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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Mar 10. 2024

말기암이어도 로또는 사야 해

비극이지만 희극이고 싶어(2)



남편이 병상에서 무어라 속삭인다. 그가

개미 오줌만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오.. 늘.... 무.. 슨 요일이야"

"오늘? 일요일!"

"로...... 또..."

"로또 사라고? 아 어제 문자  번호로 샀어야 했구나!!"


 남편은 병원침대에서 '어휴 니가 그럼 그렇지' 하는 한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제 발로 로또를 사러 나가지도 못하는 남편에게 괜스레 혼난 기분이 들어 왠지 억울하다. 한마디 거들어야겠다.



나 병원 들어오고 한 번도 로또 안 했다? 어때.. 소름 돋지?
근데 더 소름 돋는 게 뭔지 알아?
그동안 단 한 번도 5000원도 당첨이 안 됐다는 거지.

내가 번호 못 찍은 날에
"야 엄마 로또 안 샀어
당첨 안되게 해달라고 빌어"

그럼 지온이랑 라온이가
두 손을 허공에 막 비비면서
"하느님, 부처님
제발, 제발 로또 안되게 해 주세요"한다?

결론은 당첨 안된 게 맞으니까
돈을 아꼈다는 거지 엣헴.




내 말을 들은 그가 슬쩍 눈을 떠 날 보곤 피식 웃는다. 병원에 들어온 지 13일 만에 처음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남편은 몇 년 전부터 로또번호를 보내주는 업체에 돈을 내고 매주 번호를 받고 있다. 로또가 당첨되면 뭘 할지 생각하는 걸로 일주일이 즐겁다나? 아파서 본인이 직접 사지 못하게 된 때부터 나에게 로또 심부름을 일임했는데 혼자 가기 심심했던 나는 초등학생 아이 둘과 로또방을 가곤 했다.


 산책을 빌미로 아이 둘을 꼬여내 남편의 심부름을  때는 매번 초등학생 둘을 데리고 사행성을 즐기는 정신 나간(?) 엄마로 비칠까 봐 조금 많이 부끄러웠다. 추우니 아이들에게 밖에서 기다리라 할 수도 없었다. 로또 안 사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남편의 심부름은 해야 하니 철면을 깐다.


'나는 당당하다. 이건 내가 사는 게 아니다. 남편의 심부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는 거다. 어머나, 뚫어져라 쳐다보지 마세요. 이거 제 로또 아니라고요' 


물에 떠있는 백조처럼 번호를 찍는 손길은 신중하고 우아하지만 시끄러운 속마음은 백조의 발길질 뺨친다. 번호를 다 찍자마자 카운터로 가서 신속정확하게 돈과 로또용지를 내밀었다. 빨리 도망가고 싶은 내 맘도 모른 채, 예의 바른 아이들이 사장님께 명랑한 목소리로 인사를 드린다.

"안녕히 계세요~~"

이번에도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달걀귀신 두 명 대령이오"


남편을 퇴원시켰을 3일 동안은 시부모님께서 남편의 간병을 전적으로 책임지셨다. 시부모님 두 분이서 지극정성으로 아들(남편)을 돌보고 나는 아이들과 못다 한 애정 어린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사랑하는 내 아이의 부모로서 최선을 다했다.


남편의 얼굴을 보러 시댁에 들렀더니 시어머님이 얼굴에 하얀 마스크팩을 붙이고 계신다. '시한부 말기암 환자의 간병'과 '주름 없고 촉촉한 피부를 위한 마스크팩'이 너무 상반되는 상황이라 당황스럽다.


"이거 이번에 화장품 사서 받은 건데 너도 하나 해라" 어머님이 내게도 마스크팩을 권하신다.

나는 냉큼 받아 들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포장을 찢어 얼굴에 챡챡 붙였다. 그리고 남편을 들여다보는 어머님 옆에 찰싹 붙어 팩을 붙여 허여멀건한 얼굴로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



여보~~~ 여기 봐라?
달걀귀신 두 명 있네???





남편은 어머님과 나를 번갈아 본 뒤 다시 눈을 감았다. "힝.. 왜 안 웃어줘"  이번엔 남편을 웃기는데 실패했다. 병마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피곤한 얼굴이었다.


나에겐 자고 눈뜨면 당연히 다가올 내일이 남편에겐 오지 못할 내일이 될까 봐, 미래가  불확실한 남편 옆에서 나만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그에 대한 배신이란 생각이 들어 현재만을 살았다.

옷도 머리도 얼굴도 무엇하나 돌보지 않았고 거울도 간신히 몰골만 확인하는 꼴로 병원생활을 했다. 어쩌다 비치는 화장실 거울에 내 모습이 초라해도 그게 아픈 남편을 위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거울을 보거나 옷을 단장하고, 주름이 걱정돼 화장품을 정성스레 바르는 둥 그런 것들을 챙기기 시작하면 아픈 그를 두고 나 혼자 살 궁리를 한다고 생각할까 봐, 그리고 그런 나 스스로가 용서가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은 아무도 내게 그런 부채감을 주지 않는데 말이다.

 

그랬던 나에게 어머니의 '촉촉한 피부를 만들어 노화를 방지하는 마스크팩 한 장'은 묘한 위로로 다가왔다. 아 그래도 되는구나. 나는 그날 이후로 다시 거울을 보기 시작했다.





"천장에 모빌 달아줘???"


남편은 신생아가 되었다. 20시간 가까이 자는 데다가 기저귀를 차고 알약도 삼키지 못해 가루약을 먹는다. 혼자 힘으로 앉지도 걷지도 먹지도 못한다. 자꾸 침대 밑으로 내려가는 몸을 혼자 가누지 못해 남편의 자세를 고쳐주려면 침대 위로 올라가 온 힘을 다해 남편을 침대 위쪽으로 끙끙 끌어당긴다.

남편은 아기가 되어버렸다.


 옆 병상에 환자가 있다고 얘기해도 칸막이용 커튼을 자꾸 치려고 해 몇 번이고 남편에게 설명하고 옆 병상의 환자가 바뀔 때마다 사과를 해야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커튼을 젖히려 하는 남편에게 어린아이에게 설명하듯이 나긋히 이야기한다.


"안돼~ 거기 환자분 계셔. 여기 어디야. 여기 병원이지? 옆에 환자랑 보호자분 계셔. 놀라셔서 커튼 자꾸 만지면 안 돼" 그렇게 말하면 남편은 처음 듣는 표정으로 내게 다시 묻는다

"그 애(그래)..?"


환각이 본격화되었는지 허공에 뭐가 보인다며 자꾸 휘적휘적 무언갈 잡는 흉내를 낸다. 잡히지 않는 걸 잡으려고 하고 보이지 않는 걸 보인다고 하니 진짜 보이고 잡히는 걸 달아줘야 하나 싶다.

오늘도 어김없이 헛손질을 하는 남편에게 웃으면서 장난을 친다.


천장에 모빌 달아줘???






비극이지만 희극이고 싶어 두번째 이야기 입니다.

제목과 부제목을 *부러 바꿔 달았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아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p-live/21



*부러: 특별한 의도로. 또는 마음을 내어 굳이.

이전 20화 내일, 남편을 다시 볼 생각에 설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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