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과 알코올 간질환으로 중환자실에서 한 달 넘게 치료받았던 40대 중반의 환자가 있었다. 다리가 0자로 심하게 휘어 걸을 때마다 오뚝이처럼 뒤뚱뒤뚱 위태롭게 걷는 어머니는 늘 중환자실 앞에서 어정거렸다.
알코올 환자에게 유일한 혈육은 정부에서 주는 생계비로 연명하는 그 어머니밖에 없다. 129 긴급 의료비 지원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줄여드리는 정도에서 내 역할은 전부 다였다. 어머니는 수시로 상담실을 찾아서 고맙다며 가뜩이나 구부정하게 휜 허리를 땅에 더 굽히어 지게 걸음으로 돌아가곤 했다.
두어 달 만인가. 외래 검사실에서 우연히 오뚝이 할머니를 만났다. 멀리서도 뒤뚱거리는 모습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어르신 오랜만이에요~아드님은 좀 나아지셨어요?"
아차... 나를 반갑게 쳐다보던 얼굴이 안부인사에 그늘이 드리워지는 것이다.
"그때 고비 못 넘기가 저세상 보냈심더"
장례식에 가서 조의를 하고 고인의 유가족을 만나는 일도 잦은데 조의를 표하는 위로의 말 한마디는 늘 어색하고 입을 얼어붙게 만든다.
"얼마나 상심이 크셨겠어요. 그래도 술 마시면서 애 먹이고 맨날 아파하는 아들 뒤치다꺼리 안 하니까 편하실 테고.. 아드님도 편한 곳으로 가 있을 거예요"
기껏 위로라고 전한 말이 안 한 만도 못하다. 차라리 말을 않고 손을 잡아드릴 걸.
"그래도... 그래 애 먹이도 자슥 앞세우고 이래 살아 있으이끼네 영~~ 안 편심 더... 내 힘들게 해도 살아있으마.... 월매나..."
그랬다.
부모에게 자식은 그런 것인가 보다. 자식은 속 썩여도 미워도 애 먹여도 아파도 떨어져 있어도... 결국은 죽어도 이가림의 시처럼 자식은 오래 전의 잘랐던 탯줄이더라도 '기어이 끊어 낼 수 없는 죄의 탯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과 연결된 영혼의 탯줄을 끊어낼 수 없는 것일까. 요즘 나에게 가장 큰 화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