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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권 Apr 28. 2024

아무리 좋은 툴을 써도 회사가 바뀌지 않는 이유

조직을 바꿔줄 대화의 기술

조직이 바뀌지 않는 이유


최근 코칭 중에 한 분으로부터 고민을 들었습니다. 그 내용이라 함은 구성원들이 알림을 놓치지 않을 수 있게끔 슬랙과 연동해서 자동화된 알림을 보내고 싶은데, 어떻게 할 수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엇 때문에 그런 기능이 필요한지를 물어봤습니다.


그분의 고민사항은 이렇습니다. 구성원들이 팀 내 주요 사항이나 일정들을 잘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구글 캘린더나 노션 등으로 내용을 기록하지만 잘 체크가 되지 않아 매번 얼럿을 주거나 확인을 도와줘야 하다 보니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고 싶어 알아보다 보니 자동 알림까지 이어진 것이죠.  


저는 그분께 물어봤습니다.


"정말 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러자 그분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이유들과 함께 그로 인해 본인이 어떤 점에서 업무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등을 제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연이어 물어봤습니다.


"지금 제게 해주신 얘기를 구성원들과 함께 논의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당연하게도 한 번도 이와 같은 주제를 두고 구성원들과 대화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후에 이 분이 찾아낸 새로운 해결책을 듣게 된 구성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예상컨대, 거부 반응을 보이거나 수용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솔루션이 필요한 이유와 맥락에 대해 공감대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대게 사람들은 조직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목격했을 때, (겉으로 보이기에 훌륭해 보이는) 툴, 프로세스, 프레임워크 같은 해결책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의문을 가져보아야 합니다. '어떤 조직은 저러한 복잡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일을 잘하고 있는데, 우리 조직은 그게 왜 안될까?' 하는 것이죠.



사람들은 변화에 저항하지 않습니다. 억지로 변화시키는 데 저항하는 것이지요.

- 피터 센게(Peter Senge) -






뛰어난 개인이 실패하는 이유


우리는 뛰어난 개인의 판단이라면 신뢰할 수 있고, 동시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생각과는 다르게 뛰어난 개인이 실패하는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위 연구는 MIT 울리 교수가 진행했던 연구 결과로, 협력 계획 유무에 따른 전문가 팀의 퍼포먼스 결과 차이를 잘 보여줍니다. 위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협력 계획을 세우지 않았던 전문가 팀은 비전문가 팀보다도 낮은 퍼포먼스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수치가 옆에 있는 Information Integration 수치와도 비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수치는 얼마나 다양한 팀 구성원의 의견을 통합하여 결론을 내렸는지를 보여줍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에서 대니얼 코일은 유치원생들이 MBA(경영대학원생) 팀을 이긴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실험은 경영대학원생부터 변호사, 공학자, 디자이너, 유치원생까지 다양한 집단이 스파게티 면, 투명 테이프, 노끈, 마시멜로의 재료를 사용해 가장 높은 탑을 쌓는 미션이었습니다.


보통은 경영대학원생들이 유치원생들보다 높은 점수를 기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유치원 아이들이 평균 66cm의 탑을 쌓았으며, 이는 경영대학원생들이 쌓은 탑보다 3배나 높았습니다. 그리고 이 차이가 어떻게 서로 협력하고 소통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조직에 뛰어난 개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 소통하지 않으면 없는 것보다 못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겉보기에 경영대학원생들은 서로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지위 관리(status management)에 매진할 뿐이다. 그들은 큰 그림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자리를 찾는다. '책임을 맡은 사람이 누구지?', '저 사람의 아이디어를 비난해도 괜찮을까?', '어떤 규칙을 따라야 하지?' 같은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다. 뿐만 아니라 원만히 소통이 이뤄지는 듯한 겉모습과 달리,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행동은 비효율적이고 망설임과 비생산적인 경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대신 앞다퉈 불확실성을 찾아 헤매고, 자신의 지위를 지키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다 보니 정작 문제의 본질을 놓치기도 한다(마시멜로는 생각보다 무겁고, 스파게티는 모양을 유지하기 어렵다). 결국 첫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시간에 쫓기게 된다.

