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여태 출발 안 하고 뭐 하는 거야? 고모랑 아주버님은 벌써 와 계시단 말이야.”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쨍쨍히 울렸다.
“알았어, 곧 간다고. 아버진 어떠셔? 혹시 벌써…….”
유산 상속에 대한 말씀이 있으셨냐고 금환 씨는 차마 묻지 못했으나 역시 아내의 눈치는 빨랐다.
“아냐, 아직이야. 저녁 내내 혼수상태이시거든. 잠깐이라도 정신이 드시면 무슨 말씀이 있으시겠지. 고모랑 아주버니는 하루 종일 아버님 곁을 지키고 있는데 뭐야 당신만 빠졌잖아. 당신 오기 전에 돌아가시면 어떡할라 그래?”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금환 씨는 거래처 신 차장을 욕하며 성급히 차를 몰았다. 신 차장은 무려 약속 시간보다 2시간이나 넘겨 나타났다. 늦은 사람은 신 차장인데 굽실거려야 하는 건 금환 씨였다.
“내 지분만 상속받아 봐라. 이놈의 회사 당장에 때려치운다. 에잇, 더러운 세상!”
금환 씨는 핸들을 팍 꺾어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금환 씨의 아버지는 소위 ‘알부자’이다. 갖고 있던 논마지기 앞으로 길이 뚫리는 덕택에 땅값이 금값이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고향 마을에 지하철도 새로이 들어오고, 날마다 자고 일어나면 하늘을 뚫을 듯한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치솟는 중이었다. 평생 농사만 지을 줄 알던 아버지는 땅을 절대 팔지 않을 거라고 고집을 부리고 있지만 그깟 쌀이 대수인가. 금환 씨는 땅을 팔아 사업을 할 계획이었다.
고향 국도로 들어서자 금환 씨의 마음은 더욱 다급해졌다. 아버지로부터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는 한시가 급했다. 금환 씨는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쿵!
순간 차체가 무슨 물체와 세게 부딪쳤고, 그는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익! 바퀴 마찰음이 가로등 하나 없는 캄캄한 국도변을 날카롭게 갈랐다. 나가보니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사람을 치다니! 도대체 이 작자는 어디에서 불쑥 나타난 거야! 왈칵 겁이 난 금환 씨는 남자를 차에 태워 인근 병원으로 달렸다. 제발 죽지만 말아다오. 남자는 인사불성이었다.
의사와 간호사가 달려들어 응급처치를 하는 동안 보험사와 경찰에 연락을 하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잠시 후 경찰이 왔다. 경찰의 질문에 대답하는 금환 씨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워져 갔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는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그리고 아버지를 임종해야 한다고 사정했다.
간신히 집으로 올 수 있게 된 금환 씨는 그때까지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고 떨리고 있었다. 아내가 왜 이리 늦었느냐고, 빨리 들어가 보라고 채근을 해댔다. 방문 앞에 서자 이상하게도 금환 씨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방으로 들어갔다. 병색이 완연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자, 울컥 마음이 쓰려왔다.
“아버지…….”
금환 씨는 작은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러보았다. 목소리를 알아들으신 걸까. 아버지의 얇은 눈까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반짝 열렸다.
잠시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아버지의 초점 없는 눈은 “막내 왔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금환 씨는 달려올 때 마음과는 달리 아버지가 쾌차하시길 간절히 바랐다. 형과 누나가 건너가서 쉬라고 거듭 권했지만 금환 씨는 그 밤 내내 아버지 곁을 지켰다.
아침이 되자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회생했다. 금환 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버지는 유산에 대한 말씀은 하지 않았다.
금환 씨는 병원으로 갔다. 그런데 환자가 누워 있어야 할 병상이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 영안실로 실려간 건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때 피해자의 아버지가 병실로 들이닥쳤다. 그는 노인에게 무릎을 꿇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멱살잡이를 당하고 욕설을 들을 각오를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어리둥절했다. 노인이 금환 씨의 손을 부여잡으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보게 젊은이, 고마우이. 자네가 내 생명의 은인이야.”
굳은살투성이 거친 손으로 노인은 금환 씨의 손을 꼭 쥐고 허리를 조아리기까지 했다.
“자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어젯밤 내 아들놈의 손에 저승으로 갈 뻔했어. 내가 자식 농사를 잘못 지었지. 자식을 저승사자로 키운 내가 잘못한 거지…….”
작은 체구에 깡마른 노인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금환 씨는 영문을 몰랐다. 아들을 차에 치여 죽을 뻔하게 만든 내가 은인이라니?
노인을 모시고 온 이장이라는 분이 전후 사정을 얘기해 줬다.
어젯밤 노인의 아들이 아버지를 수전노라 욕하면서 어차피 돌아가시면 제 것이 될 테니 미리 재산을 달라고 했단다. 아버지는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내가 죽어도 너 같은 불효막심한 놈에게는 땡전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에 격분한 아들은 술을 퍼마시고 아버지를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이미 천하의 후레자식이라고 소문이 난 아들놈이지만 동네 사람들은 설마 아버진데, 하고 들어 넘겼다. 그러나 아들놈은 아버지를 해하려고 한밤중에 국도를 횡단하였고, 그때 마침 금환 씨의 차에 부딪쳤다는 얘기였다.
“그러니께 젊은이는 하늘에서 보내주신 은인이여.”
억병으로 취한 덕인지 다행히 아들은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다고 했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두 노인의 인사를 받는 금환 씨는 못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