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라요 Dec 31. 2023

비극이지만 희극이고 싶어

약국쇼핑을 명품쇼핑처럼




남편의 병환을 알리는 전화를 받는 순간 지대가 높은 곳을 지나갈 때처럼 귀에선 삐- 하는 이명이 들렸다. 잠시였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머리도 돌아가지 않아 상황파악이 안 되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최대한 조용히 전화를 받기 위해 몸을 수그린 내 옆에선 마술사가 본인의 얼굴이 그려진 가짜 돈을 공중에 뿌리는 이벤트를 하는 중이었다.


 "어머님 아버님들~ 이 돈을 주으면 집안에 돈이 들어오고 자식이 결혼하고 복이 굴러 들어옵니다~" 화려한 언변과 쇼맨쉽에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호들갑 떨며 땅에 떨어진 돈을 줍기 바빴다. 그 가짜 돈을 줍는다고 돈이 굴러 들어 올리도 노총각인 자식이 결혼하는 일은 없을 터인데 말이다.



저희 남편이 연약해서요


남편의 뇌종양이 발견되고 수술이 결정되기까지, 머리를 여는 개두술의 위험과 수술의 후유증으로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친척과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멀쩡한 모습으로 인사하는 시간'이 있었다. 저녁에 찾아온 남편의 친구들과 커피숍에서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수술 잘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꼭 보자' 배웅을 받으며 걸어 나왔다.


한 달 반 전까지 친구와 이혼하겠다고 내쫓았던 친구의 아내가 팔짱을 끼고 걷는 뒷모습이 꽤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며 말이다.


남편의 병환은 나 혼자 어린 자녀들을 키우며 감당하긴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주저 없이 남편의 본가로 이사를 결정했다. 동네는 여전히 20살, 22살의 우리가 연애할 때의 시절이 군데군데 담겨있다."우와~ 여기 연애할 때 생각난다! 우리 여기서 회에 소주 한잔씩 하구 그랬잖아. 사장님 아직 계실까? 한 번 들여다봐봐" 남편을 원망하느라 잊어버렸던 그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피어오른다. 


우리는 16년 전, 막 사랑을 시작한 풋내 나던 21살, 23살의 연인처럼 손을 꼭 잡고 추억에 잠겨 이보다 더 철없던 그 시간으로 잠시 되돌아갔다. 동네 한 바퀴를 걷다 보니 시장해진 남편이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한다. 근처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 그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로 주문했다. 햄버거가 나오자마자 잽싸게 튀어가 남편이 들지 못하게 낚아채 버렸다.


"아 저희 남편이 연약해서요 이건 제가 들어야 합니다"


100킬로 가까이 나가는 거구의 남자가 연약해 햄버거 따위를 들지 못한다며,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말하는 날 보며 젊은 아가씨가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실소를 터트린다.


"제가 저 사람보다 튼튼해서요!" 한마디 더 보태고 씩씩하게 걸어 나왔다.


    

남편의 애칭은 아만다


"아만다~~~ 아만다 와서 과일 먹자~~~"

"아만다가 뭐야?"

"암환자라고~ ㅋㅋ 애들 앞에서 암환자라고 대놓고 말하긴 좀 뭐 하니까 내가 특별히 세련된 외국인처럼 아만다라고 불러줄게"


마치 대단한 별명을 붙여 준 양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하는 날 보며, 남편은 '저거 또 시작이네' 하는 얼굴로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한동안은 내가 어이~~ 아만다라고 부르기만 해도 웃었고 남편은 내 유머코드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종종 '괴짜다', '특이하다' 말을 듣는 사람이었지만 그런 내 유머코드를 제일 잘 이해하고 즐기는 사람은 남편이기도 했으며, 웃음을 값으로 친다면 장담컨대 내 유머에 가장 후한 값을 매겨줄 사람 역시 남편일 것이다.

   

"명품관 쇼핑 부럽지 않은 약국쇼핑"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시며 살아보자고 얘기하시던 주치의 선생님은 재발 이후에 말을 아끼셨다. MRI를 판독하는 내내 진료실에는 딸깍거리는 클릭소리와 선생님께서 간간히 내뱉는 작은 한숨소리만 낮게 퍼지고 있다. 지금 먹고 있는 진통제가 듣지 않아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해 달라는 우리의 요청에 다음 달에 MRI를 다시 찍고 항암을 계속 진행할지 수술을 다시 할지 결정해 보자며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해 주셨다. 수도 없이 병원을 다녔지만 약을 타러 병원 밖을 걸어서 나가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낯선 기분으로 50미터가량 걷다 보니 약국 세 개가 나란히 붙어있는 모습이 보인다. 어느 약국을 갈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 성찬아 골라봐 널 위해 준비했어. 어디 갈래? 내가 특 별 히 널 위해 준비한 명품관 약국이야~ 내가 아무한테나 약 사주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성찬이는 특별히 사줄게! 명품은 못 사줘도 약은 사줄 수 있어! 내가 그 정도 능력은 되는 사람이야!"


줄지어선 약국을 가리키며 양손을 활짝 펼쳤다. 이번에도 나의 농담에 남편은 웃음이라는 후한 값을 쳐주었다. 정말 호화스러운 명품관의 값비싼 명품도 전혀 부럽지 않았다. 남편의 두통을 덜어낼 수 있다면 세상 어떤 명품이 부러울까.


 

 "고수가 아니라서 그래"

 

2주일에 하루씩 입원해 항암주사를 맞는다. 2달 전에는 남편의 상태가 양호해 하루정돈 혼자서 입원도 할 수 있었지만  그 사이 근육이 더 빠지고 두통으로 힘겨워 하자 내가 들어가서 같이 자고 나오게 되었다. 처음 입원 할 때는 하루만 입원해도 바리바리 싸들고 오던 짐가방이었지만 이제는 이불, 베개, 세면도구, 간단한 먹거리 등 아주 최소한의 짐만 챙겨서 오게 된다. 이것도 나름 노하우라면 노하우겠다.


병실의 불이 다 꺼져 이미 잠든 환자도 있는 10시 반쯤, 건너편 병상에 노부부가 배정받아 간호사와 큰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늦게 들어오셨으면 조금만 조용히 해줄 것이지 저렇게 크게 이야기할 일인가..'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건너편 병상의 상황에 조금 신경질이 났다. 다음날도 마찬가지. 아주머니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알고 싶지 않은 통화내역이 들리기도 하고 전화를 두고 병실을 나가셔서 온 병실에 전화벨 소리가 꺼지지 않게 한다. 구시렁거리며 남편에게 "아유 핸드폰을 좀 들고나가시지.."라고 말했더니 남편이 눈을 감고 조용히 한마디 한다.


고수가 아니라서 그래



남편에게서 득도의 후광이 비친다. 남편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게, 남편은 올해 입원만 몇 달을 하며 단련이 되어 있던 것이었다. 나도 나름 졸졸 따라다니며 병원생활 꽤 지겹게 했고 이제 병원밥 좀 먹었다며 나름의 입원 노하우도 있다 생각했지만 남편은 고수. 나는 하수. 난 아직 고수가 되려면 좀 멀었나 보다.

이전 07화 말기 암 환자가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5가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