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상조상품을 3개나 들었었다. 에어컨을 사면서 상품과 같이 끼워파는 적금식으로 붓는 상조 2건, 그리고 나머지 한건은 내 친구가 상조상품을 팔게 되면서 들어달라고 했던 건이었다. 적금식이라곤 하지만 상조상품이 이미 두 개나 있는 데다 친구의 부탁으로 하나를 더 들게 된 나는 멋쩍은 얼굴로 남편에게 말을 했다.
"오~ 이거 만기 되면 크루즈여행도 갈 수 있네. 아직 양쪽 부모님도 건강하시고 당분간 쓸 일이 없을 거 같으니까 애들 다 키워놓고 크루즈 여행이나 가자"
그 말을 하며 열심히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나를 보곤 남편도 동의하며 웃었다. 애들이 장성하면 그 상조를 깨 남편과 장기간 해외크루즈 여행을 갈 생각이었다. 상조상품을 들 당시에는 남편과 사이도 나쁘지 않았었다. 애들 다 키워놓고 떠난 크루즈 선상에서 여유롭게 와인을 기울이며 오붓히 둘이 보낼 시간을 상상했다.
그가 현재에 불만이 있는 날 달래려 하는 말은 늘 "지금 고생해야 노년에 너랑 놀러 다니지"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리 부었던 금액이 결국 본인의 장례식 비용으로 쓰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 장례식 내내 젊은 나이에 고인이 되고 미망인이 된 우리 부부가 안타깝다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장례지도사님과 팀장님을 뵈면서 고마운 마음 반, 쓰린 마음 반이었다.
20살을 넘어선 이래 나의 호칭은
'학생'에서 '아가씨'로,
'신부님'에서 '산모님'으로,
'어머님'에서 '학부모님'으로,
그리고 '미망인'으로 바뀌었다.
상조회사에서 계약을 진행하기 위해 파견된 장례지도사님의 입에서 처음 미망인 소리를 듣게 되었다. 처음엔 나를 호칭하는 말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두세 번 듣고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미망인라는 지칭이 나를 부르는 말이었음을.
장례팀장님께서는 연꽃으로 만들어진 꽃모양을 손수 만들어 그 안에 적고 싶은 메시지를 쓰라 했다. 정화의 의미가 있는 연꽃을 같이 태움으로써 젊은 나이에 병사를 한 고인이 하늘에 가선 아프지 말고 잘 지내라는 의미를 담는다고 말하셨다.
"미망인 님이 대표로 나오셔서 망자의 얼굴에 천을 덮어드리겠습니다"
메시지를 적어놓은 연꽃은 관의 아래에 놓이고 딸이 아빠에게 쓴 마지막 편지는 가슴에 놓여 거센 불길에 남편과 같이 태워졌다. 남편은한 줌의 재로, 그 큰 몸이 어디로 들어갔는지도 모를 작은 함에 들어 돌아왔다.
장례식이 끝나고 남편이 하늘을 간 지 18일째 되는 날, 미망인이라는 호칭을 검색해 봤다. 아닐 미(未), 죽을 망(亡), 사람 인(人). 남편이 죽고 홀몸이 된 여자.본뜻은 남편이 죽을 때 같이 죽었어야 하나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 이란 뜻으로,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여자를 이르는 말. 순장의 풍습이 남아있던 시절 만들어진 단어이나 왕비나 높은 귀족의 부인들이 쓰던 단어라 고급스럽고 우아하게 들려 현대에 와서는 과부의 *미칭(美稱)으로 쓰이고 있단다. 미망인의 다른 대체어는 과부라고 쓰여 있다. 전래동화에서 주로 나오던 그 '과부'란 지칭이 나와 같다니. 아직도 실감이 잘 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