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두 마리
똥돼지 두 마리가 품 안으로 뛰어들기에 엉겁결에 끌어안았는데, 깨어보니 꿈이었다.
돼지꿈을 꾸다니. 그것도 포동포동한 똥돼지를 두 마리씩이나.
이건 분명히 복이 굴러들어 올 징조였다. 나는 곁에서 곤히 자는 남편을 흔들어 깨우려다 멈칫했다. 섣불리 발설했다가는 복이 달아날까 싶어서였다. 복권 생각이 맨 먼저 났다. 어떤 사람이 몇백억에 당첨되어 하루아침에 팔자가 뒤집혔다는 그 로또복권 말이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좋은 꿈을 꾸고 복권을 샀더니 당첨됐더라, 하고 말했더랬다.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복권을 사본 적이 없다. 그런 내게 복권이 떠올랐다는 건, 그건 하늘이 주신 기회였다. 이렇게 돼지꿈도 꾸게 해 주셨으니 틀림없었다.
지난 금융위기 때 남편은 직장을 잃었다. 신혼이었던 그때 고생한 생각을 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사무실에서 근무만 하던 이가 보험도 팔고, 자동차도 팔고, 정수기도 팔고, 하여튼 돈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팔기 위해서 아침부터 밤까지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녔지만, 실적은 저조했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남편은 차라리 장사해 보겠다고 전세보증금을 빼내 분식집을 차렸다. 많은 돈은 벌지 못했으나 그래도 먹고는 살 수 있었다. 나는 남편과 생활이 좀 나아질 때까지 아이를 갖지 않기로 약속했다. 우리는 무척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분식집 수입이란 게 빤해서 생활이 나아질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다행하게도 3년 전에 남편이 복직되었다. 우리는 분식집을 정리하고 변두리 소형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사한 날 밤에 나는 남편의 손을 붙잡고 울었다. 남편도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미안하다고 말했는데, 남편이 잘못한 건 없지 않은가. 나는 남편이 참 고마웠다.
그렇게 고생해 온 우리 부부이므로, 불평 없이 나쁜 짓 안 하고 묵묵히 힘든 나날을 견뎌온 우리이므로 나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늘이 우리에게 복을 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나는 은행으로 달려가 지난번 남편이 받아온 보너스 중 일부를 헐어 로또복권을 샀다. 똥돼지꿈을 꿨으니 1등 당첨은 떼 놓은 당상이었다. 남편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1등에 당첨된 복권을 남편에게 짠! 하고 안겨주고 싶었다. 기뻐 어쩔 줄 몰라하는 남편의 모습을 상상하니 입이 째지고 가슴이 뛰었다.
추첨하는 당일, 몇십억이니 수백억이니 하는 1등 당첨금 액수에 놀라 기절하지 않게 미리 우황청심환을 사 먹고 TV 앞에 앉았다. 드디어 추첨식이 시작되었다. 알록달록 십 수 개의 공이 투명한 통 안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다 단 하나의 공이 선택되어 올라왔다. 그런 식으로 여섯 개의 공을 골라내는 그 몇 분간이 내게는 영원처럼 긴 시간이었다.
마침내 식이 끝났다. 믿을 수가 없었다. 추첨식이 끝나고 나서도 난 한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다. 고작 4등에 당첨되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당첨금은 내가 털어 넣은 금액보다 훨씬 적었다. 돼지꿈을 꿨는데……. 그때 내 품에 뛰어들던 돼지가 두 마리였음이 생각났다. 그럼 다음 주인가? 나는 2주째에 당첨될 거라고 확신했다.
4등 당첨금을 몽땅 복권으로 바꿨다. 이번 주는 틀림없었다. 차마 추첨식을 지켜볼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마침 남편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당신 이 영화 보고 싶다고 그랬잖아?” 나는 흔쾌히 따라나섰다.
처음에는 자꾸 복권이 떠오르는 바람에 집중할 수가 없었으나, 차츰 영화에 빠져들었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고 밤바람을 쐬면서 돌아다니는 일은 무척 즐거웠다. 나는 행복했다.
집으로 돌아오자 복권에 생각이 미쳤다. 나는 남편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몰래 번호를 맞춰보았다. 가슴이 뛰고 손이 떨렸다. 이것도 아니고, 이것도 안 됐고……. 몇 번이나 번호를 확인해 봤는지 모른다.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당첨된 것이라곤 겨우 5등 2장뿐이었다.
