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이맘 때면
“거 당신 작작 좀 먹어라. 맨날 살찐다고 투덜대면서 사람 참.”
“아깝잖아. 그냥 다 내버릴 거 아냐, 이 음식들.”
“당신 입이 쓰레기통이야? 거울 좀 봐. 당신 눈엔 그 출렁거리는 살들이 안 보여? 에이.”
모처럼 아이들을 떼어놓고 둘만의 오붓한 저녁식사를 즐기던 아내는 남편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언제는 통통하게 살 오른 모습이 귀엽다고 그러더니만 이제는 대놓고 타박을 하다니. 뭐, 쓰레기통?
“당신이야말로 담배 좀 작작 피워요.”
잔뜩 골이 난 아내의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올 리 없었다. 남편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좋아, 나 오늘부터 다이어트 하기로 결심했어.”
음식점을 나오면서 아내가 말했다.
“언젠 당신이 다이어트 안 해서 살찐 거야? 러닝머신이랑 자전거 사준 지가 언젠데.”
“이번엔 달라, 나 틀림없이 다이어트할 거니까 대신 당신 나랑 약속 하나 해.”
아내는 단단히 마음먹었다. 곧 여름휴가도 다가오므로 이참에 잘 됐다 싶었다. 결혼하기 전 몸매를 되찾아 바닷가에 가서 멋지게 뽐내면 남편도 눈이 휘둥그레지겠지? 아내는 자신이 다이어트 하는 조건으로 남편에게 담배를 끊을 것을 내세웠다.
그동안 해마다 봄이면 시도했던 다이어트가 실패로 끝난 이유는 아내 혼자만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계획을 세우곤 했지만 고독한 다이어트의 끝은 언제나 흐지부지였다.
“당신 다이어트 하는 데 왜 날 걸구 넘어져?”
“이참에 당신도 담배 끊고 얼마나 좋아. 당신 담배 끊게 하기 위해서라도 나 기필코 성공할 거야. 자, 약속해.”
싫다고 도망갈 수도 없는 일. 아내는 애들처럼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할 수 없이 남편은 손가락을 걸고 도장 찍고 복사하는 시늉까지 했다.
그날로 아내는 다이어트에, 남편은 금연에 들어갔다.
저녁때 퇴근해 들어온 남편에게 그날의 다이어트 상황을 보고하는 게 하루 일과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남편도 아내에게 담배를 피웠나 안 피웠나 추궁을 받아야 했다. 매번 남편은 단 한 개비도 피우지 않았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사실 참다못해 한두 개비는 피웠다. 아내는 킁킁 냄새 맡는 시늉을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문제는 휴일이었다. 하루 종일 아내와 함께 집에 있다 보면 도저히 담배를 피울 짬을 낼 수가 없었다. 그날도 아내는 아침에 밥 반 공기만 먹고 하루를 버티면서 운동에 열중했다. 하지만 남편은 담배 생각이 간절하여 아내 몰래 피웠는데, 그만 들키고 말았다.
“당신! 금연하기로 약속해놓고 어기기야? 좋아, 나도 약속 안 지켜.”
그러면서 아내는 커다란 양푼에다 고추장과 참기름을 듬뿍 넣어 밥을 비비더니 앉은 자리에서 다 퍼먹는 게 아닌가. 아귀아귀 먹는 그 모습이라니. 며칠을 거의 굶다시피 했으니 오죽 먹고 싶었겠는가. 한편으론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기가 찼다.
“딱 한 개비 피운 거 갖고 되게 그러네. 핑계가 좋지.”
하기는 쉽고 지키기 어려운 게 약속이라지만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이왕 하는 거 좀 제대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은 좀 더 엄격한 벌칙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당신 다이어트 실패하면 이혼이야.”
물론 진짜로 이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만 아내가 좀 더 모질게 마음을 먹고 다이어트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해본 말이었다.
아내는 좀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했나 싶어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데, 아내는 결연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좋아! 알았어. 나 다이어트 실패하면 당신에게 이혼당해도 할 말 없어. 대신 당신도 이번에 금연에 실패하면 이혼이야!”
세상에. 부창부수라는 말이 이래서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부부는 이를 악물고 다이어트와 금연에 매진했다.
몇 달 뒤, 이혼당하지 않으려고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드디어 아내는 다이어트에, 남편은 금연에 성공하게 되었다.
“축하해, 처녀 적 몸매를 되찾은 거. 정말 잘했어, 당신.”
“담배 끊은 사람은 독종이라지? 하지만 난 독종이 좋아. 당신이 너무 자랑스러워.”
부부는 자축 파티를 열었다.
입이 미어져라 케이크를 먹고 있는 남편이 말했다.
“그나저나 살이 이렇게 쪄서 어떻게 하지? 계속 이렇게 먹을 게 당기니 말야. 아 참, 담배 연기 좀 저리로 뿜어. 담배 끊은 뒤로는 냄새도 맡기 싫다고.”
“나 완전히 골초가 됐나 봐. 담배 피우면 살 빠진다고 해서 쬐끔씩 피우던 게 이젠 인이 배겨버렸어.”
그랬다. 아내는 살 빼는 효과가 있다며 새로 담배를 배운 것이었고, 남편은 금연한 입이 궁금하다고 온종일 주전부리를 해대는 통에 살이 쪄버린 것이었다.
“어쨌거나 우리, 다이어트와 금연에 성공하긴 했잖아?”
케이크를 우적우적 먹어대는 남편과 담배 연기를 푸푸 뿜어대는 아내는 서로를 위로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