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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Jan 28. 2024

시어머니 앞에서 아픈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칭찬받는 며느리


편의점에서 울면서 김밥 먹고 있는 나를 힐끗거리며 쳐다보는 사람들이 몇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여기는 병원 응급실 옆 편의점이었다. 이곳을 지나치는 누구나 다 어떠한 사연쯤은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란 뜻이기도 했다. 한 개의 김밥도 남기지 않고 다 먹은 후 자리를 일어났다.

"내가 다 치울 테니 걱정 말고 다녀오너라"

어머님의 말씀에 "정리 좀 부탁드릴게요"라 말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응급실로 뛰어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CT검사실로 호명되었다. 검사실로 들어가는 남편을 배웅하고 복도의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병원의 낮은 치열하고 살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하지만 병원의 밤은 무서울 만큼 고요하고 적막하다. 낮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가득해 대기실에 있다 보면 흡사 만원 버스의 한가운데 서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반면 진료시간이 끝나 사람들이 물처럼 빠져나간 밤은 낮의 그 많던 사람들이 꿈인 것 마냥 허탈하고 공허하다. 텅 빈 복도를 바라보는 내 마음에도 공허가 밀려왔다.


그것도 아주 잠시,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도 없이 첫 번째 진료면담을 곱씹어 봤다. 어제 찍은 MRI판독이 이미 마쳐진 상태여서 진료보기가 한결 수월했다. 현재 암 덩어리는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정말 믿을 수가 없는 결과였다. 너무 다행이고 너무 감사했지만 한편으론 안심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왜 환자의 상태가 점점 더 쇠약해지고 마약성 진통제가 듣지 않을 정도로 두통이 심해지며 먹는 거 없이 토하기만 하는지 미궁에 빠졌다.





CT검사를 마치고 두 번째 진료면담을 시작했고 판독결과 역시 특이사항이 없다고 하셨다. MRI와 CT상으로 모두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서 환자가 버틸 마약진통제와 구역구토 방지제만 더 처방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남편의 상태는 암이 자리 잡고 있을 때보다 더 안 좋은데 결과상으로는 멀쩡하다니 의구심이 들었지만 더 이상 검사를 진행하는 게 무의미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호출이 불려졌다.

"박성찬 환자 보호자님만 들어오세요"


들어가서 자리에 앉으니 젊은 남자 의사 선생님이 나를 보며 운을 떼셨다.


"보호자님.... 아시겠지만 교모세포종 이게 암 중에서도 가장 흉악한 암니다. 통증 조절을 잘해주셔야 해요."


의사선생님들을 만나오며 이미 여러 번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말해주시는 걸 들었었기 때문에 흉악하다는 표현이 별로 놀랍진 않았다. 외려 툭툭 내뱉는 말투 때문에 그전까지 좀 불친절하다고 느껴졌던 의사 선생님의 말씀과 태도가 '흉악하다'는 표현을 빌어 말씀하실 땐 진중하다 못해 경건하게 느껴져서 '이 병은 도대체 얼마나 어려운 병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해 주시는 눈빛으로 몇 가지 당부의 말을 해주시는 선생님을 보며 '내가 선생님을 오해했었구나' 하는 생각에 불편했던 감정이 사르르 녹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다음날, 여전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누워있는 남편이 걱정이 된 어머님이 아침부터 오셔서 야채 과일을 갈아 내오셨다. 몇 번을 불러도 일어나질 못하고 잠만 자는 아들을 보며 오늘도 이도저도 못하시고 옆을 서성이셨다. 나도 거들어 몇 번 깨워보았다. "조금만..(더 잘게)" 하면서 일어나질 않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어머님이 어제 하신 "난 마음이 약해서 아픈 애를 억지로 못 일으키겠다" 말씀이 생각났다. 어머님을 향한 안타까움과 남편을 향한 속상함에 울화가 치밀었다


"곡기 끊고 죽어버리고 싶어??
사람이 좀 먹어야 버틸 거 아냐!
먹어야지 버티지!!
이러고 누워있으면 뭐 몸이 저절로 낫는데?
 먹어야지 살지! 먹어야 살 거 아냐!
빨리 나와!!"

