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라요 Feb 18. 2024

호스피스 병동으로 떠나는 90세, 52세의 두 남자

인생의 마지막 설날일까요?


기름에 자글자글 부친 고소한 전 냄새가 나지 '않는' 설날.

 뽀얀 국물에 잘 불은 떡을 건져 호호 불어 먹는 떡국 '없는' 설날.

아이들은 한 살 더 먹었다며 좋아하고 나는 떡국 안 먹었으니 한 살 더 안 먹었다 실랑이할 수 '없는' 설날.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정겹게 이야기 나누다 못본새 훌쩍 커버린 조카가 놀라워 "언제 이리 컸냐" 웃으며 물을 수 '없는' 설날.

조카들을 위해 예쁜 봉투에 넣어 미리 챙겨둔 세뱃돈을 줄 수'없는'설날

내 아이들이 받은 세뱃돈을 챙겨 엄마가 나중에 줄게라고 말할 수 '없는' 설날.

북적이는 가족들과 둘러앉아 웃고 조용할 새가 없는 대신 아픈 이들이 주변 가득한 적막한 설날.


병원에서 맞이한 첫 명절이었다. 명절을 맞아 청소하시는 분들도 설을 쇠러 가셨는지 최소한으로 인력이 운용되어 쓰레기가 쌓여갔다. 화장실엔 불쾌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러 후각이 유독 민감한 나는 냄새나는 화장실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명절이 끝나자마자 이른 아침부터 나는 락스냄새가 어찌나 반갑던지 오랜 친구를 만난 기쁨에 버금갈 만한 지경이다. 다시는 명절'만'이라도 병원에 입원해 있고 싶지 않을 강렬한 경험이었다.



병실에 들어온 지 딱 일주일이 지나자 같은 병실91세 노인과 53세의 남성이 호스피스로 떠났다. 나의 사정은 나의 사정이고 저들은 어찌하여 이 명절을 적막한 병원에서 보내는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이미 오래*호스피스 대기를 걸어놓고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환자들이었다.


나는 암에 걸린 주변인이 없어 암에 무지했던 것처럼 호스피스도 듣고 겪어본 적이 없어 설명을 듣기 전엔 어떤 것 인지 알지 못했었다. 우리가 있는 병원에 간호사로 있는 시누의 친구에게 호스피스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면 호스피스로 가는 것이 생각보다 환자와 가족에게 많은 도움(삶을 정리하는 순서이므로 가족과 추억을 남기는 것과 환자의 통증조절을 최우선으로 한다)이 된다며 손을 꼭 잡고 기운 내라 말하는 시누의 친구에게 정 방법이 없음 그리하겠다 대답했다.


그게 불과 이틀 전 일이었는데, 실제로 호스피스로 떠나는 가망 없는 환자들을 내 눈으로 보게 되었다.

호스피스 전원을 위해  여럿의 간호사가 아침부터 분주하게 여러 번 병상을 오고 갔다. 중년의 여성 간호사가 마지막으로 오더니 "아버님, 편안하게 모실게요. 걱정 마세요" 웃으면서 말하는 소리가 닫힌 커튼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단지 편안하게 모시겠다 한 말인데, 아무 생각 없이 듣기엔 그냥 친절하고 상냥한 목소리인데 왜 그리 마음이 시린지 단번에 눈물이 고였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가족들은 얼마나 고달팠겠으며 그러한 결정을 받아들이기까지 환자들 본인은 회복 없는 몸상태에 얼마나 좌절했을 텐가.


기약 없는 회복의 기다림은 돌아오질 않고 평안과 건강은 영영 가버렸다. 그 사실은 그들을 그리고 그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가엾고도 가여웠다. 그리고 내게도 닥쳐올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생각까지 이르러 감정의 동화에서 쉽사리 헤어 나오질 못했다.


91세의 할아버님이 먼저 나가시고 53세 남성의 짐을 빼느라 분주한 시간, 커튼이 살짝 열려 환자의 발만 그 사이로 슬쩍 보였다. 언제 깎았는지 모를 정도로 허옇게 자라 있는 발톱이 그의 오랜 병상생활을 대신 말해주었다. 그 단편적인 장면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환자도 보호자도 모두 지쳐있구나'


죄송하게도 나는 길고 창백하게 자란 그의 발톱을 보며 안도했다. 남편의 자라난 발톱을 이틀 전에 깎아 주었어서, 남편의 자라난 발톱을 들여다보고 깎아줄 마음의 여유가 아직 있음에 스스로를 위안했다.'나는 아직 지치지 않았구나'

 

그렇게 두 분은 몸과 마음의 평안을 위해 호스피스로 떠나셨다. 이번 명절이 그들의 마지막 명절이겠다 싶다가도 그러지 않길, 내년 설날도 가족들과 지내시기를. 쌓인 짐을 들고 홀연히 호스피스로 가는 두 환자를 보며 마음속으로 빌어드렸다.


 두 분이 나간 오후, 비어진 두 자리가 허전해 보인다. 새로운 환자를 맞이하려 깨끗이 소독된 침대 위로 깨끗이 세탁된 침구가 올려진 병상에 눈길이 간다. 병실 담당 간호사가 때마침 우리 자리로 와 따로 물었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신 두 분은 병실에 얼마나 계셨나요"

"저 두 분 백일동안이나 계셨어요. 백일파티도 해드려야 하나 생각했었거든요"


백일동안의 기다림이 쾌유였다면 좋았을 것을.


그래도 91세의 할아버지는 손주까지 보시고  53세의 남성분은 군인인 아들이 계셨다.

두 분 다 분명 그의 삶, 일평생 이룬 것이 있었다. 


'여보, 우리 아들 군대도 못 보냈는데, 우리 딸 시집도 못 보냈는데, 우린 장성한 손주도 없는데 당신은 왜 계속 누워만 있어?'


꿀밤 한 대 먹이고 싶은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호스피스 : 악성 질환에 걸려서 치유의 가능성이 없고, 진행된 상태 또는 말기 상태에 있는 환자와 그 가족이, 죽을 때까지 남겨진 시간의 의미를 발견해서, 그 시간을 충실히 살아가도록 배려하는 광범위한 치료를 호스피스케어라고 한다.











이전 17화 애기엄마, 밥은 먹고 다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