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광화문에 가자고 했다. 민승이는 축구공을 머리로 통통 받으며 몇 번이나 성공하는지 세고 있었다.
“일곱, 여덟, 아홉, 아이쿠!”
공이 머리에 빗맞아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민승이는 아쉬워하며 떼굴떼굴 굴러가는 공을 쫓아갔다.
“아, 한 번만 더 성공했으면 열 번인데. 아까비.”
“민승아, 아빠랑 광화문 갈 거니까 준비해.”
아빠가 또 말했다.
몸을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면서 축구선수처럼 멋지게 폼을 잡던 민승이는 눈을 껌뻑껌뻑했다.
“나 이따 친구들이랑 축구 할 건데?”
토요일 오후였다.
가을 하늘은 파랗게 개었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서 겨울처럼 추웠는데, 오늘은 봄 날씨처럼 날이 좀 풀렸다. 축구 하기 좋은 날이었다.
“축구는 내일 하고 오늘은 아빠랑 광화문에 가자.”
“에이, 안 돼. 친구랑 약속했단 말이야.”
“약속 내일로 미뤄, 내일 하면 되잖아.”
“안 된다니까. 왜 약속을 미루래?”
“친구한테 미안하다고 그래, 오늘은 아빠랑 꼭 광화문에 가야한다고.”
“싫어, 갑자기 광화문엔 왜 가자고 그래?”
민승이는 이순신 장군이 생각났다. 광화문 하면 이순신 장군 동상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처음 이순신 장군 동상을 봤을 때 민승이는 “우아!” 감탄하며 목이 아프도록 올려다보았다. 이분이 거북선을 만들어 왜적을 무찌르고 우리나라를 구해준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이구나.
세종대왕 동상도 봤다.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글자라는 한글을 만들어주신 고마우신 임금님.
하지만 그뿐이었다. 광화문에 민승이가 볼 거라곤 그것 밖에 없었다. 그것도 이미 다 본 건데, 뭐 하러 거길 또 가나? 놀이공원도 아니고…….
“그래 민승아, 오늘은 아빠랑 같이 광화문에 가. 축구는 다른 날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
엄마가 방에서 나오며 아빠를 거들었다. 엄마는 감기 때문에 칭얼대던 주승이를 겨우 재우고 나오는 참이다.
“그럼 광화문에 다른 날 가면 되잖아? 왜 꼭 오늘 가야 돼?”
“응, 오늘 가야 해.”
“왜애?”
“가보면 알아. 네가 꼭 가야 해. 엄마도 같이 가려고 했는데 주승이 열이 안 떨어지네?”
그러면서 엄마는 텔레비전 리모컨을 찾아 눌렀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시간만 나면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보고 있었다. 민승이가 만화를 볼 때만 잠깐 켜게 하고, 다 보면 재빠르게 꺼버리던 엄마였다.
늘 늦게 들어오던 아빠도 일찌감치 들어와선 엄마랑 텔레비전을 본다. 어떤 날은 두 분이서 밤늦게까지 맥주를 마시면서 무슨 얘긴가를 심각하게 나누기도 했다.
한 번은 재미없는 뉴스만 보는 엄마와 아빠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 아빠는 왜 맨날 재미없는 뉴스만 봐?”
“재미있는데?”
“에이, 뉴스가 뭐가 재밌어?”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뉴스가 알려주고 있거든.”
“드라마나 영화보다 훨씬 재밌어.”
“감독한테 일부러 이렇게 만들라고 해도 이거보단 재미없을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어휴.”
여기에서 두 분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한숨을 내쉬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 아들한테 말해주기가 너무 부끄럽다.”
민승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대는 엄마와 아빠를 보면서 기다렸지만 두 분은 더 말해주지 않았다.
“민승아, 여기 엄마가 간식이랑 물이랑 챙겨 넣었으니까 이거 메고 아빠랑 같이 갔다 와.”
엄마는 주방에서 뚝딱뚝딱 뭔가를 만들어 배낭에 넣어가지고 왔다.
“가기 싫은데.”