반면, 유치원 아이들의 행동은 체계가 없는 것 같지만 단일한 독립체로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행동한다. 그들은 지위를 두고 다투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깨를 맞대고 힘을 내 일한다. 재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이며 문제가 생기면 도우려고 나선다. 그렇게 아이들은 실험 내내 위험을 감수하고 결과를 관찰하며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유치원 아이들은 똑똑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이기는 이유는 더 영리하게 협동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방법을 사용한다. 한데 모인 평범한 사람들이 아이들과 같은 방법을 쓴다면, 그들의 능력을 단순 합한 것보다 더욱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


- 대니얼 코일,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복잡한 문제와 싸우고 있다


Cynefin framework


위 이미지는 일명 크네빈 프레임워크라고 해서 불확실성을 4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그에 적합한 해결 방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복잡한(Complex) 문제'입니다. 바로 우측에 있는 '복합적인(Complicated) 문제'와는 구분해야 합니다. 복합적인 문제는 전문가의 영역으로, '분석'과 '예측'을 통해 해결이 가능합니다.


반면 복잡한 문제는 전문가의 분석이나 예측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이러한 문제의 경우 조사와 탐지를 통해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해가면서 대응해 나가야 합니다. 이를 두고 다른 말로 창발(Emergence)의 영역이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하자면 이 복잡한 문제는 뛰어난 개인이 혼자 생각하고 판단해서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직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대부분 복잡한 문제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혼자 해결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협력이라 함은 분업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협력과 분업의 가장 큰 차이는 대화입니다. 그것도 아주 고대역폭(High Bandwidth) 대화가 수반되어야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은 종종 대화하기를 멈춥니다. 우리가 신경 쓰지 않으면 어느 순간 우리가 해결하려 했던 문제, 또는 이 일을 하는 목적 같은 것들이 희미해지고,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납품하는데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는 대단히 단순해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조직이 갑자기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굴러가는 공장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문서가 아닌 대화로 


대부분 사람들은 '효율적인' 그리고 '체계적인'이란 말을 좋아합니다(아마 컨베이어 벨트로 이루어진 공장 또한 매우 효율적이고 체계적일 겁니다). 그렇다 보니 조직 간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문서로 주고받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구성원 간의 커뮤니케이션의 접점을 최소화시키려고 합니다. 물론 불필요한 외적 인지 부하는 줄여야 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필요한 대화가 줄어든다면 조직에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상상을 넘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조직은 폭넓은 관점에서 구성원을 관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에 대한 개선은 반드시 필요하다. 분기별 OKR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형식적인 연간 목표가 효용을 잃어버렸듯이 시대에 뒤떨어진 성과 관리 시스템 역시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새로운 비즈니스 세상을 뒷받침할 새로운 인사관리 모형을 내놓아야 한다. 연간 성과 검토를 대체할 한 가지 혁신적인 대안으로 ‘지속적 성과 관리’를 꼽을 수 있다. 이 방식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CFR이라는 도구가 필요하다.

- 존 도어, 래리 페이지, <OKR>


한때 스타트업에서 유행처럼 번져나갔던 'OKR'이란 툴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은 Objective와 Key Result만 기억하실 테지만, 사실 OKR을 실행할 때 그 이상으로 강조하는 것이 바로 CFR입니다. CFR은 각각 대화(Conversation), 피드백(Feedback), 인정(Recognition)을 뜻합니다. 하지만 CFR을 정말 충실히 하면서 OKR을 실행하는 기업은 손에 꼽습니다. OKR 차트에 O와 KR의 달성률을 기록하는데 매진할 뿐이죠.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 린 소프트웨어 그리고 데브옵스는 소프트웨어 공장을 이와 유사하게 바꿔놓았다. 각각의 방법이 대상으로 하는 공장 요소는 다르지만 이들 모두 비인간화된 대량 제조 접근 방식을 부수는 것에서 시작했다. 이들은 노동력의 분산을 깨부수고 엄격한 프로세스로 둘러싸인 장소에 협업을 소개함으로써 문화를 바꿨다.

