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하지 않으면 3개월 안에 무조건 돌아가시게 될 겁니다. 안타깝게도 이 병은 완치가 없습니다"
우리는 뇌암을 인지하고 big5병원 중 교모세포종 수술로 유명한 두 명의 의사 선생님을 뵈러 갔다. 대학병원 간호사인 아가씨가 친분 있는 교수님들께 직접 여쭙고 지인을 수소문해 가며 교모세포종 수술로 유명한 두 의사 선생님을 추렸다. "우리가 지금 진료 보고 있는 병원 선생님께서도 이 수술의 권위자 이시지만 다른 분을 안 보면 제가 평생 후회 할 것 같아요" 머리를 여는 큰 수술을 진행하기 앞서 집도 할 의사 선생님을 직접 뵙고 판단하고 싶다는 아가씨의 의견에서였다. 대학병원은 진료예약 잡기가 도통 어려운 게 아니다. 아가씨는 하루 종일 일하다가도 진료 취소가 된 자리가 있는지 수십 번 전화를 걸며 몇 날 며칠을 고생했다. "언니! 드디어 진료예약 잡았어요" 동갑내기 아가씨의 고생이 빛을 발해 드디어 다른 병원에 진료를 보러 가게 되었다.
드라마에선 주인공 혹은 주변 인물이 암선고를 받으면 땅바닥에 주저앉아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액션을 취하고 당황한 의사 선생님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장면이 종종 연출되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 재래시장에서 "이 무 얼마예요?" 하고 물을 때 "2500원입니다~" 하고 답하는 시장 상인도 이보단 상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툭 내뱉는 말투로 "수술 안 하시면 환자분은 3개월 안에 반드시 죽습니다"라고 무심하게 말하는 의사 선생님도 계신다. 바짓가랑이 잡고 울고 불며 살려주세요 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 의사 선생님을 보며 '그래.. 모든 환자의 상황에 같이 감응한다면 저 의사 선생님께서 얼마나 인생이 고달프고 힘들겠나. 매일을 환자의 삶과 죽음의 사이를 면면히 이어나가며 본인의 삶과 감정을 지키기 위한 본인의 선택이겠지. 저분이라고 우리가 안타깝지 않겠나'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억울하거나 슬프거나 화나지 않았다. 다만 진료실을 돌아 나오는 발걸음에 아주 약간 쓴맛이 감돌뿐이었다.' 이 의사 선생님께서도 첫 환자를 볼 땐 이렇지 않으셨을 테지. 하도 많은 케이스를 보다 보니 그런 걸 테야' 입 밖으로 내밀지 못하고 남편이 상처받진 않았을까 걱정만 하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는 두 분의 의사 선생님을 뵙고 "제가 수술 성공 할 수 있습니다. 제 환자 중에 5년 생존한 분도 계시고 10년 생존한 분도 계십니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 한번 해봅시다" 라며 눈 맞추고 손잡아 주시는 의사 선생님을 선택했다. 우리의 상황을 더 알아주시는 분이 수술도 더 섬세하게 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아가씨는 성격이 참 좋아 모시는 교수님에게도 신망이 두텁고 오며 가며 친분 있는 교수님도 많다. 아가씨가 남편의 병으로 정보 수집을 위해 발품 팔 때 주변 교수님에게 많은 조언을 구하면서 들었던 말 중 기억나는 말을 내게 전했다.
"오빠가 뇌종양 이시라고..? 요새 기술이 좋아. 수술하면 잘 회복될 수 있을 거야. 교모세포종만 아니라면"
"교모세포종이에요.."
"아... 그래...? 안타깝네... 그거.. 완치가 안 되는 건 알지?"
"네.. 알고 있어요"
내가 실제로 만나 본 모든 의사 선생님도, 아가씨가 조언을 구한 모든 교수님도 이 병은 완치의 개념이 없다 라 하셨다. 그저 수술 후 1년 생존하면 그 이후에 2년을 바라보고 그다음 3년을 바라보며 5년, 10년을 기다린다는 것.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병을 목도함과 동시에 희망마저 앗아가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