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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Mar 02. 2024

내일, 남편을 다시 볼 생각에 설레네요.

저는 이걸 기적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수명을 70이라 가정하고 인생을 나열했을 때 손가락 한마디도 되지 않을 짧은 시간인 일주일, 그 일주일 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16일간의 입원기간 중 퇴원의사를 여러 번 번복하다 결국 남편을 퇴원시켰어요. 주치의 선생님, 간호사, 호스피스 병동 의사 선생님 모두 심히 염려했지만 "나 집에 가고 싶어"라고 손을 모아 비는 남편의 의사도 무시할 순 없었습니다. 


가족들이 합심해 남편을 퇴원(2월 23일)시키고 남편의 상태가 눈에 띌 정도로 좋아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퇴원하고 나서는 시부모님이 오롯이 병구완을 하셨는데 그 정성이 갸륵했는지 거의 한 달 가까이 변을 못 보던 남편이 매일 변도 보게 되고 식사량도 늘어나 외견상으로도 호전의 기미가 보였습니다. 


저는 남편이 모르핀 주사 없인 하루 반나절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 예상과는 달리 좀 힘들어 하긴 해도 마약성 진통제 없이 파라마셋(일반 진통제)로도  버텨주는 남편이 신기하면서도 참 고마웠습니다.(남편은 펜타닐 부작용이 있어 패치와 알약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하나 둘 희망의 조각을 그러모으고 있을 즈음 호스피스 병동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순번이 다가와서 오늘 입원하셔도 된다고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순번을 미뤄달라고 했습니다. 혼자 절뚝거리며 부축 없이 화장실을 가는 남편을 보니 다시 한번 미래를 소원하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다시 병원을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못하게 될 것 같단 두려움이 엄습해 왔던 탓도 있었습니다.


호스피스 전화를 받고 순번을 미룬 게 2월 26일 오전이었고, 그날 오후 남편이 발작을 일으켜 쓰러집니다. 처음엔 밥 먹다 컥컥거리길래 체했나 싶었는데 음식물을 문 채로 흰자가 보이자 아차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119를 부르라고 소리친 뒤 전화를 넘겨받았는데 우느라 말이 잘 안 나오더군요. 그렇게 말하면 못 알아듣는다며 진정하고 다시 얘기하라는 짜증 섞인 퉁명스러운 말투에 이성이 되찾아집니다.(저는 절대로 모든 구급대원분들이 이렇게 전화를 받을 거라 생각지 않습니다. 당시엔 전화를 받은 분께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눈물이 쏙 들어가면서 냉정한 판단이 가능해져 외려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머님은 쓰러진 아들을 붙잡고 어찌할 바를 모르시고 남편은 흰자가 보이는 상태, 아이들 둘은 방 문 밖에서 겁에 질려 울면서 절 바라보고 있습니다. 남편의 기도가 막히지 않게 손가락을 구겨 넣은 상태로 다시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뇌종양 환자입니다. 밥 먹다 발작이 와서 쓰러졌어요. 흰자가 보이며 쓰러졌고요. 음식물이 넘어가지 않게 옆으로 뉘어 놓고 손가락을 강제로 넣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전화통화를 하는 와중에도 경련 때문에 손가락이 악악 거리면서 씹히는 고통을 참아가며 상황 설명을 하고 그 이후는 응급실- 중환자실- 일반병실까지 순식간에 지나왔습니다.


중환자실에서 하루 만에 일반 병실로 내려와 보호자로 갔더니 남편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불러도 대답이 없고 눈도 못 마주치고 한쪽 눈은 감지 못한 상태로 눈알이 말라가고 있습니다. 간호사들은 "중환자실에서 제대로 올려 보낸 거 맞아?" 당황하며 바이탈 사인을 체크합니다.


중환자실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대화는 안되어도 손 발을 움직이긴 했는데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며 안절부절 울고 있자 간호사가 주치의 선생님과의 통화연결을 도와주었습니다. 상태가 나아져서 일반병실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상태가 나빠서, 중환자실은 가족과 있을 수가 없어서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일반병실로 내려보내신 거라 하셨습니다.


이대로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새벽에 갈 수도 있으니 너무 놀라지 마시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시라는 주치의 선생님의 전활 끊고 병실로 돌아와 남편의 손발을 주물렀습니다.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다고, 사는 동안 고마웠다고, 애들 내가 잘 기르겠다고 귀에 속삭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남편이 기적처럼 눈을 떴습니다.


주치의 선생님과 담당 간호사, 호스피스 의사 선생님의 예상을 뒤로하고 의식을 찾고 눈을 맞추고 대화도 하는 상황입니다. 물론 섬망, 환각, 환청, 발음 어눌함, 단어혼동 등의 증상이 더 심해졌지만 입을 벌린 채로 웃기도 하고 밥도 먹고 본인 말을 못 알아듣는 제게 짜증도 내는 '사람다운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선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병이 나을 거란 처연하고 막연한 기대보단 그저 아이들이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이 119에 실려가는 모습이 마지막이 되지 않아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어눌하지만 사랑한다 영상을 남길 수 있게 되어서, 여보 죽으면 어디 묻히고 싶냐 물어볼 수 있어서,  날 보며 귀엽다 말하는 그를 다시 한번 눈에 담을 수 있어서, 수박귀신인 그에게 제사상에 수박 올려줄게라고 농담할 수 있어서, 그리고 내 농담에 실없이 웃는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어서..


이게 기적이구나 싶습니다.


바라던 기적과는 좀 다른 형태이지만 독자님들과 제가 바라던 '기적의 순간'이 기어코 오고야 말았구나 싶었습니다.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도 있습니다. 남편이 발작이 오고 나서 뇌종양의 대표증상인 두통이 없어졌습니다. 암성 통증은 마약성 진통제로도 이기기가 어렵고 제가 그동안 지켜본 바로도 그러했는데 통증이 물에 씻어낸 양 말끔히 없어졌습니다. 통증 없는 하루를 보내는 것 또한 기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지난번 연재는 친절한 독자분들께서 제게 어떠한 위로의 댓글을 다실지 마음 아픈 고민을 하실 것 같아 고민하지 마시라고 댓글을 막아 두었습니다. 이제 시간이 좀 흘렀으니 다시 댓글을 열어둘게요.


저 생각보다 잘 이겨내고 있고 앞으로도 잘 이겨낼 거예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낀 건데 전 제 생각보다 훨씬 외유내강한 사람이었구나 싶습니다. 엎어지고 쓰러져 우는 날도 있겠지만 툭툭 털고 일어나는 사람 역시 제가 될 거니까요.


글감과 하고 싶은 말이 넘치도록 쌓여가도 지금은 글쓰기 보단 남편과의 시간을 좀 더 소중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어머님과 교대를 해 집으로 돌아와 글을 올릴 시간과 여유가 생겼네요.


남편의 간병이 마냥 우울하지 않음을, 농담도 하며 비극을 희극같이 보내는 시간도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네요. 독자님들에게도 작은 기적이 모여 큰 기적이  소망합니다.



내일, 남편을 다시 볼 생각에 설레입니다.




 글은 3월 1일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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