어머님이 계시든 말든 윽박을 지르자 남편은 깜짝 놀란 얼굴로 날 쳐다봤다. 어머님과 나 둘 다 마음이 약해 환자에게 휘둘릴 바에 나라도 독해져야 했다. 죽고 싶은 거냐며 불같이 화를 내는 내가 무서웠는지 주섬주섬 주방으로 나와 식탁에 앉고선 어머님이 갈아놓으신 주스를 홀짝거렸다. 몇 입 못 먹고 다시 방에 들어가 누웠지만 조금이라도 먹였다는 안도감에 한시름이 놓였다.


남편이 방으로 들어가자 어머님이 기쁜 표정으로 쌍따봉을 날리셨다.

"너무 잘했어 네가 소리 지르니까 쟤가 눈이 똥그래져서 일어난다"

"어머님 저 오빠 아프고 한 번도 소리 지른 적 없어요. 너무 속상해서 그런 거예요. 아픈 사람한테 소리 지른다고 마음 아파하실 까봐"

"아냐 아냐 너무 잘했어. 다음에도 저러고 있음 막 소리를 질러버려라"


아픈 사람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것보다 그렇게라도 일으켜 세워 조금이라도 먹였다는 안도감이 더 크신 듯했다. 몸져누워있는 암환자한테 소리 지르고 칭찬받는 며느리는 세상에 나 밖에 없겠다 싶어 웃음이 나왔다.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을 뵙고 왔습니다. 현재 보이는 암'덩어리'는 없다고 하시네요. 응급실에 갈 때만 해도 절망적인 마음에 '기적이 정말 내게 올까?' 하면서 울었는데 집에 올 땐 '기적이 내게 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암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미 뇌막전이가 의심되고 진행이 되어있는 상태라는 공통된 의견이 있으셨거든요. (1차 수술 때는 측두엽에서 발견된 암이 2차 수술 때 전두엽 와 후두엽에서 발견되어 뇌수막을 타고 암이 넘어간 것 같다며 뇌막전이를 말하셨어요. 현재는 개두술(開頭術) 2회 감마나이프1회 총 3회 수술이 진행 되었습니다.)


 뇌막은 심박수에 맞춰 긴장과 이완을 같이 하는데 암세포가 뇌막을 딱딱하게 만들어 적절한 이완이 이뤄지지 않아 매우 고통스러운 두통이 동반된다고 하셨어요. 뇌막을 따라 까맣게 된 부분을 보여주시며 이 부분이 암세포로 인해 딱딱하게 되었을 거라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암덩어리로 인한 뇌압 상승이 없는데도 두통이 일어나고 있는 원인을 알게 되었어요. 응급실에서는 전문의가 아니시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들을 수가 없었거든요. 뇌막전이는 수술이 불가능하고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만 가능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산발적으로 퍼져있는 자잘한 암이 언제든지 뇌 안에서 몸을 부풀릴 수 있는 위험도 항상 내재하고 있지만 일단 결과상으로 좋고 다시 머리를 열어야 하는 개두술의 위험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게 되어 너무 기뻤습니다. 세달 전까지만 해도 후두부에 암덩어리가 커지고 있어 꼼짝없이 머리를 또 열겠구나 싶었거든요. 이 기적 같은 결과를 듣고 진심으로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시는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쾌유를 바라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최근에 이런 구절을 봤어요. '버텨야만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이 글을 보고 제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버텨야만 살 수 있어"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없고, 살아나기만을 바랍니다. 긍정 확언처럼 말해주고 있어요. "여보 버텨야 해. 버텨야지 살 수 있어. 너무 잘하고 있어. 그래 조금이라도 먹자. 오늘 세 숟가락 먹어줘서 너무 기뻐"라고요. 오늘도 잘 버텨보겠습니다. 좋은 소식 전할 수 있어서 기뻐요.  



두번째 메인에 올랐습니다. 제 글이 처음이신 분들이 보시기 편하게 그동안 발행글을 정리해서 올립니다.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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