(...)

문제는 애자일 개발 그리고 이후 린 소프트웨어와 데브옵스를 탐험하는 과정에서 후발 도입자들은 인간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리더들은 과거에 늘 해왔던 것과 똑같이 행동(공장 마인드셋을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변화하라고 명령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그 결과 리더들은 관찰하기 훨씬 쉬운 피상적인 프로세스 변화(스탠드업, 진행 중 업무(WIP) 제한, 도구 도입 등)에만 집중했다.

- 더글라스 스퀴렐, 제프리 프레드릭, <애자일 컨버세이션>


IT조직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단어이자, 지금도 여러 사람들을 괴롭히는 '애자일 방법론'이란 것이 있습니다. 사실 애자일 방법론은 이 복잡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고안된 대표적인 방법론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애자일 방법론에는 '개발팀에 그리고 팀 내부에서 가장 효과적, 효율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은 대면 대화이다'이란 원칙이 존재합니다. 애자일 방법론을 실행하려는 조직에서 '대화'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많으신가요?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이 하려는 애자일은 유의미할 확률이 높습니다.


스크럼에서는 요구 사항이 적절하게 논의되고 전달되게 하는 주요 도구로써 대화를 사용한다. 언어적 소통은 높은 대역폭이라는 장점과 빠른 피드백을 제공하며, 낮은 비용으로 더 쉽게 공통된 이해를 얻게 해 준다. 또한 대화는 양방향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이는 문제와 기회에 대한 아이디어를 촉진시킨다. 이는 아마 문서를 읽는 것으로는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 케네스 S. 루빈 <에센셜 스크럼>


아마 애자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스크럼'이라는 개발 방법론일 것입니다. 스크럼에서는 기획서 대신 제품 책임자가 요구 사항을 적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때 사용자 스토리(user story)로 형식으로 작성하게 되는데요. 과거에는 이 사용자 스토리를 3x5인치 인덱스카드나 포스트잇에 적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종이 위에 한 문장으로 적게끔 한 이유가 실은 팀원 간 더 많은 대화를 유발하기 위해 의도된 장치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잘 없을 겁니다.


이외에도 애자일 원칙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면대면 대화를 굉장히 강조합니다. 최근 스타트업들은 글로벌 기업들의 영향이나 코로나의 여파 등으로 리모트 근무에 꽤나 익숙해졌습니다. 항간에서는 리모트 근무가 훨씬 세련되고, 선진적인 방식이고, 오프라인 근무가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잘못된 효율화의 집착에서 나온 착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llen Curve

위 이미지는 '앨런 커브(Allen Curve)'라고 합니다. MIT 교수 토마스 앨런(Thomas Allen)은 연구 끝에 성공적인 조직은 모두 '고수준 소통가 집단'이었다는 점을 밝혀냈는데요.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구성원과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의사소통 빈도가 줄어든다'라고 합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냐면 책상 사이의 간격을 50미터 이상 떨어뜨리자 팀원과의 소통이 거의 단절되었고, 6미터 이내로 줄이자 소통 빈도가 폭등했습니다. 또한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4배나 자주 이메일을 주고받았으며, 예상보다 32퍼센트 단축된 일정으로 프로젝트를 완수했습니다. 앨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같은 팀 소속이지만 동료가 다른 층에서 일하고 있다면, 그건 서로 다른 나라에 있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외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좋은 툴이나 프로세스의 이면에는 대화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일을 할 때는 대화에 대해서 얼마나 강조하고 있나요? 또는 조직이 대화를 어떻게 해나가야 되는지에 대해서 같이 얘기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반대로 '효율'과 '체계'를 주장하며 대화할 기회를 없애버리진 않았나요?


쉽게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 사람들과 문서로 내용을 주고받으시나요? 아니면 테이블에 앉아서 옆사람과 떠들면서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시나요?