남편 곁에 누우니 참았던 눈물이 주르르 쏟아졌다.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으면서 느꼈던 행복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돌연 나는 불행한 여자가 돼버렸다. 나는 울면서 잠들었다.
다음날 남편이 급히 쓸데가 있다며 보너스를 다시 달라고 했을 때,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어어, 그게 말이야.” 나는 친구에게 빌려줬다고 그만 둘러대고 말았다. 남편은 정말 급하다며 빨리 돌려받아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겨우 말하고 쿵쾅대는 가슴을 몰래 쓸어내렸다.
돌연 오기가 생겼다. 나는 5등 당첨된 그 2장도 복권으로 바꿨다. 똥돼지 두 마리는 이 2장을 뜻하는 게 틀림없어! 이번엔 기필코 될 거야, 꼭!
가슴을 졸이면서 추첨식을 지켜봤다. 제발 그 꿈이 맞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아니, 본전만이라도 되찾기를 기원했다. 하늘이시여!
그러나 하늘은 무심했다. 마지막 염원이 담긴 복권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하나도 맞지 않았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그처럼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로 단 몇 주 만에 피 같은 보너스를 헐어 공중으로 날려 보내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고, 홀려도 제대로 홀렸다. 나는 이 거지 같은 복권을 구겨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 속이 이만저만 상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친정엄마에게 전화했다.
“돼지꿈이 길몽이라는 말은 틀렸어요. 내 품으로 똥돼지 두 마리가 뛰어드는 꿈을 꿨는데 한 장도 안 맞더라고요. 엄마도 그러니까 꿈자리 뒤숭숭하다고 괜히 우리들 걱정하고 그러시지 마세요.”
나는 괜히 엄마에게 화풀이하며 투덜거렸다.
엄마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뭐? 돼지 두 마리가 니 품으로 뛰어들었다구? 아이고, 얘야, 그거 진짜 길몽이야.”
“길몽은 개뿔.”
“그거 대박 터지는 꿈 맞는 거야!”
엥?
난 긴가민가했고, 혹 내가 번호를 잘못 본 건가 싶었다. 그래 쓰레기통을 다시 뒤지려고 벌떡 일어났는데, 엄마의 들뜬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왕왕 울렸다.
“얘, 그건 태몽이야!”
“네?”
세상에 태몽으로 복권을 샀다니…….
이 아파트로 이사 오고, 당분간 아이를 갖지 말자는 우리의 약속은 자연히 하루라도 빨리 아이를 갖자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아이는 좀처럼 들어서지 않았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남편도 아이를 많이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 역시 애타게 기다려왔던 터였다.
엄마의 말을 듣고 보니 달거리 끊긴 지 좀 되었다. 나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검사를 받는 내내 가슴이 쿵쾅거렸다. 이윽고 의사가 들려준 말은 세상에서 가장 기쁜 소식이었다.
“축하합니다. 임신 3주입니다.”
기쁨에 들뜬 나는 남편에게 모든 얘기를 들려주었다. 돼지꿈을 꾸고 복권을 샀는데 알고 보니 태몽이었더라고, 나도 참 둔한 엄마인가 보다고, 드디어 당신이 아빠가 되는 거라고,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다고, 나는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뭐어? 야호!”
남편은 환호성을 지르며 나를 껴안았다. 내 배에 귀를 대보기도 하고 “내가 아빠야~”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제 겨우 콩알만 한 아이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고 나니, 그제야 내가 저지른 일이 생각났다. 나도 모르게 복권 얘기를 실토하고 말았으나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혼자 전전긍긍하느니 솔직하게 용서를 구하는 게 나았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다신 그런 허무맹랑한 짓 안 할 거야.”
“비싼 수업료 낸 거로 생각해야지 뭐. 하지만 당신이 진짜 대박을 터뜨린 건 사실이야. 한 번에 사정되어 나오는 정자가 2억에서 3억 마리라는데, 그중에 단 하나만이 인간이 될 수 있는 거잖아. 우리는 모두 태어날 때 이런 엄청난 경쟁을 뚫고 나오는 거니까, 그깟 로또복권의 확률에 비하겠어? 우리 아이도 3억 분의 1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을 뚫은 놈이니까 굉장한 녀석일 거야. 참 돼지가 두 마리랬지? 그럼 쌍둥인가 보다, 하하!”
역시 내 남편이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