“그러지 말고 가서 우리 아들 힘 좀 보여주고 와.”
“힘?”
엄마가 빙그레 웃었다.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힘!”
엄마는 뚱딴지 같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기까지 했다.
“친구한테 전화해서 오늘은 아빠랑 광화문 가야 한다고 축구는 내일하자고 해.”
“아이참.”
민승이는 못내 아쉬워 입을 부루퉁 내밀었다.
엄마가 그런 민승이를 안아주었다. 어찌나 세게 껴안는지 민승이는 숨 막히는 줄 알았다.
민승이를 꽉 끌어안고 엄마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왠지 더는 고집을 부리면 안 될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빠랑 탄 지하철은 만원이었다.
아빠 차를 타고 가면 편할 텐데 아빠는 오늘 같은 날은 차가 많이 밀릴 거라고 했다. 토요일이라 다들 어디 놀러 가는 모양이었다.
지하철 안에는 어른들도 많았고, 민승이 또래로 보이는 애들도 있었고, 유모차도 보였다.
“어휴, 사람 진짜 많다.”
내리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서는 역마다 사람들이 꾸역꾸역 올라타서 지하철은 갈수록 미어 터졌다. 민승이는 사람들에게 밀려 점점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빠, 아직 멀었어?”
저녁 때 추울 거라며 엄마가 입혀준 오리털 점퍼 때문에 더워서 땀이 다 났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아빠가 민승이 배낭을 벗겨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아빠도 사람들 틈에 끼어서 좀 괴로운 표정이었다.
원래는 지금쯤 애들이랑 한창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으이씨. 아빠가 민승이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천장에서 선풍기 바람이 불어왔다. 어휴.
“아빠 아직도야?”
“이제 거의 다 왔어.”
그러고도 지하철은 한참을 더 갔다.
이윽고 머리 위 천장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번 역은 광화문, 촛불로 켜져 있는 광화문역입니다. 이번 역에서 내리시는 분들은 부디 몸조심하시고 대한민국을 위해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자, 우리도 내리자.”
아빠가 말했다.
출입문이 열리자 그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거의 모두 일어나 광화문역에서 내렸다.
민승이는 아빠 팔을 붙잡았다.
“아빠.”
“민승아, 아빠 손 꼭 잡아, 놓치지 말고.”
아빠가 민승이 손을 찾아 바짝 끌어당겼다. 아빠의 손아귀 힘이 강하게 전해졌다.
“사람 진짜 많지?”
아빠도 긴장했는지 목소리가 조금 들떠 있었다.
지하철 승강장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런데다 방금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 사람들로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하나도 없었다.
민승이는 사람들에게 완전히 둘러싸여서 아주 천천히 조금씩만 걸을 수 있었다. 계단을 올라갈 때도 한 걸음 한 걸음 세듯 올라가야 했다. 앞사람 다리와 신발 뒤축밖에 안 보였다. 자기 발로 걸어간다기보다는 어떤 힘에 실려 둥둥 떠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밖에 나왔을 때 민승이는 저절로 옮겨온 듯 어리둥절한 느낌이었다. 광화문 거리는 민승이를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아빠, 사람들이 막 찻길로 다녀!”
언제나 차들로 꽉꽉 차 있던 광화문 네거리가 지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어디가 차도이고, 어디가 인도인지 구분도 안 됐다. 달리는 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아빠가 민승이 손을 잡고 성큼 차도로 내려갔다.
“아빠.”
“괜찮아.”
아빠가 씽긋 웃으며 사람들 속으로 민승이를 데려갔다.
그때 왔을 때랑은 완전히 달랐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던 길을 이렇게 두 발로 걸으니 왠지 떨리면서 들뜨는 기분이었다. 놀이공원에라도 온 것 같았다. 사람들 표정도 그랬다. 엄마 아빠랑 손잡고 가는 아이들, 유모차 탄 아기들, 목말을 타고 가는 아이도 보였고, 아줌마 아저씨 들도 있었고, 형 누나 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아빠,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
사람들은 제각기 손에 뭔가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뭐라 뭐라 크게 고함치기도 하고, 팻말을 흔들어 보이기도 하고, 목소리 모아 노래하기도 하고. 어디선가 우렁우렁한 말소리가 천둥처럼 울리고 있었다.
