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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chstellar Aug 30. 2020

나의 젠더감수성은 태생적인 것

_태생적 젠더감수성


  지난 며칠간 기안84의 웹툰 내 성상납 소재 관련 이슈로 온라인이 뜨거웠다. 댓글창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길래 이렇게 묘사를 하는가, 접근성 높은 플랫폼에서 유명작가가 자신의 영향력과 의식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 페미가 또 페미했다, 웹툰은 웹툰으로 보자…. 기안84는 사과문을 올렸지만 논란은 식지 않았다. 


  현실반영과 팩트폭력은 사건의 핵심을 뾰족하게 제시하고 부조리함을 꼬집을 때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면에서 기안84의 해당 웹툰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근절하자고 말하기도 벅찰 판에 사회를 꼬집는 게 아니라 개그로서 그 소재를 사용한 것이 문제였다. 그 희화를 잠시 잠깐의 흥미와 풍자로만 보는 데에 그칠 수 있을까. 분명 모두가 그 소재가 사회에 만연하지만 옳지 않은 일인 것을 알고 있다. 알고 있음에도 당연하다는듯이 별 것 아니라는듯이 개그 소재로서 소비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그러한 콘텐츠에 노출이 된 만큼 그 감수성을 평이하게 여기고 나아가 습득하게 될 확률이 높다. 그렇게 또 재생산으로 이어진다. 이미 벌써 많은 이들이 그렇게 성인이 되지 않았나. 댓글에는 사실 이런게 사회적으로 만연한데 웹툰에 썼다고 새삼 난리인가 하는 반응도 있었다. 당연하고 만연하다고 여기는 그 생각이 문제라는 것을 모른다.  


  이렇듯 사회가 젠더 이슈에 예민해진 만큼 내 주변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적어도 나는 안 당할 줄 알았다. 첫 회사에 입사했을 때, 아르바이트 때부터 봐오던 팀장이 있었다. 아는 것도 많고 한 번 화내는 일도 없이 푸근해서 정규직으로 입사할 때 큰 요인이 되었던 인물이었다. 입사 몇 달 후, 그 팀장이 어느날 점식 식사 이후 돌아오는 길에 내 뒤에서 했던 말이 아직도 떠오른다.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일이다. 시작은 사사로운 편한 이야기였다. 날씨 이야기, 건물 이야기, 업무 이야기, 자신이 와이프를 만나 연애한 이야기, 결혼한 이야기, 딸 이야기. 그러다가 갑자기 내 뒷모습을 보고서는 나더러 자신의 와이프와 엄청 닮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와이프도 키가 크고 다리가 길다며. 몸매가 완전 똑같은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내가 우리 와이프 어디에 반했는지 알아? 허벅지에 반했어. 허벅지가 꿀벅지야.”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가 지금 바지를 안 입었나 했다. 긴 바지를 입은 다리가 헐벗은 기분이 들었다. 그 시선과 목소리가 내 뒷허벅지에 닿아 나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일전에 대화를 하다 자신을 ‘오빠가-’라고 지칭해 황급히 말을 물렸던 일까지 떠올랐다. 그때의 이유도 내가 자신의 와이프와 닮아서 헛나왔다는 것이었다. 그 팀장을 알고 지낸 이래로 처음으로 표정을 관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젓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믿기지 않았거든. 평소 가깝게 지내던 팀장이 나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옆에 있던 다른 여자 사원이 놀라 말했다. “팀장님, 그거 성희롱이에요!” 그러자 팀장은 도리어 발끈하며 말했다. “이게 무슨 성희롱이야? 내 와이프 얘기라니까?” 정색하며 부정하는 건 쉬웠다. 나와 자신의 와이프의 쉐입이 똑같다고 말해놓고.



  근래 들어 내 친구 중 두 명은 매달 거의 40만원씩 고정지출이 잡혀있다. 산부인과에 가 초음파 검사를 받고 향후 몇 년간 먹어야 하는 약 때문이다.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HPV 고위험군이 떴다. 내 친구는 3년 넘게 만난 남자친구한테서 옮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워 여러 차례 의사에게 물었지만 남성에게서 옮아온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 사실을 말했을 때 남자친구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H…. 그게 뭐야?” 


  그것의 발병 경로와 원인을 설명하자 남자친구는 부정하기 바빴다고 했다. 그러고는 3년 내내 헌신한 내 친구에게 네가 다른 남자를 몰래 만난 것 아니냐는 뻔뻔한 소리까지 했다. 그에 관한 책임은 내 친구 혼자 졌다. 혼자 병원을 가고 약을 먹고 술을 끊고 검사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고 걱정하면서 돈은 돈대로. 자궁경부암 주사를 본인도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실제로 접종한 남성이 얼마나 될까. 자신들이 걸릴 수 있는 병이었다면 이리도 무관심할 수 있을까. 내 전 남자친구는 자신이 정관을 묶었다는 이유로 피임도구 없이 나와 성관계를 가지려고 했다. 애만 안 생기면 괜찮다는 것일까. 나는 다음날인 토요일에 주말 진료를 보는 산부인과를 찾아가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아 먹었다. 내 생애 최초였다. 그 사실을 말하자 전 남자친구는 묶었는데 왜 먹었냐며 히히덕 웃었다. 그 가벼움에서 순간 내가 느낀 경멸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주말 진료를 하는 산부인과를 검색하고 모자를 눌러쓰고 접수를 하고 의사를 만나고 수납을 하고 약사에게 처방전을 내밀고 받아온 이만오천원 짜리 알약 하나는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배우 황정민은 자신의 와이프가 출산할 당시에 탄생은 축복이라며 고깔모자를 쓰고 춤판을 벌였다고 했다. 나는 그것을 웃으며 볼 수가 없었다. 진통에 힘들어하는 아내 앞에서 그게 가능할까. 임신과 출산이 마냥 대단하다고, 위대하다고 말하기에는 그 일련의 과정에서 여성이 짊어질 리스크가 몹시 크다.  



