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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Feb 11. 2024

항암이 체질인가 봐

그런 줄 알았지


첫 항암은 매우 순조로웠다. 항암방사선 치료와 테모달(경구항암제)도 탈모의 부작용 외에 구역, 구토 증세 없이 잘 넘어갔다.


살집도 넉넉했고 근육량도 꽤 많았던 그는 독하다는 항암을 아주 잘 버텼다. 살이 빠진다 해도 비만에서 정상인의 체중으로 넘어가게 되어 의 얼굴이 핸섬해 보이기까지 했다.



 항암이 체질인가 봐?


웃으며 농을 건넸다. 적어도 그땐 그런 농담을 할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방사선 치료를 다니던 23년 1월의 어느 날, 병원 화장실에서 구역질 소리가 들려왔다. 정상적인 진료를 하는 시간이 넘어간 저녁 9시였으니 구역질을 하는 사람은 필시 우리와 같이 항암 방사선을 하러 온 환자였다.


그는 첫 항암치료를 진행하면서 단 한 번도 토를 하거나 구역질을 한 경우가 없었다. 항암 부작용은 아무래도 우리에겐 해당되지 않는 일인가 보다 싶었다.


 복도에 괴롭게 울려 퍼지는 구역질 소리를 듣고 있자니 모르는 이에 대해 측은함이 감돌다가도 한편으론 나의 일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런 생각이 드는 내가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실소가 흘렀다. 간사하던 감사하던 아무렴 어떻겠는가. 잘 견디고 있는 그가, 그의 몸이 무척 대견스러웠다.

 



22년 12월 1차 수술로 제거했던 암이 9개월 만에 재발했다. 이번엔 암에서 발생한 뇌출혈을 증상으로 23년 9월 2차 수술에 들어갔다. 기존 항암제는 더 이상 듣질 않아 다른 항암제로 넘어가야 했다.


 이번에도 항암 시작 전, 미리 예견되는 여러 부작용에 관하여 설명을 듣는 시간이 있었다. 구역, 구토, 탈모는 기본이고 입안이 다 헐고 이게 정녕 맞나 싶을 정도로 컨디션이 떨어지지만 정상적인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간호사의 당부가 이어졌다.


1차 항암도 잘 버텨주었으니 2차도 순조롭지 않을까 하는 나의 어리석음이 산산조각 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세면대, 두 번째는 아파트 현관, 세 번째는 차를 타고 이동하다 차를 세워 급작스럽게 토를 했다. 두통처럼 점점 빈도수가 더 잦아지고 있었다.


처음 토하던 날, 남편은 물기 어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여보야.. 나.. 토했어"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가보니 한 시간 전 먹은 수박을 세면대 가득 토해놓은 장면과 젖은 눈으로 날 바라보는 남편이 눈 안에 담겼다.


"그래? 힘들었겠다. 어서 나와. 내가 닦아놓을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묵묵히 토사물을 치우는 내 뒷모습을 보며 남편은 미안하다 재차 사과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게 부채감을 느낄까 봐 걱정되었다.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너스레를 떨 시간이었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 중 하나가 농담이라 다행이다. 별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리며 뒤돌아섰다.

"나 앞으로 당신 똥기저귀까지 갈아야 하니까 이런 거로 미안해하지 마"

너스레로 두르고 농담으로 포장한 진담을 던졌다.


두 번째 토를 했을 땐 전부 내 탓으로 느껴졌다. 운전하다 길을 잘못 들어 집에 가는 시간이 지체되었다. 남편은 차에서 내려 아파트 현관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다 쏟아냈다.


급한 마음으로 집에 올라가 비닐장갑과 물티슈를 챙겨 내려왔다. 15층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그 짧은 시간이 더디게 느껴졌다. 경황없이 속히 챙기고 내려오느라 봉투를 가져오지 않았다. 아파트 현관을 나가 토사물을 담을 적당한 것이 있는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단에서 아무렇게나 버려진 검정 봉투를 발견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버려진 봉투도 쓸모가 있구나. 그 봉투가 아니었다면 15층까지 다시 다녀와야 할 참이었다.  


물티슈 한통을 다 쓸 때까지 계단 아래를 벅벅 닦았다. 조금의 흔적조차 안 보일 때까지 닦다 보니 모든 게 다 내 탓으로 느껴졌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 토사물 봉투를 처리하고 지쳐 누워있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미안해..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서, 나 때문에 차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토한 것 같아"


 이번엔 내가 울먹거렸다.


"아니야. 네 탓이 아니야"


우린 각자 스스로를 탓할 뿐, 서로를 탓할 수

 없었다.






24년 1월 응급실에 다녀온 후 모든 게 좋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기대가 무색하게도 응급실 이후 남편의 상황은 급격히 나빠졌다.


 내일은 나아지길 바라면서 동네 병의원을 전전했다. 남편을 위해 온 가족이 5분 대기조처럼 동원되었다.  5~11만 원짜리 영양 수액을 매일 맞추고 집에 와선 뉴케어(환자용 영양음료)라도 먹이기 위해 애를 썼다. 


남편은 마치 음식물이 들어오면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몸처럼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나마 과일이라도 먹으려 하는 그에게 샤인머스캣  알 간신히 먹여 놓으면 십 분도 안되어 다시 게워냈다.


나중에는 물도 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구토할 때마다 나에게 사과하던 남편은 네 번째 토사물을 치우는 순간부턴 더 이상 사과하지 않았다. 초점 없이 지친 눈빛으로 치우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며칠 동안 가족들과의 대화는 "먹었어요"에 안심하고 "토했어요"에 실망하는 날이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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