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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Feb 04. 2024

아이들에게 아빠가 암환자라고 말하던 날

"아빠 죽어요?"하고 울던 너희들


두 아이에게 아빠가 많이 아프다고, 아빠가 암환자라고 말하기에는 시간차이가 꽤 있었다. 암이란 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뇌종양 4기라고, 수술하다 장애를 얻을 수도 있다고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들은 모르게 첫 번째 수술날이 다가왔다. 아이들에겐 엄마가 서울에 잠시 일을 구했다 핑계를 댔다. 남편의 간병을 위해 서울에 있어야 하는 기간이 얼마가 될지 예상할 수 없었고 떨어져 지내야 하는 시간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선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핑계가 가장 적절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떨어진 적이 없던 아이들은 매일 저녁 아홉 시쯤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아이들이 정말 일 하는 거 맞냐고 추궁해도 "그럼! 엄마 너희들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돈 벌고 있어"라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며 생글생글 웃었다.


아이들에게 전화가 와 영상통화를 할 땐 일반 소파가 있는 병원휴게실까지 달려갔다. 환자복을 입은 누군가가 스쳐 보이지 않게 벽을 등진 상태로 전화했다. 완벽한 은닉을 꿈꿨다.


어느 날 딸이 엄마 병원에 있냐며 물어온다. 연신 아니라고 펄쩍 뛰는 날 보며 "엄마 팔찌에 oo병원이라고 적혀 있어요 "라고 말하자 장소에 대한 거짓말은 무용(無用)해졌다. 보호자용 출입팔찌에 병원이라고 작게 쓰여있는데 영상통화에 팔목이 노출된 그 찰나, 아이가 본 모양이었다.


사실 엄마가 병원에서 환자들의 편의를 위해 청소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다시 말을 지어냈다. 엄마가 병원에 있다고 하면 엄마가 아프다고 걱정할까 봐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는 어설픈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했다. 병원 청소를 하는 우리 엄마 너무 멋지다고, 환자들을 위해 깨끗한 병실을 만드는 우리 엄마 너무 대단하고 착하다고 말해주는 딸의 음성을 들으며 아직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줄 정도로 순진한 내 아이들이 고마웠다.


 여러 날을 통화해도 남편은 영상통화 화면에 비추어 줄 수가 없었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아픈 아빠를 필사적으로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수술경과가 좋아 별다른 후유증 없이 첫 번째 수술이 마무리되었다. 기억력상실과 언어력상실의 증세가 있었으나 수술 전과 비슷해 크게 무리될 것이 없었다. 한 달가량의 회복기를 지나 항암 방사선일정이 시작되어 나름 안정적인 상황이 되었다. 예민하지 않은 성정의 아들에게 먼저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냐 남편에게 물어보곤 남편의 동의를 얻어 아들만 따로 방으로 불렀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말을 시작했다.


 "아빠가 많이 아파"


 엄마아빠가 동시에 부재했던 상황과 무겁게 내려앉는 분위기, 어렵게 내뱉는 말에 심상찮음을 느꼈는지 "얼마 나요? 아빠 죽어요?"울면서 되묻는 아이를 안아주자 나도 같이 울음이 터졌다.


 아프고 상황이 많이 안 좋았지만 수술은 끝났다고, 그래서 저렇게 우리와 지내고 있다고 안심시켰다. 아이는 15분가량 울다가 그치다를 반복했다. 이야기가 끝나고 혹시나 너무 힘들어할까 봐 아이를 며칠 지켜보았는데  생각보단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오진 않는 듯해 보였다. 아프단 얘기 할 때만 울었고 불안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와 똑같이 웃고 까부는 아이를 보며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이 들다가 또 한편으론 생각보다 아빠와의 애착형성이 저렇게나 미비했구나 싶어 속이 상했다.






딸에게는 2차 수술을 앞두고 말했으니 아들에게 말한 시점으로부터 8개월이나 지난 뒤였다. 마음이 무척 여리고 눈물이 많은 딸아이가 심히 큰 충격을 받을까 도저히 얘기할 엄두가 나질 않았었는데 이런 상황을 두고 가족들이 염려하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알건 알아야 한다고, 아빠의 상황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고 조언을 했다. 두 번째 수술하기 전 아가씨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애들이 오빠(남편) 아픈 거 아나요?"

