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왜 그날 넥타이를 맸을까.
“아이고 배야, 아이고 나 죽네.”
갑자기 할멈이 배를 움켜쥐고 쓰러지더니 바닥을 떼굴떼굴 구른다.
영감은 저 할망구가 노망이 났나, 왜 저래?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어쩐지 심상치 않은 느낌에 슬그머니 다가가 보았다.
할머니는 안색이 하얗게 질려 백지장 같았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굉장히 아파하는 모습에 할아버지는 큰일 났다 싶어 택시를 잡아타고 급히 병원으로 옮겨갔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급성 복막염이에요.”
의사는 다급한 목소리로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애들한테 연락할 새도 없이 할머니는 수술실로 들어가고, 몇 시간 뒤 수술은 무사히 잘 되었다고 의사가 말해주었다.
할머니는 입원실로 옮겨졌다.
“휴지 좀 줘요.”
경황없이 들어온 터라 휴지가 있을 리 없었다. 할아버지는 병원 내 슈퍼마켓에 가서 병원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들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할아버지의 할머니 병 수발 고난기는.
“간호사 좀 불러줘요.”
“물 좀 주세요.”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에구구구 아파 죽겠네. 진통제 좀 달라고 하세요.” “약봉지 좀 뜯어줘요.” “환자복 좀 갈아입고 싶은데.” “식판은 밖에 내다 놔야지요, 냄새나게. 쯧.”
“거기 컵 좀 달라니까 내 말 안 들려요?”
할머니의 요구 사항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처음엔 할머니가 수술한 환자이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당연히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어서 빨리 나아서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할아버지는 여간 귀찮고 성가신 게 아니었다.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원 뭐 이렇게 부탁하는 것이 많은지. 하도 사소한 일들을 자꾸 시켜서 불뚝 성질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꾹꾹 참고 다 들어주었다. 며칠 동안 병실에 갇혀 환자를 간호하는 일은 무척 힘들었다.
할아버지가 보호자용 침대에 옹색하게 누워 잠깐 눈 좀 붙일라치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할아버지를 불렀다. 할머니가 부르지 않으면 의사들이 떼 지어 몰려와서 이것저것 묻고는 휭 가버렸다. 그러고 나면 또 다른 환자들을 문병 오는 사람들로 인해 다인실 병실은 온종일 잠잠할 새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70년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자신이 직접 물을 떠 마신 적이 없는 전형적인 가부장이었다. 할머니가 부엌에서 음식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도 할머니를 불러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라고 하였으니 그 성정은 알만했다. 헛기침 한 번이면 할머니가 알아서 척척 손이 되고 발이 되어주곤 했으니 그 꼬장꼬장한 양반이 난생처음 마나님의 병원 수발드는 일이 얼마나 곤혹스럽고 난처했을까.
입원이 좀 길어져서 일주일이 다 돼갈 즈음이었다. 할머니가 머리 감고 싶다며 할아버지에게 샴푸를 사 오라고 부탁했다.
잠시 후 돌아온 할아버지 손에는 검은색 비닐봉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할머니는 샴푸인 줄 알고 비닐봉지를 열어보았는데 얼씨구, 안에 들어 있는 건 넥타이가 아닌가. 백화점에 갔다가 넥타이가 너무 마음에 들어 사 왔다는 것이다. 세상에! 할머니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분통을 터뜨렸다.
“난 일주일째 머리를 못 감아서 미친년 대가리를 하고 있는데 당신은 샴푸를 사 오라고 시켰더니 넥타이를 사들고 와요? 당신이 무슨 연예인이에요? 그걸 매고 어딜 갈 데가 있다고 그래요!”
할아버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얼굴만 벌겋게 굳어져 서 있을 뿐이었다. 주위 보호자들이 심지어 아파 누워 있는 환자까지도 킥킥 입을 가리고 웃었다. 할아버지는 병실을 나가고 말았다.
그날 저녁이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 손을 잡아 이끌고 병실을 나섰다.
“아이 왜 이래요. 이 손 놔요. 망측하게.” “잠자코 따라와 봐요.”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데리고 간 곳은 샤워실이었다.
“자 이렇게 해봐, 내가 머리 감겨줄 테니까.”
할아버지는 세면대 가득 따뜻한 물을 받더니 소매를 걷어붙였다. 사실 할머니는 오른손에 달린 링거 때문에 낮에 할아버지가 샴푸를 사다 주었다 해도 혼자서는 머리를 감을 수 없었다. 감겨달라고 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는데 할아버지가 먼저 머릴 감겨주겠다고 나섰으니 할머니는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할머니가 70년 가까이 살면서 병원 신세를 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 수발을 받는 것도 결혼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원해?”
샴푸 거품을 잔뜩 내어 머리를 감겨주면서 할아버지가 물었다.
“아프니까 내가 당신한테 이런 호강도 받아보는군요.”
할머니가 눈시울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고마워요.”이 말을 한 사람은 할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였다. 할머니는 잠자코 있었다.
“당신 나 때문에 그동안 고생 참 많이 했어요.”
할머니는 속으로 “당신이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가끔 아파 보는 것도 괜찮네요.” 중얼거렸다.
드디어 할머니가 퇴원하는 날이 되었다. 할머니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도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혼자서 중얼중얼 “이제는 내가 다 나았다고 짐 싸는 일도 도와주지 않네.” 투덜거렸다.
잠시 뒤에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할머니는 깜짝 놀랐다. 할아버지는 근사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할머니에게서 원망을 들었던 문제의 그 넥타이를 척하니 매고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퇴원을 축하합니다.”
할아버지의 장난기 어린 말투와 정성스러운 옷차림에 할머니는 그만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