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알기 전에 묻고 싶은 것
2020년 4월 2일
해방촌 작업실에서 만나다.
PaAp의 웹 개발자인 ㅇㅇㅅ이다. ㅇㅇㅅ의 해방촌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 작업실에는 컴퓨터가 아닌 커다란 이젤과 어질러진 유화물감이 잔뜩이다. 왜냐면 그는 '화가'이기 때문이다. 웹개발자면서 화가인지, 화가이면서 웹개발자인지. 웹개발을 할 줄 아는 화가인지는 그의 영역, 그만의 정의일 것이고. 나는 천천히 이야길 듣기로 했다.
Part 1. 초성을 통해 떠오른 것들: ㅇㅅ
‘인사’
무언가에 접근할 때, 그것과 인사한다는 생각이 든다.
생활을 위해 하는 일은 웹디자인인데, 그쪽으로는 오히려 사람을 안 만들려고 한다.
이유는 피곤해서. 일이라고 생각하면 웹과 관련된 일은 빨리빨리, 최상의 결과물을 내는데 집중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하고. 그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일과 인사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한편, 파아프 작업을 통해서는 웹 작업으로도 무언가와 인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서’
어서, 재촉하는 말이지 않나. 빨리빨리랑 비슷한 뜻이지만 좀 더 긍정적인 느낌이 든다.
발효도 눈에 안 보이고 느린 듯 하지만, 어서어서 발효해라- 느낌이 더 좋다. 빨리빨리- 발효해라 보다는.
‘오쇼(오시오)’
뭐가 올진 절대 모르겠지만 왔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생각해봤다.
지금은 아직 제대로 시작 안 한 느낌, 시동 걸려는 느낌, 미묘한 느낌이 있다.
진짜 시작하면 여러 가지가 올 테지만, 인사하면서 다가오면 좋겠다.
Part 2. 단어를 보고 떠오른 것들: 온도, 농사
'농사'
역시 코로나 때문인지 ‘온도’라 하면 체온이 떠오른다.
나는 화가 나면 체온이 떨어진다. 쭉 떨어진다.
… 감정적, 물리적으로 모두.
머릿속으로는 화가 나면 뭔가 저지를 것 같은데,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오히려 정적으로 변한다.
때는 바야흐로… 4-5년 전,
아는 카페 사장님이 소개팅을 해준다고 했다.
편하게 얘기하면서 밥 먹으면 된다고 해서 신나게 나갔지.
그때 대화의 주제로 성소수자 얘기가 나왔는데, 상대방이 그들에 대해서 ‘또라이’, ‘호모’라고 표현했다.
… 가까스로 한번 참았는데, 그다음은 노동운동이 주제였다.
노동운동을 어찌나 비하하던지.
‘회사 입장에선 당연한 거지, 그런다고 바뀔 것 같아? 돈 더 받을라고 억지 쓰는 거 아니야?’
너무 열이 받아서… 시원하게 싸 댔다.
그리고는 입을 닫았다.
나를 비하하거나 공격하는 것은 참거나 상황을 피하는 편인데,
다른 이들에게는 이상하게 정의감이 발현된다.
요즘은 그림 그릴 때, 굉장히 차가워진다.
전에는 그림 그릴 때 내뽕에 취해 있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예술가야, 물 마시는 것도 예술가야…
그러다 이제는 굉장히 스스로 질책하고, 떨어져서 내 작품을 바라보는 걸로 바뀌었다.
어차피 좋았던 그림도 자기가 보면 나중엔 부끄럽다. 계속 사람이 바뀌니까.
스스로에 취해 그림을 그리다가, 어느 순간 소재가 고갈되었고 서서히 미쳐갔다.
소위 말하면 내공을 쌓는 시간일 수도 있었겠지만, 시간, 소재, 실력 모든 것에서 거리를 두는 일이 필요했다.
이 동네에 살다가 ㄴ모 씨로 인해 쫓겨난 다음 성북동에 2년 정도 살았었는데, 그동안 내 그림을 하나도 못 그렸다.
