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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Dec 24. 2023

암 환자의 집에도 캐롤은 흐릅니다

나의 그대에게.



여보, 우리 두 번째 맞는 크리스마스네! 연애하던 5년 중 군대에 있을 1년 빼곤 항상 같이 보내던 크리스마스를 막상 결혼하고 나니 일하느라 바빠서 같이 보낼 수가 없더라고. 내 생일이 크리스마스랑 가까운데 항상 애들이랑 셋이서 케이크 놓고 축하하는 게 처량맞고 싫은 기분에 생일도 크리스마스도 좀 싫었던 것 같아. 물론 당연히 이해는 했지. 남들 쉬고 즐거울 때 더 바쁘게 주방에서 땀 흘려 손님들의 즐거운 여흥과 파티를 돕는 게 오빠의 일이었으니까~오빠에게 섭섭했다기 보단 그냥 이해를 하면서도 한편으론 내 상황이 속상했던 것 같아. 이제는 우리 아이들이 다 커서 생일 주간이라며 생일 이주일 전부터 시도 때도 없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잖아. 우리가 태어난 게 정말 축복인 것처럼. 그렇게 여보노력과 나의 노력으로 우리 아이들이 부모님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만큼 컸어. 기특하지?      


여보가 아프기 전 명절, 공휴일, 크리스마스에 놀이공원이나 사람 많은 곳에 간다는 건 소위 '머리에 총 맞은 사람들'이나 가는 거라며 비웃곤 했던 거 기억나? 작년 첫 번째 수술 마치고 크리스마스이브에 롯데월드를 가게 되었을 때 난 너무 신기했어. 어딜 가든 사람들이 북적이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서울 한복판 놀이공원이라니!



 "와..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있네?"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번이나 웃었지. 그날은 평소에 말하던 머리에 총 맞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였어. 그렇게 우린 살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었나 봐. 나는 혼자 우는 '나의 크리스마스'가 슬프다고 생각했었는데 돌이켜보니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좋아하지만 주방에서 트리는 구경도 못하고 일했을 '그대의 크리스마스'도 참 고달팠을 것 같아.

그래, 여보 참 그렇게 열심히 살았어.               



아프지만 쉴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안도했던 말이 그동안 얼마나 큰 가장의 무게를 지니고 있었을지 조금은 보이더라고. 그렇게 브레이크도 없는 인생을 열심히 운전만 하고 있었나 봐. 엔진이 닳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우리 집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 여보가 누워있는 안방까지 크리스마스 분위기 잔뜩 느낄 수 있게 계속 틀어놓으려고 해. 여보가 워~낙 크리스마스를 좋아하잖아~? 아! 유튜브 프리미엄이 아니라서 자꾸 핸드폰 만지다 꺼지는 건 미안해. 대신 내일은 여보거로 하루종일 틀어놓자. 나 죽으면 유튜브 프리미엄부터 해지하라는 말 생각이 나네~ 별 걸 다 걱정하기는. 뭐 그럴 만도 해. 내가 좀 못 미덥긴 하지.

               

우리 결혼하고 나서 같이 보내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이제 두 번째 크리스마스야. 사실 당신이 요새 너무 의지가 없어서 "내년 크리스마스에 우리 곁에 없으면 크리스마스트리 모조리 싹 다 버릴 거야"라고 말하려다 말았어. 그럼 앞으로 우리 애들의 크리스마스마저 망가질까 봐. 한 달 전, 이번 연도 크리스마스는 강화 석모도 자연휴양림에서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예약해 놨지. 아이들 학교에 현장학습 체험서까지 제출했는데 컨디션이 난조라 도저히 못 가겠단 판단으로 엊그제 불가피하게 취소했잖아. 우리가 취소한 그 자리를 어떤 가족분들이 가셔서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이들에게 여행취소를 통보하자 라온이랑 지온이가 입술이 비죽비죽하면서 왜 못 가냐며 묻더라고. "라온아 너희가 어릴 땐 너희가 제일 약하니까 가족들이 너희한테 맞춰서 모든 스케줄을 조정했지만 이제 우리 집에서 제일 약한 사람은 아빠야. 우리가 아빠를 배려하고 지켜줘야 해"라고 말하니 "우리 집에서 아빠가 제일 약자예요?" 하고 묻더라.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잘 이해하고 넘어갔어. 아이들이 오빠의 몸을 지키진 못해도 마음은 지켜줄 수 있을 거야.    



           


여보!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좀 더 건강한 모습으로 나, 아이들, 부모님, 친척분들 옆에 있어줄 거지? 꼭 그렇게 믿을게 약속해 줘.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내년에도 건강히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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