잘못된 시스템이 오히려 독이 된다 


이 글을 통해 계속해서 제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문서화, 툴, 프로세스, 방법론이 아니라 대화와 소통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이러한 프로세스나 시스템 자체가 잘못 설계될 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통찰, 평범에서 비범으로>의 저자 게리 클라인은 멍청한 설계로 탄생한 시스템이 사람들의 통찰을 방해하는지를 얘기합니다. 쉽게 예를 들면 우리가 좋아하는 툴 중에 체크리스트라는 것이 있습니다. 체크리스트를 통해 우리는 실수를 줄이고, 완벽함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체크리스트라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을 멈추게 만듭니다. 게리 클라인의 말을 빌리면 '아무 생각 없음'을 의도적으로 유발합니다. 만약 해야 하는 일이 새로운 발견과 창조가 필요한 일이라면 체크리스트와 같은 정형화된 절차는 나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기존 사업의 프로세스를 그대로 적용시키려는 행위)  


또한 이미 구조화된 데이터베이스는 새로운 통찰이 필요한 상황에서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데이터베이스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떠한 질서와 구조로 고정이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효율을 위해 중요한 정보와 중요하지 않은 정보 혹은 관련성이 높은 정보와 관련성이 낮은 정보 간의 위계를 나눠놓은 상태죠. 이미 이렇게 정보의 분류가 끝나서 고정이 된 상태에서는 새로운 생각을 하기 쉽지 않습니다.   


affinity diagram


위 이미지는 어피니티 다이어그램(affinity diagram)이라는 툴로, 파편화된 데이터의 규칙과 연관성에 따라 구조화하면서 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데 사용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이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을 통해 새로운 학습을 하려고 했을 때, 이미 라벨이 전부 붙어 있고, 그 라벨에 따른 분류 기준이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정해진 라벨의 규칙에 맞게끔 데이터를 옮겨 붙이는 것 외에 없습니다. 중요한 건 통찰은 이 규칙을 깨고 새로운 패턴과 구조를 찾아나가는 과정 속에서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조직에 도입하려는 시스템은 어떤 모습인가요? 비교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자율성과 유연성이 결여된 시스템은 예측가능성과 완벽성을 높이며, 실수와 불확실성을 줄여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해결해야 할 영역인 '복잡한(Complex) 문제'를 접했을 때, 이것들은 소용이 없으며,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왜냐면 복잡한 문제는 애초에 예측할 수 없고, 완벽할 수 없으며, 실수와 불확실성이 상수이기 때문입니다.  






해결책에 집중하지 않을 것


우리는 계속해서 조직 내 대화와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명의 뛰어난 개인, 훌륭한 문서, 완벽한 시스템이 단순한 문제를 해결할 때는 빛을 발할 수 있지만, 복잡한 영역의 차원으로 넘어가게 되면 효과가 없거나 반대로 방해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제 대화가 중요한 건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화하는 것이 좋은 대화 방법일까요?


Sofeware Dilema


위 이미지는 소프트웨어 딜레마라고 불리는 삼각형입니다. 속도를 높이면 퀄리티가 낮아지고, 기능 수가 적어집니다. 퀄리티를 높이면 속도가 떨어지고, 기능 수가 줄어들죠. 기능 수가 늘면 속도와 퀄리티가 모자라게 됩니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다수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에는 '기획자'라는 포지션이 존재했습니다. 기획자는 기획서를 작성하게 되고, 거기에는 모든 기능과 퀄리티를 포함한 제품 설계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이 기획서를 전달받은 디자이너와 개발자에게 주어진 변수는 '속도' 밖에 남지 않습니다. 이 경우, 퀄리티와 기능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나 개발자가 좀 더 좋은 방법에 대해 제안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추론의 사다리(Ladder of Inference)