  그런가 하면 이제는 말하기도 식상하지만 82년생 김지영. 그것은 엄마 세대나 겪던 것이 아니냐 하는 말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관습, 인식 같은 것들이 그렇게 엄마 세대와 내 세대의 분기점으로 칼 같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분명하게 남아있는 것들은 여전히 여성들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든다. 당연한 것이 아님에도 이전 세대에 당연시 했던 것들로 인해서 이제야 봉기하는 이들을 분란종자로 분류하는 것이다. 모 여자 아이돌이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뭇 남성들에게 매도당하던 것이 떠오른다.


  젠더 관련해서 이야기할 때 내가 본가에서 살았던 이십 년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육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증조할아버지 아래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할아버지, 그리고 그 아래서 장남으로 태어난 아빠, 그리고 그 밑에 장녀로 태어난 나는 여동생을 하나 두고 있었다. 작은 아빠는 아들이 둘이었고 우리 집에는 선산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재산에서 아빠에게 상속된 선산은 내가 아닌 작은집 큰아들에게 상속될 예정이다. 남자라는 이유로. 장녀이지만 단 한 번도 제사를 지낼 때 앞에 나서본 적이 없다.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꼭두새벽에 일어나 호박전에 밀가루를 묻히고 있을 때,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작은집 남동생들은 제문을 위해 한자를 익히고 있었다. 이틀 전부터 장을 보고 음식한 여자들은 남자들과 상을 따로 했다. 어렸을 땐 그게 마치 당연하고 지켜야할 신성한 풍습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큰집인 우리집에 남자형제가 없다는 이유로 내 여동생은 작은집 아들과 바꾸자는 이야기도 들었다. 엄마는, 내 여동생은, 나는. 지금에 와 그때의 이야기를 하면 아빠는 벌쩍 뛰며 부정한다. 다 장난이고 그냥 하는 말이었지. 딸이라고 안 되고 그럴 게 뭐가 있어. 그냥 하는 말인데 뭘 그래. 잊어. 생각하지마. 


  잊어라, 생각하지마라…. 아빠는 본인을 위해 대학을 포기한 큰고모가 모든 것을 놓고 일찍 시집을 가 혹독한 시집살이 끝에 지금은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는 것을 알까. 고졸짜리 배운 것 없는 게 시집 들어왔다고 수십 년을 앓아온 것을 알까. 엄마가 산업디자인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까. 시를 잘 쓰고 붓을 잘 다룬다는 것을 알까. 계집애가 드세다는 표현을 듣고 자란 나를 알까. 매일 인스턴트를 먹고 살 만큼 다른 음식은 못해도 제사 음식은 할 줄 아는 나를 알까. 출석부에서 늘 남자애들 다음으로 불리어지던 이름과 굳이 여성임을 표시해야 하는 단어들과 어딘가 가입이라도 하려고 하면 언제나 탭을 두번 눌러야 닿는 성별인 것이, 그 사소한 불편함을 이제야 당연히 여기지 못하게 된 것을 알까. 거듭되는 젠더 불평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또 다음 세대의 여성들에게도 계속해서 물림되고 있다는 것을 언제쯤 인정하게 될까.   



  혹자는 그저 살면서 한번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당연한 일이 아니다. 4년 전, 82년생 김지영을 본 삼십대 여자 대리님의 말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그 책 읽고 화나고 답답했다는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어. 계속 겪는 거라 그냥 내 삶처럼 너무나 당연하더라."


  그렇게 말하는 어조와 표정없는 얼굴이 아직도 모노톤으로 떠오른다. 그때 대리님이 입고 있었던 건 선명한 연분홍 치마였음에도.



  이제 와 말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페미니스트였던 적이 없다. 소명을 가지고 여성 인권 운동에 참여한 적도 없었고 대의를 위해 짬을 내어 댓글 싸움에 참전한 적도 없다. 연대감이라든가 거창한 포부도 없다. 다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여러 번 말해왔다. 그리고 어떻게 느꼈는지를 말해왔다. 그러면 나는 상대의 단정으로 페미니스트가 되어있었다. 살아오면서 느낀 것들만 말해도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이토록 선천적일 수가 없다. 



  변하는 것들엔 이유가 있다. 더 이상 가치가 없거나 도태되었거나. 세상은 빠르게 밸런스를 추구하고 찾아가고 있다. 직장에서 연봉만큼 중요해진 워라밸과 그에 따른 기성세대와 요즘세대의 갈등, 환경파괴가 파국으로 치닫던 중 코로나로 인한 셧다운 속에서 천천히 돌아오는 자연처럼 지금의 젠더이슈 역시 그 과정 속에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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