도 '아.. 올게... 왔구나..'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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