우리가 정보나 경험을 습득하는 것으로부터 행동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있습니다. 행동과학자 크리스 아지리스는 이를 '추론의 사다리'로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정보에서 의미를 끌어냅니다. 거기에 우리는 의미와 가정을 부여하고 그렇게 내려진 결론은 믿음(신념)이 되어 행동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마지막 행동만 공유할 뿐, 그 행동에 이르기까지의 사고를 상대방에게 전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롯되는 문제점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믿고 있는 해결책이 유일한 정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뛰어난 개인이 하는 실패를 답습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이것이 일방적인 선포가 된다는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원칙에는 '최소 놀라움의 법칙(POLA: Principle Of Least Astonishment)'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곧 커뮤니케이션에도 적용됩니다. 즉, 서로를 놀라게 할 가능성이 가장 적은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행동 아래 깔려 있는 생각들을 공유하지 않을 경우 이 원칙을 어기게 됩니다. 상대방에 입장에서는 맥락을 알 수 없기에 공감할 수 없고, 마치 교통사고를 당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더글라스 스퀴렐은 <애자일 컨버세이션>에서 '입장이 아닌 관심'을 이야기할 것을 제안합니다.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한빛미디어 박태웅 의장은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기 위해서 '텍스트가 아닌 컨텍스트'를 전달해야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마커스 버킹엄은 <일에 관한 9가지 거짓말>에서 리더는 '목표가 아니라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화 속에서 입장과 관심을 구분함으로써 여러분과 그룹의 나머지 사람들은 끝나지 않고 결실이 없는 논쟁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 완고한 반대 입장이 나타나는 것을 보거나 여러분의 입장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느껴지면 그런 입장을 야기한 사고의 이유와 관심을 식별하고 공유하도록 하라 (...) 입장은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동료들이 지지하는 특정한 팀이나 조직의 목표다. 그리고 관심은 지지의 기반이 되는 더 넓은 원칙들을 기술한 것이다.

- 더글라스 스퀴렐, 제프리 프레드릭, <애자일 컨버세이션>
좋은 목표의 유일한 기준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목표가 쓸모 있으려면 당신의 내면에서 우러나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표현해야 한다... 목표가 유용하고 당신이 세상에 더 많이 기여하도록 돕는 유일한 기준은 당신의 '자발적인 목표 설정'이다. 위에서 당신에게 부여한 목표는 목표가 아니다.

그렇다고 조직에 위에서 아래로 전달할 것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당사자가 가장 의미 있게 여기는 것을 표현해야 적절한 목표이므로 회사는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전체 구성원이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이해하도록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최고의 기업은 위에서 아래로 목표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의미'를 전달한다.

- 마커스 버킹엄, <일에 관한 9가지 거짓말>


여기서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상대방에게 공유해야 할 것은 정해진 목표, 자신의 입장, 내 머릿속으로 고안한 훌륭한 해결책이 아니라 그 아래에 깔린 '의미, 이유, 목적, 맥락, 관심'입니다. 여러분이 대화할 때 이미 답을 내린 채로 전달하게 되면 상대방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해결책이 아닌 그러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이유나 맥락을 설명한다면 상대방은 당신의 말에 공감하기 쉽고, 훨씬 받아들이기 수월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당신이 생각해 낸 해결책보다 더 좋은 해결책을 같이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잡하고 불확실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해진 해결책을 빈틈없이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해결책을 함께 찾아나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나와 비슷한 시각과 견해를 가진 사람만 있어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나와는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봐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사고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대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걸 이해하고 인정한 순간, 여러분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적이 아니라 팀으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그러니 더 이상 툴이나 프레임워크, 방법론과 같은 해결책에 집중하지 마세요. 우리가 상대방에게 전달해야 될 것은 따로 있습니다.


동료의식을 갖는다고 해서 반드시 상대에게 동의하거나 동일한 관점을 공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를 동료로 간주하는 데서 생기는 힘은 관점의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모두의 의견이 같은 상황에서 동료의식을 느끼는 것은 대체로 수월하지만, 상당한 의견 충돌이 있을 때는 한층 어려워진다. 그러나 힘들수록 대가 역시 큰 법이다. 나아가 내 의견에 반대하는 적을 ‘다른 의견을 가진 동료’로 간주하는 경우 그로부터 얻는 이점은 클 수밖에 없다.

