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가치를 지닌 브랜드
코엑스 전시회 관람를 위해 삼성역에서 내린 N씨. sm아티움을 지나 개미굴 던전(코엑스)으로 입장한다. 사람 많고 좋네. 그러나 대뜸 길이 갈래갈래 나뉘자 동공이 확장되고 숨이 딱 멎는다. 가까스로 천장 사이니지(안내판)를 보며 걸음을 옮긴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잘 다니는 것 같은데 나만 길 모르는 것 같다. 이명 오는 거 같다. 사이니지 하나 찾았다고 편안해지는 게 아니다. 다음 것을 미리 찾아놓지 않으면 우주미아 체험판이 시작된다. 눈앞이 뿌얘진다. 돌아가는 길도 안내 보고 가야한단 말야. 그때, 코로 익숙하고 그리운 냄새가 훅 들어온다. 영국 냄새. 장갑낀 손으로 가루가 빰빰 뭉쳐지던 베스밤. 더티. 러쉬 냄새. 러쉬는 던전의 중앙광장인 별마당도서관에 있다고 했다. 러쉬 냄새를 따라가기로 한다.
러쉬는 코스메틱 브랜드 중에서도 상당히 짧은 사용기한을 가진 제품을 판매한다. 비싸고 몹시 짧은 사용기간을 가진 제품임에도 '러쉬냄새'라는 말이 고유명사가 되어갈 정도로 브랜드는 탄탄하다.
러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그들의 신념이 담긴 브랜드 스토리와 캠페인, 아티클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매년 지구의 날(4월22일) 진행되는 'GO NAKED' 캠페인이 있다. '쓰레기없데이'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패키징 프리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진행되는 행사이다.
러쉬의 또다른 가치실현 활동이자 제품인 채러티 팟은 제품 패키지에 후원하는 단체의 캠페인 내용이 담겨져 있다. 러쉬가 후원하는 단체는 인권보호, 환경보전, 동물보호를 위해 공헌하는 비영리단체이며, 해당 제품의 판매금 전액을 그곳에 기부한다. 더하여, 기부금의 사용처까지 홈페이지에 기재하여 투명하게 운영한다.
러시는 젤러쉬(제일 러쉬스러운)라는 서포터즈를 두고 있다. 젤리쉬는 러쉬의 캠페인에 그 뜻을 함께 하며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다. 환경, 인권, 동물이라는 주제 하에 팀별로 자신들이 지킬 릴레이 미션을 정하고 미션을 수행하면 러쉬코리아 본사에서 덕찌라는 굿즈를 보내주는 방식이다. 덕찌에서도 브랜드 철학이 나타나는데 예시로, I AM MYSELF 덕찌는 차별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진정한 '나'를 산다는 주제로 인권보호의 가치를 찾아볼 수 있다. 젤러쉬 뿐만 아니라 공정무역 재료가 들어간 제품을 사면 공정무역 재료(장미, 블루베리 등)가 표현된 덕찌를 누구나 받을 수 있다. SOS 수마트라 캠페인을 위해 출시된 샴푸바의 판매 기금은 폐기된 농중 부지를 구매한 후에 해당 부지에 영속 농업을 정착시켜 궁극적으로 훼손된 열대우림을 복원하는 데 쓰였다. 이때에도 팜프리(Palm Free) 덕찌가 샴푸바 구매자에게 주어졌다. (지금은 디지털 덕찌를 준다.)
러쉬가 배포하고 있는 핸드폰 배경화면에도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드러난다. 러쉬낫랩. 이 낫랩 제품은 손수건 형태로 평소엔 악세서리로 사용하다가 일회용 포장이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포장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아이템이다.
마케팅에서 브랜드 신념(철학)을 가진 브랜드를 꼽으라면 단연 러쉬가 대표적일 것이다. 사업 전반에 동물실험반대(FAT. Fighting Animal Testing) 신념이 깊게 묻어있다. 인허가 단계에서 동물실험 조항을 삭제한 중국으로의 진출을 포기한 일만 보아도 그렇다. 뿐만 아니라, 신념이 그저 브랜드 소개에 그치는 게 아니라 다방면으로 실체화 되어 탄탄하게 러쉬를 이루고 있다. 어떠한 브랜드의 철학을 텍스트로 접한 것과 실제로 피부로 느끼는 것은 전후가 완전히 다르다. 한번 러쉬 철학을 이해하고 그 가치 행보에 함께 했던 이들이 지속적으로 러쉬를 찾는 건 당연한 일이다.
러쉬는 채리티 팟 자선 기부는 마케팅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명시한다. 하지만 브랜드 신념에 따른 그 행위 자체는 마케팅이 되어 고객들을 불러모은다.
젤러쉬 중에는 실제로 라이프스타일이 러쉬의 신념화된 이들도 적지 않다. 일상에서 실천하기 힘든 가치들을 러쉬 제품 소비를 통해 대신 이루고 경험하여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언젠가 공익을 위해 소비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러쉬인간이라는 말이 나올 것 같다.
젤러쉬를 위한 행사에서도 러쉬는 비건 케이터링을 준비한다.
개인적으로 러쉬는 다른 그 어떤 단어보다 '지속가능한, 재생가능한' 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 것 같다.
영국 러쉬 본사는 지난해 NO SNS를 선언하고 SNS 계정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마케팅 비용을 구매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잠재고객에게 쓰는 게 아니라 충성(핵심)고객에게 집중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온라인 마케팅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대에 SNS를 포기한다는 것에서 러쉬의 대담함과 강력한 브랜드의 힘을 느낀다. 신규고객을 유치하지 않겠다기 보다는, 그만큼 기존 고객 이탈율이 낮다는 말이 아닐까. 어느 책에서 본 구절이 생각난다. 신념을 가진 한명은 관심만 있는 아흔아홉명 보다 힘이 세다.
제품을 넘어 제품 속에 담긴 브랜드의 가치를 구매하고 소비하는 고객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브랜드 신념을 사랑하고 고객이 브랜드를 스스로 찾게끔 브랜딩한 점을 적용하고 싶다.
브랜드 철학을 위해 행한 캠페인이 고객의 라이프스타일과 사회의 문화가 되고, 핵심고객을 만들어 지속가능한 가치를 창출해내는 점을 가져오고 싶다.
덕찌를 통해 제품 구매를 촉진하고 고객들에게 브랜드 가치를 전파한다. 많은 기업들이 고객들이 구하지 못해 안달난 굿즈들을 내놓고 있지만 스타벅스의 텀플러와 러쉬의 덕찌가 다르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 아닐까. 기꺼이 모으기 위해, 좋은 소비를 하게 만드는 굿즈도 적용해보고 싶다.
말하기도 입아프지만 다시 한 번 러쉬의 강력한 브랜딩의 힘을 깨닫는다. 이 글을 쓰며 조사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 철학에 매료된 듯하다. 오늘 받은 택배의 종이 테이프,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보냉시트를 본 순간 앞으로 그 제품은 그곳에서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