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라요 Feb 17. 2024

애기엄마, 밥은 먹고 다녀요?

볼 때마다 안쓰러워 보여서


병원에 들어온 지 10일이 되었다. 입원이 결정되는 순간 들었던 여러 가지 감정 중에 가장 앞선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더 이상 힘든 사람을 억지로 일으켜 병원을 전전하며 매일 2~5시간씩 영양제를 맞추지 않아도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더 일찍 입원하지 않은 일이 후회로 다가왔다.


하루하루 수액을 맞추면 내일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 내일은 조금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내일은 구토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버텼던 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2주 동안 과일 조금만 간신히 먹고 물마저도 다 토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혈액종양내과 의사 선생님은  "이 정도면 응급실로 오지 그러셨었어요"라고 하셨다.


예상했지만 역시나 병원생활이 길어지고 있다. 스테로이드가 고용량으로 들어가 간수치가 640까지 치솟았다. 간수치를 낮추는 주사가 투여된다. 소변이 잘 나오질 않는다. 이뇨주사가 투여된다. 모르핀이 24시간 수액으로 들어가도 머리가 아프다. 진통을 위해 모르핀이 추가로 투여된다. 혈압이 높다. 혈압 강하제가 투여된다.


돈 넣고 쿡 찌르면 탁 하고 나오는 자판기처럼 증상을 말하면 쭉 하고 주사가 투여된다. 다행이다 싶다가 이게  맞나 싶기도 하다. 이렇게 주사와 약으로만 모든 걸 의존하는 게 정녕 맞는 일인가 의문이 든다. 약의 부작용으로 또 다른 약이 투여되고 그 부작용으로 다른 약이 투여되는 게 꼭 모래성에 집을 짓는 것 같다. 언제 허물어질지 몰라 위태위태 불안 불안하다.


병원에 입원하고 타 보호자와 전혀 교류하지 않았다. 오고 가며 인사를 나눈 적도 말을 건 적도 없었다. 누구와 사담을 나누고 싶지도, 굳이 신경 쓸만한 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나는 이 암병동에서 가장 젊은 환자의 보호자였다. 그냥 서로에게 관심 없이 지나치고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사소하게 스치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러다 며칠 전 정수기 앞에서 항암을 포기하기로 했다며 본인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는 까까머리 할머님을 시작으로 "저희도 피 수치가 아작이 나서 항암을 할 수 없어요" 말을 했다.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먹지 않는 남편을 두고 어떤 걸 먹여야 조금이라도 먹을까 고민하고 있던 저녁 6시쯤, 병상을 가리고 있는 커튼 사이로 건너편 병상보호자분께서 조심스레 처음 말을 걸어오신다.


부침개를 좀 해왔는데 먹어봐요


"어어 감사합니다" 예상 못한 호의에 당황하며 받아 들었다. 평범한 맛에 평범한 부침개였는데 예상치 못한 호의라는 조미료가 버무려져서 그런지  감사한 맛이었다. 고맙고 감사한 맛이 분명했다.



저녁 10시쯤, 다시 우리 쪽 커튼이 조심스레 움직이며 단팥빵 두 개가 들린 손이 쑤욱 들어온다.


이거 여기 밑에
카페에서 산 단팥빵인데 먹어봐요

 

"어어 아까 주신 부침개도 잘 먹었는데요"


'아까의 감사인사도 아직 드리지 못했는데 뭘 이런 걸 다 주세요'라고 생각했는데 당황해서 다 말하지 못한 채 얼빠진 얼굴로 다시 단팥빵을 받아 들었다.


"먹어봐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커튼이 닫히고 단팥빵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내가 단팥빵 좋아하는 걸 어찌 아시고'

 불 꺼진 병실에서 바스락대며 비닐을 벗긴다. 조용한 병실에 무얼 먹는 이가 나밖에 없는 듯하여 더 살며시 뜯으려 했다. 하지만 비닐은 조용할 수 없다. 제가 제일 잘 내는 소리가 바스락 거리는 일이란 걸 알리고 싶은지 내 손길에 간지럽다는 양 바스락바스락 시끄럽게 떠들었다. 단팥빵은 맛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단팥소가 너무 달지 않고 적당히 들어가 감사하고 맛이 있었다. 이번에도 감사한 맛이었다.


감사인사를 언제 드려야 할까 고민했다. 불 꺼진 병실이었는데 건너편 보호자분은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이셨다. 커튼을 열고 지금 감사인사를 드릴까? 잠시 망설였다. 평소엔 낯선 사람이라도 밝게 잘 다가가는데 이런 순간에는 갑자기 내향형에 빙의되어 쑥스러워지는 내가 어이가 없다. 그래도 그런 나도 나인걸 어쩌겠어를 시전 하며 잠을 청했다. 아침엔 꼭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려야지.


아침이 되어 찜질팩을 데우기 위해 병실을 나섰다. 건너편 병상 보호자 분께서도 식판을 치우러 나오셨다가 나와 마주쳤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지 하고 입을 떼려는 순간 아주머니께서 먼저 선수를 치셨다


애기엄마, 밥은 먹고 다녀요..?


"아.. 안 그래도 이젠 병원밥을 좀 시켜 먹어 보려고요. 그동안은 사서 먹었어요."


"볼 때마다 안쓰러워서 원, 환자는 환자고 보호자가 잘 먹어야지 버티지.."


"아 그래도 빼먹지 않고 끼니는 다 먹었어요"


"그렇게 말라서 어째. 들어보니 남편이 많이 아픈 것 같은데 우리도 그래요. 그래도 우리는 나이라도 있지. 자식들 다 결혼시켜놓고 아프기라도 한데 애기엄마는 나이도 어려서 안쓰러워요"


"자제분 결혼까지 시키셨다니 너무 부럽네요. 안 그래도 저번에 호스피스 떠나신 91세 할아버지도 부러웠거든요. 손주도 계시고.."


"그러니까요.."


복도 한가운데서 이야기를 나누자니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식판 치우는 쪽으로 걸어가며 이야기 나누자고 말씀드렸다. 우리는 병원 복도를 걸으며 서로의 사연을 이야기하고 물었다.


(사진의 여성은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로 제작한 가상의 이미지 입니다.)

이전 16화 항암이 체질인가 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