- 피터 센게, <학습하는 조직>






조직을 바꿔줄 대화의 방법


 '대화'의 중요성과 그 방법을 설명하고자 지금까지 길게 설명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 글 하나로 여러분과 조직이 대화하는 방법을 바꿀 수 있다면 아마 이 글이 길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모든 걸 이해하기에 벅차다면 간단히 사용할 수 있는 휴리스틱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1.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해결책이 아니라 그 해결책이 가진 목적, 이유, 맥락, 의미를 공유해라.

2. 말한 직후 혹은 이후에 내가 말한 내용이 정답이 아니고, 틀릴 수 있음을 의심해라.

3. 상대방의 말 또한 이와 같을 수 있음을 인지하고, 상대방이 보내는 신호를 해석하려고 해라.



2.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의심해라


신경과학자 칼 마시(Carl Marci)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이 말하는 순간에 상대방에게 공감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려 하는 것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하고 있는 순간 스스로의 생각에 매몰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여러분이 1번의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해도,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주장과 입장을 강하게 전달하려고 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선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며, 이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다른 사람이 참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이 의견을 얘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스킬이 바로 '질의와 주장의 균형 찾기'입니다.


(...) 대화 시 우리가 사용하는 두 가지 기본 모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옹호' 모드로, 우리가 아주 익숙하게 사용한다. 이 모드에서는 "내 의견이 맞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내 의견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이 나에게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이것에 대해 잘 모르거나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입장을 말하는 데만 온통 사로잡혀 상대의 입장이 무엇인지도 잘 듣지도 않고, 듣는다고 해도 결함을 찾는 데 집중한다. 또 하나는 '탐색'모드로, 상대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이 모드는 자주 사용하지 않아 서투르지만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

- 이태복, 최수연, <임팩트 질문법>


우리는 대화를 할 때 두 가지 모드를 사용합니다. 하나는 주장(옹호) 모드이고, 하나는 질의(탐구) 모드입니다. 이때 질의(탐구) 모드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관점을 전달하고, 우려 사항을 공유하고, 차이점을 표면화하도록 격려하여 주제를 탐색하는 것'을 말합니다. 당연하지만 우리는 주장(옹호) 모드가 익숙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질의(탐구) 모드의 비중을 높여서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를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것이 내 관점이고, 이러한 관점에 도달하게 된 경위는 이렇습니다. 당신이 듣기에 어떠신가요?”와 같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내 주장이나 의견 뒤에 상대방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끔 질문을 덧붙이는 것입니다. 예시 문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시]

"줄어든 매출을 맞추려면 채용 예산을 삭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장) / 당신 생각은 어떻습니까? 예를 들어 예산을 삭감할 다른 영역이 있든지, 아니면 예산 삭감이 잘못된 대응 방법일까요? (질)"


"이 제품을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는데, 한 가지는 홈 스크린에 두는 방법이고 다른 한 가지는 체크아웃 시의 부가 기능으로 두는 방법입니다. (주장) / 다른 아이디어가 있을까요? (질의)"


"몇몇 고객이 구현이 일정보다 늦어졌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일부 기능이 지연돼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주장) / 당신은 딜리버리 팀과 밀접하게 일하고 있으니까요.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어떤 해결책을 제안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질의)"


그리고 이 질의와 주장의 균형 찾기를 사용할 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답이 틀릴 수도 있으며 유일한 답이 아니라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를 바꿔 말하면 혼자의 한계를 인정하고, 솔직하게 나의 감정과 생각을 공개하고, 상대방의 개입을 허용하고 이에 따른 상처나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두고 우리는 보통 '취약한 상태'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히 공개하는 것에 대해 꺼립니다. 다른 사람이 와서 오류를 찾아내거나 그로 인해 내가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강한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방어적 사고'라고 표현합니다. 특히 리더들에게 이 방어적 사고는 훨씬 더 강하게 작동합니다. 리더들은 구성원들 앞에서 리더는 늘 유능하고 당당한 모습이어야 된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거나, 실수했던 것을 드러내거나, 정리되지 않은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에 두려워합니다(사실 리더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그렇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먼저 약점을 드러내라]

이해관계가 복잡할수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불완전한 부분은 숨기고 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절대 구성원들의 화합을 불러올 수 없다. 당신의 본모습을 드러내자. 때로는 실수를 저지르는 장면을 보여주고, 단순한 말로 상대방이 들어올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제시한 어떤 의견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놓친 걸까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죠?"