“모두 힘을 보여주려고 나온 거야.”
아빠는 무리 지어 걸어가는 사람들 곁으로 민승이를 데리고 갔다.
“우리도 우리가 모이면 얼마나 센지 진짜를 보여주자.”
큰소리로 구호를 외치던 어떤 아저씨가 민승이에게 환하게 웃어주었다.
민승이는 뭔지 모를 어떤 힘에 이끌려 어른들과 함께 찻길을 걸었다. 어른들이 힘차게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저마다 들고 있는 팻말의 글씨도 읽어보았다. 아빠도 옆에서 크게 외치며 사람들 노래를 따라불렀다.
민승이가 놀라 돌아보자 아빠가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 아빠가 밤마다 심각하게 보던 텔레비전 뉴스가 생각났다.
“아빠, 어른들은 왜 화났어?”
아빠는 민승이를 물끄러미 건너다보았다.
“절대로 거짓말하고 나쁜 짓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거짓말하고 나쁜 짓 해서.”
민승이는 그 말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빠도 화났어?”
아빠는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승이는 이때 아빠 눈에서 반짝하고 빛나는 무언가를 똑똑히 보았다.
저 멀리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였다. 이순신 장군은 그때 왔을 때처럼 큰 칼 옆에 차고 우리나라를 지켜주기 위해서 여기 모인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구름처럼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주황색 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민승아.”
아빠가 어딘가에서 초를 가져와서 불을 켜 건네주었다.
초는 종이컵 바닥을 뚫어 꽃받침처럼 두르고 있었다. 종이컵이 바람을 막아주고 있었지만 민승이는 행여 꺼질까 봐 손으로 촛불을 감쌌다. 주황색 불빛은 별처럼 손안에서 반짝였다.
찻길 바닥에 줄지어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손에 손에 촛불을 든 사람들이 그 뒤로 차례차례 자리를 잡고 앉고 있었다. 민승이와 아빠도 사람들 뒤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 앞쪽에 커다란 전광판이 보이고, 어떤 사람이 마이크에 대고 힘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말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와!”
월드컵에서 결승 골을 터뜨린 것처럼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촛불을 들었다. 황금빛 촛불의 물결이 사람들 머리 위에서 출렁거렸다. 민승이는 꼭 자기가 골을 넣은 듯 가슴이 쿵쾅거렸다.
“민승아, 엄마 전화.”
아빠가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전화기 화면에 엄마 얼굴이 보였다. 엄마도 촛불을 들고 있었다. 잘 자고 일어났는지 주승이도 엄마 품에 안겨서는 촛불을 들고 있었다.
“민승아, 엄마랑 주승이 몫까지 파이팅!”
엄마가 활짝 웃으면서 촛불을 흔들었다.
“형아, 홧띵!”
주승이도 촛불을 흔들었다.
민승이는 어른스럽게 웃으려 애쓰며 촛불을 들어 보였다.
“와와!”
사람들이 또 환호성을 질렀다. 지난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떠다니던 궁금증들이 어렴풋이 이해되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말한 힘의 의미도.
옆자리에 형들이 새로 찾아와 앉았다. 형들이 들고 있는 빈 초를 보고 민승이가 말했다.
“형, 제가 불붙여 드릴게요.”
민승이는 온 마음을 다해 형들의 빈 초에 불을 붙여 주었다. 형들에게로 옮겨간 작은 불빛이 옆으로, 그 옆으로 계속 번져나갔다. 민승이는 가슴에 꽉 들어차는 뜨거운 힘을 느꼈다.
조그만 불빛들이 하나하나 모인 촛불은 이제 우주의 별처럼 거대하게 반짝였다. 깜깜한 밤이 와도 오천만 개의 촛불이 켜진 광화문은 절대 어둡지 않았다. <끝>
*2016년 [한국아동문학]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