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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Feb 25. 2024

그래서 나 어떻게 되는 건데?

당신 이제 가망이 없데


아주 오랜만에 남편의 눈빛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리고 또렷한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그래서 나 어떻게 되는 건데?
왜 아무도 얘기를 안 해줘?


"정신 차렸어? 내가 저번에 이야기했지? 우리 이제 의학적인 방법은 소용이 없다고 의사 선생님이 호스피스 가야 한다고 얘기했던 거 기억나지?"

"응.."

"호스피스 뭔지 알아?"

"몰라.."

"항암치료 더 이상 할 수 없는 말기암 환자들이 들어가는 곳이야. 여보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우리도 더 이상 항암치료 할 수가 없잖아. 호스피스 들어가면 가족들이랑 시간도 보낼 수 있어. 여기 병실은 보호자가 한 명 밖에 못 들어오는데 거기는 가족들이 병실에도 들어올 수 있데. 삶을 포기하러 들어가는 게 아니라 거기도 입퇴원이 가능해서 가서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가족들도 더 자주 보고 지내다가 몸이 나아지면 다시 퇴원할 수도 있는 거야. 우리 아무도 여보 포기 안 했어. 여보만 삶을 포기 안 하면 돼. 그렇지? 아직 포기 안 했지?"

"응.."

"여보, 포기하면 안 돼. 알았지?"

"응.."

"오구 우리 아기 이제 밥 한 숟갈 먹을까?"






24년 2월 19일 의사 선생님께 호스피스를 권유받았다. 남편에게 더 이상의 의학적인 치료는 무용하고 가망이 없다는 말은 너무 잔인했다. 내 앞에서 울지 않던 어머님의 울음소리도 듣게 된 날이었다. 시어머님은 "이게 무슨 일이니. 나이가 저렇게 젊은데 이게 말이 되니?"라며 우셨고 친정 엄마는 "내 딸 불쌍해서 어떡하니"라고 우셨다.


이렇게 울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울었다. 남의 눈치 상관없이 복도에서 꺼이꺼이 서럽게 울면 오며 가며 마주쳤던 다른 병상의 보호자가 내게 다가와 등을 쓰다듬었다. 며칠 내게 "그래도(남편이 많이 아픈 것치곤) 명랑하네?"라고 말을 걸었던 아주머니셨다."얘가 씩씩하게 버티다가 오늘 왜 이러니. 애가 두 명이나 있다 하지 않았나. 우리는 엄마다 아이가. 애들 생각해서 버텨야 한다이."      


와중에도 결정은 해야 했다. 현재 호스피스 병상도 대기가 길어 서둘러 신청을 해놓지 않으면 뒤로 순서가 밀린다고 했다. 하늘을 가는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은데 대기하는 장소의 순서는 분명 정해져 있었다


남편의 호스피스 권유를 받은 날 오후 호스피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상담을 위해 나를 찾아왔다.

"호스피스는 삶을 중단하지도 연명하지도 않습니다. 호스피스는 항암치료와 연명치료를 할 수 없는 말기 암 환자들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나 들어오는 곳은 아니고 더 이상 연명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주치의의 진단서가 필요합니다. 호스피스는 가정, 외래, 병동 세 가지의 형태가 있고 어느 곳을 갈지는 보호자 분들이 선택을 하는 게 아닙니다. 저희가 직접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 어떤 형태의 호스피스가 적절할지 판단해 결정합니다. 의식이 전혀 없는 경우에는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없고 환자의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호스피스는 가족과의 시간과 심리적인 안정, 환자의 통증 조절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좀 더 안락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게 도와 드릴 거예요. 자원봉사자, 수녀님, 의사 선생님이 상주하고 계시고 환자의 상태를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가족 와의 상담치료, 미술치료, 요리치료 등을 통해 환자와 가족들의 심리적인 안정에도 신경을 쓰고 임종사인이 오면 가족들이 다 같이 임종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현재 병상에서는 임종을 하시더라도 보호자 한 명 외에 다른 분은 병실에 들어올 수 없는 게 원칙이거든요. 환자가 의사소통이 가능한가요?"


"좀 오락가락 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가능해요"

"음.. 환자가 본인의 상태를 알고 있나요?"

"네. 항암치료가 더 이상 소용이 없어 그만두기로 했다고 알고 있어요"

"환자에게 호스피스를 간다는 말은 하셨나요?"

"아직 이야기하지 못했어요"

"혹시 환자가 의사소통이 어려우면 호스피스 고지는 하시고 보호자분이 사인을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네.. 호스피스에서 가족여행도 보내 준단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건 무엇인가요?"

"그건 환자 스스로 거동이 가능하실 때, 외래로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는 정도의 몸 상태이면 기부금 등을 통해서 가족과 여행을 다녀오게 해 드리는 경우가 있는데 남편분은 거동이 불편해 어려우세요"

"그렇군요.. 임종 시 지킬 수 있는 가족은 몇 명인가요?"

"최대 다섯 명입니다"

"아.. 그럼 어머님, 아버님, 저, 아이들 둘... 아 애들은 안 보는 게 좋으려나요?"


어느새 남편의 임종 시 몇 명이 들어갈지 새고 있는 내 꼴이 우습다.

병실에서 남편의 상태가 악화되어 죽음을 맞이한다면 보호자는 나 혼자인 채로 남편을 떠나보내야 한다. 호스피스 병동은 임종사인이 오면 가족들이 곁을 지킨 채로 보낼 수 있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옮겨야 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그리고 기존에 주입되고 있던 스테로이드, 진통제, 구역구토방지제, 영양제 등도 그대로 이용할 수 있으므로 분명 삶을 포기하러 들어가는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만에 하나 나아진다면, 퇴원도 한다는 희망으로 신청했다. 끝까지 실낱같은 희망은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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