(...) "안전을 창출하고 싶다면, 리더들이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개입을 유도해야 합니다." 에드먼슨은 말했다. "사람들이 먼저 손을 들고 '조심스럽지만,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라고 말하기는 생각보다 어렵거든요. 게다가 의견을 묻거나 도움을 구하는 리더들의 진심 어린 질문에 입을 꾹 다물고 있기도 어렵죠."

- 대니얼 코일,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
어느 쪽이든 해답을 알아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는 경영자는 자신의 결정 이면에 있는 생각을 들키지 않음으로써 유능한 의사결정자라는 인상을 유지하는 방어 루틴에 능숙해지게 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방어적인 태도를 조직 문화의 불가피한 일부로 받아들인다. 아지리스의 설명을 들어보자. “조직에서 정치 게임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마다 그들은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자 조직의 속성이라고 대답한다 (...) 우리는 방어 루틴의 보균자들이고 조직은 숙주다. 조직이 감염되고 나면 조직 역시 보균자가 된다.”

- 피터 센게, <학습하는 조직>


문제는 이 때문에 상대방이 개입할 여지를 원천봉쇄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강하고 완고하게 자신의 답을 이야기하기 때문이죠. 결국 이러한 태도와 행동은 갇혀 있는 내 생각과 주장을 더 공고하게 만듭니다. 물리학자이자 심리철학자이기도 한 데이비드 봄(David Bohm)은 대화의 목적이 우리 사고 안의 비일관성(incoherence)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 자신을 안전하지 않은 상태, 취약한 상태로 내몰아야 하죠.


하지만 우리가 평소 조직에서 일을 할 때 위에서 언급한 '질의와 주장의 균형 찾기', '취약해지기'와 같은 개념을 고려하면서 대화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간단히 접근할 수 있는 휴리스틱으로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의심하라'를 제안합니다. 우리가 해결하려는 문제는 매우 복잡하고 불확실하며,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말한 것이 유일한 답이 아니며,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게 되면 위의 것들을 자연스럽게 실행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선천적으로 일방적인 통제와 격렬한 지지를 하는 경향을 띤다. 즉 우리 관점이 어떤지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만 하면 그들은 우리의 논리와 멋진 미사여구로 우리에게 동의할 것(왜냐면 우리가 옳으니까 말이다)으로 생각한다. (...) 우리는 진실을 가진 유일한 존재가 아니다. 순수한 질문을 함으로써 다른 이들이 상황을 바라보는 방법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함께 새로운 해결책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 더글라스 스퀴렐, 제프리 프레드릭, <애자일 컨버세이션>



3. 상대방이 보내는 신호를 해석하려고 해라.


1, 2번까지 잘 왔다면 이제는 '입장 바꾸기'를 할 차례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고도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보다 상대방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내가 잘하려고 해도 상대방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는 식의 이야기들이죠.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1, 2번을 떠올리고 수행하기 어려웠듯이 상대방 또한 1, 2번을 수행하고 있지 못할 확률이 큽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상대방이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뇌는 짐작과 사실을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행동을 보고 미루어 짐작합니다. 당신이 강의나 발표를 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손목을 쳐다본다면, 자연스럽게 '아! 내 강연이 지금 지루해서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구나'라고 짐작해 버립니다. 비슷한 개념으로 로젠버그 박사는 <비폭력대화>에서 사람들에게 관찰과 평가를 구분하라고 말합니다. 단적인 예로 "그는 시간 개념이 없다"는 평가이고 "그는 지난 세 번의 약속에서 모두 30분이 지난 후에 왔다."는 관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전자처럼 사람을 평가하곤 합니다.