"라온이(아들)는 아는데 지온이(딸)는 몰라요"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전 언니 마음을 존중하긴 하는데 아이들도 상황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전 못하겠어요.. 아가씨 같으면 아이한테 이야기할 수 있나요? 아빠가 아프다고? 죽을 수도 있다고?"

"전 얘기 할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오빠가 갑자기 죽으면 애들이 더 충격받을 수도 있어요. 아이들도 아빠와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요"


단호하게 자신이 같은 상황이라면 주저 없이 딸에게 이야기할 거라 말하는 아가씨를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아가씨는 간호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환자의 죽음을 여러 번 경험했었고 우리 가족 중 가장 전문적이고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아빠의 병환을 알리지 않는 것이 정녕 아이들을 위한 일인지, 아이들이 상처받는 게 싫다는 이유로 상황회피를 하는 건지 나조차도 확신이 없었다. 시어머님, 아가씨, 친정엄마까지 나서서 아이들이 알아야 한다 말하는 걸 들으니 나의 판단이 옳지 않았구나 싶었다. 한 명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여럿이 같은 목소리를 낼 때는,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날 위해 기꺼운 조언을 해주는 이들이라면 내가 마음을 바꿔야 했다.




평소 남편과 같이 자는 안방침대에 딸과 같이 누웠다. 그 시각 남편은 병원에서 2차 수술을 하고 회복실에 있던 상황이었다. 환자가 수술실과 중환자실에서 회복하는 1~2일 동안 고 있던 병실은 퇴원처리가 되어 보호자는 퇴실조치 된다. 하루가 통째로 비어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가 없는 날은 꼭 셋이 한 방에서 잤는데 그날 아들은 제 방에 가서 자라하고 딸만 안방에서 같이 자자고 했다. 입을 삐죽거리는 아들을 뒤로하고 딸과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지온아.. 사실 아빠가 많이 아파"


딸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그 큰 눈에 3초도 안되어 눈물이 가득 찼다. 순식간에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일그러진 얼굴의 아이가 울다 내뱉은 첫 말.


"아빠 죽어요?"


아이들의 대답과 반응은 어찌나 그리 똑같은지 이번에도 하릴없이 한참을 껴안고 울었다.

엉망인 얼굴로 우는 딸의 표정을 보자마자 내가 왜 그토록 아빠가 아프단 얘기하기가 무서웠는지 깨딸았다. 나는 딸의 저 절망적인 울음을 보기가 두려웠구나.


"엄마랑 아빠랑 작년 겨울에 한동안 일하러 간다 했을 때 있지?"

딸아이가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미 수술 한 번 했었어. 굉장히 큰 수술이었는데 수술 끝나고 돌아와서 우리 잘 지냈지?

딸아이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여름에 낚시도 다니고 계곡도 다녀왔잖아 그렇지?"

"네.."

"아빠 잘 이겨내고 있어. 이번에도 잘 이겨 내실 거야. 지온이가 지금 알았을 뿐이지 아빠는 그때부터 계속 아팠었어. 지온이한테 달라지는 건 없어. 그냥 단지 아빠가 아프다는 사실을 지금 알았을 뿐이고 네 일상은 똑같이 지나갈 거야. 엄마랑 할머니 봐봐. 엄마는 아빠의 부인이고 할머니는 아빠의 엄마인데 지온이가 볼 때 그동안 엄마랑 할머니가 아빠가 아프다고 울며 슬프게 지냈었니?"

"아니요.."

"아빠가 좋지 않은 상황인 건 모두 알고 있지만 우리 모두 울거나 머물러 있지 않고 일상을 지내고 있어. 아빠도 잘 이겨내고 있고 가족들도 아빠의 곁에서 지금처럼 잘 지켜줄 거야. 너희들이 해줄 건 그냥 지금보다 아빠를 더 신경 써주고 배려해 주면 그걸로 충분해"


딸아이는 아들 녀석보다 더 많이 울었다. 꺽꺽거리면서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아이를 달래려 안아주었다. 그저 안는 것 외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가 이 사실을 좀 더 늦게 말하는 게 나았을까..?" 

묻는 말에 아이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이에요. 영영 몰랐으면 좋을 것 같아요. 듣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아이의 세상 한축을 무너뜨린 기분이 들었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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