나를 웹디자이너로만 보지 않을까 압박감을 느꼈고,
비전공자니까 콤플렉스도 있었다. 나 자신을 굉장히 숨겼었다.
파아프를 하면서는 많이 바뀌었다.
셋이서 작업하듯이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작업 기간만 해도 8-9개월이었고, 만족도도 높았으니까.
웹디자이너냐 화가냐는 중요하지 않게 됐다.
‘농사’
농사보다는 축산의 경험에 가깝다.
일본에 이민 갈 생각으로 7-8개월 정도 머문 적이 있었다.
일을 하면서 지내보자는 생각에 활동하던 공동체 마을과 연결된 일본의 농축가로 가게 됐다.
일을 해야 먹고 잘 수가 있었는데, 돼지 똥도 치우고 닭똥도 치우고.. 시간 남으면 배밭 가서 밭매기도 했다.
진짜 힘들다. 솔직히!
유튜브나 그런 데서 보여주는 귀농의 로망, 하나도 안 믿는다.
일 하면서는 빨리 점심됐으면 좋겠다, 빨리 저녁 됐으면 좋겠단 생각뿐이다.
2주에 한 번 쉬었다. 돼지들을 굶길 수는 없으니까.
그러다 진짜 딱 한 순간.. 즐거운 게 있었다.
여름이었는데, 일 마치고 지는 해를 보는 것이 너무 좋았다.
몸과 마음인 만신창이였지만, 처음으로 인간으로서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그 해 질 녘이나 비닐하우스, 축사 같은 것들이 잊히지 않는다.
Part 3. 단어를 이으며 생각난 것들: 언젠가는 + 하염없이 + 생활/ 감정 + 때문에
Q. 언젠가는 하염없이 생활해보고 싶다.
전념의 의미인 것 같다. 내려놓고.. 귀농하는 듯한 말투인데.
전념을 해보고 싶은 마음, 하염없이. 무아지경으로.
하염없이 돈을 번다, 그림을 그린다, 책을 읽는다와 같은 생활에 빠지는 것 말이다.
제일 빠지고 싶은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하염없이.
변화를 줄 수 있는 일에도 빠져보고 싶다. 자연과 환경 같은 것.
Q. 나는 감정 때문에 미음 미음을 하고 있다.
미음미음을 하는 건 나에게 이미 이성(이성과 감성을 나누는 게 우습지만)적인 일은 아니다.
이유는 하나다. ‘재밌을 것 같아!’
부담스러운 모임이 될 수도 있는 거고, 내가 모르는 역할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수도 있고, 스터디니까 준비를 많이 해야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걱정도 있었지만, 어쨌든 ‘재밌겠다!’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여기서 내가 뭘 하든지 간에 재밌겠다.
다른 사람 얘기를 들으면서 못해봤던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좋다.
나로선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는 게 재밌다.
또 여기 모인 사람들은 서로에게 뭔가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경험과 재밌는 이야기를 한다.
조합이 웃기다. 발효 모임 마치고… 치킨먹고.
이어받은 질문 ‘숫자’
역설적으로 수에 강하면서도 수를 안 다루려고 한다.
잘 기억을 못 하는 것 같다. 숫자를..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는 느낌이랄까.
일상적으로 쓰는 숫자는 약간 기억한다기보다는 잠깐 지나가는 것 같다.
기억하면 좋은 것 같지도 않고.
돈 하고 연관 짓게 되어서 그럴까?
남아있는 돈을 생각하는 것이 제일 별로인 것 같다.
숫자가 주는 조급함이 싫다.
숫자를 조금 멀리하려고 하는 편이다.
인터뷰이
저는 임오성이고요. 그림을 그리고 있고, 웹페이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젠 얘기할 수 있어! 파아프에선 할 수 있지.) 앞으로 재밌는 거, 재밌는 놀이터를 만들고 싶어요. 다음 사람에게 넘기고 싶은 질문은 ‘농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