사실 그 이유는 인간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행동경제학자 다니엘 카네먼(Daniel Kahneman)은 인간에게 두 가지 사고 모드가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시스템 1 사고와 시스템 2 사고입니다. 시스템 1 사고는 자동적으로 빠르게 작동합니다.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고, 자신이 자발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인식조차 없습니다. 쉬운 예로 여러분이 양치나 샤워를 하면서 다른 생각을 할 때, 양치하는 법이나 샤워하는 법에 생각하지 않아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시스템 1 사고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스템 1은 인간을 훌륭한 스토리텔러로 만들어줍니다. 여러분의 광고나 마케팅이 작동하는 이유도 시스템 1 사고의 스토리텔링과 감정적 호소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여러 인지적 오류와 편견을 가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아지리스는 워크숍 참석자에게 고객, 동료, 가족 등과 겪었던 갈등을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갈등 당시 자신이 했던 말은 물론, 생각은 했지만 하지 않은 말까지 기억해내야 했다. 이러한 ‘사례’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각자의 생각을 통해 갈등에 원인을 제공하는 모습이 분명하게 그려졌다. 이를테면 참가자 모두가 갈등 당시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할지를 좌우했던 타인에 대해 일방적으로 일반화시켜 버리며 다른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하나의 예로, 어떤 사람이 ‘조는 나를 무능하게 봐’라고 생각하면서 속상해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는 조에게 직접적인 의견이나 이유를 물어보지 않은 채, 나쁜 인상을 바꿔보고자 죽어라 노력만 한다. 어떤 부하 직원이 ‘우리 부장님은 성미가 급해서 빠르고 간편한 해결책을 좋아하며 신뢰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럴 경우 부하 직원은 간편한 해결책이 어려운 사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부장의 마음에 드는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한다.

- 피터 센게, <학습하는 조직>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방과 대화할 때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자연스럽게 암묵적인 가정을 내리기 쉽습니다. 더군다나 상대방이 맥락, 의미를 공유하지 않고, 해결책만 전달한다면 우리는 그 너머에 의도를 우리 멋대로 짐작할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 짐작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상대방이 가진 의미, 맥락, 목적, 이유가 무엇인지 '순수한 질문'을 통해 탐색하는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순수한 질문(Genuine Question)'은 조직 심리학 박사 Roger Schwarz의 <8 Behaviors for Leading a Smarter Team>에서 등장합니다. 순수한 질문의 특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말로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 한다.

대답이 여러분을 놀라게 할 수 있다고 예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질문의 대답 결과 여러분의 관점이나 행동을 바꿀 의지가 있다.


그런데 이 순수한 질문이라는 개념이 다소 불명확하게 다가오실 겁니다. 어떤 질문이 순수한 질문이고, 어떤 질문이 순수하지 않은 질문일까요?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지식이나 이론을 알지 않고도 수행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 상대방도 나와 같음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즉, 해결책 너머에 맥락, 의미 등을 공유하지 못할 확률이 높고, 방어적 사고로 인해 자신의 해결책에 확신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말을 감정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일종의 '신호'로 인식해야 합니다. 만약 상대방이 외국인이고 내가 모르는 언어로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여러분은 상대방이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열심히 알아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여러분의 의견과는 다르거나 반대되는 의견을 얘기했을 때, 우리는 '왜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가 아니라 '나와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해석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순수한 질문을 통해 그 이면에 숨겨진 사고 과정을 알 수 있게 되고, 우리는 생산적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 “참여적 개방성에서의 암묵적 가정은 우리가 각자의 관점을 공유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가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 진정한 공동 학습이 시작된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성찰적 개방성은 내면을 반성하고 살피게끔 하고, 대화를 통해 자신의 사고에 포함된 편견과 한계는 물론, 자신의 사고와 행동이 문제를 야기하는 과정을 더욱 명확하게 인식하게끔 해준다.

- 피터 센게, <학습하는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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