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이 저마다의 운명을 갖고 태어나듯 소설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어떤 소설은 몇 년간 공들여 썼으나 아예 빛을 못 보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우여곡절 속에 태어나 씩씩하게 세상으로 나아가 독자들을 만나기도 한다. 돌아보니 그간 쓴 네 권의 장편소설들은 공교롭게도 엄마와 직간접적으로 다 연관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10년 전 시월의 어느 날, 엄마와 함께 해운대 장산에 올랐다. 2008년 부산에 정착한 후 그간 엄마와 나들이 간 일이 없었다. 생계에 쫓겨 집안 모임에도 참석한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옛날 이야기를 하며 산길을 걸었다. 물들어가는 단풍 사이로 보이는 하늘빛이 시리도록 고왔다. 산길을 올라가며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 시골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 옛날에 먹었던 음식 이야기, 가난한 시절의 옛이야기를 하며 산을 올랐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풀 사이에서 소녀처럼 웃으시던 엄마의 모습. 그날의 추억은 내 기억 속에 사진보다 선명하게 남아 있다. 엄마와 장산을 내려오며 먹었던 잔치국수와 돼지 껍데기 두루치기의 그 감칠맛과 막걸리 맛이 혀에 남은 듯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된 건 엄마의 영향이 컸다. 엄마는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엄마를 돕는답시고 밭에 따라가서도 일은 안 하고 이야기만 줄창 해댔다. 책에서 읽은 옛날 이야기를 뒤죽박죽 섞어 이야기를 지어내면 엄마는 무슨 이야기든 재밌다며 들어주셨다. 일은 안 하고 무슨 이야기나 하냐고 타박하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내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 들어주던 한 사람, 나의 첫 독자였던 엄마. 엄마와 장산에 같이 올랐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라니, 세월이 유수가 아니라 화살보다, 아니 총알보다 빠르게 가는 느낌이다.
그날 다리가 아파 장산 정상까지는 못 올라갔으나 하산하는 길에 새움출판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먹고 사는 일로 바빠 작품활동을 중단하고 있다가 장편 소설을 투고했는데 출간하겠다는 연락이었다. 내게 좋은 일이 생기면 가장 기뻐해 줄 엄마가 옆에 있어서 좋았다. 첫 장편소설 선인세 백만 원을 받고 엄마에게 삼십만 원을 드렸다. 부산에 내려와 처음으로 드린 용돈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 돈마저 서랍 속에 넣어두고 가셨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딸아이 기숙사비 주라면서.
두 번째 장편 소설 『흉터의 꽃』 출간을 앞두고 엄마가 암 진단을 받았다. 뼈 통증이 심해 움직이기 힘든 다발성골수종이었다. 간병을 하기 위해 부산에서 대구를 오르내리며 『흉터의 꽃』 마지막 수정작업을 했다. 노트북과 원고와 자료 뭉치를 들고 오르락내리락했다. 제대로 집중을 못 한 탓에 소설을 출간한 뒤 살펴보니 몇 군데 오류가 보여 가슴이 철렁했다. 민변 주최로 대구에서 북 콘서트가 열리던 날 병상 위에서 내게 힘을 주셨던 엄마 덕분에 북 콘서트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세 번째 장편 소설은 엄마가 우리 집에서 투병하실 때 썼다. 랜섬 바이러스로 완성한 원고를 다 날려 발을 굴렀다. 원고를 다 날리고 쩔쩔 매는 딸이 보기 안쓰러웠는지, 글 쓰는 일에[ 집중하라고 엄마는 동생네 집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동생네 전원주택에서 어느 정도 회복을 하시던 엄마의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건 내 네 번째 장편소설을 쓸 무렵이었다. 네 번째 장편 『배달의 천국』 은 코로나 시기의 자영업자의 고난을 그린 소설이다. 코로나 시기 남편이 운영하는 가게에 나가 식당 일을 하느라 엄마에게 한번 밖에 가보지 못했다. 내가 식당에 나가 일을 하는 동안 엄마의 병세는 더 나빠졌다. .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던 2021년 설날 전날에 엄마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막내딸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가셨다. 엄마의 임종도 못 지켰으면서 장례식장에서조차 완성하지 못한 소설을 생각하고 있는 내가 너무 끔찍했다. 엄마가 나으면 같이 올라가 보려 했던 장산, 그리고 그 식당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생각났다. 엄마가 회복되면 언젠가 같이 여행도 가고 부산 시티투어버스도 타보려 했는데, 모두 헛약속이 되어 버렸다. 다음은 기약할 수 없으며 그 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었는데 왜 그걸 몰랐을까.
엄마가 그리 일찍 가실 줄은 몰랐다. 엄마를 보내고 나서야 나를 돌아보았다. 무슨 문학사에 남을 대작을 쓸 것도, 그럴 실력도 없으면서 소설 때문에 아깝게 흘려보낸 시간들, 나중에 보자며 밀어냈던 소중하고 고마운 인연들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소설 쓴답시고 놀아 달라는 아이들을 숱하게 밀어낸 적도 많았다. 정신 차려보니 이제는 아이들이 엄마를 밀어내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같이 나들이 가자는 남편의 요구에도 늘 글 쓴다는 핑계로 거절하기 일쑤였다. 쓰는 시간보다 읽는 시간이 열 배쯤 많았으니 늘 시간은 모자랐다. 소설 핑계로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제대로 보낸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 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한편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은둔하고 칩거하며 고독과 맞서 싸워야 한다.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만 제대로 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경제학의 용어지만 등가교환의 법칙은 우리 삶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무언가를 얻고자 하면 치러야 할 댓가가 반드시 따른다는 것이다.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그 순간을 놓쳐버리고 소설에 매달렸던 시간들, 과연 그 시간 들이 소중한 사람들을 밀어낼 만큼 가치가 있었던가 하는 희의가 들 때가 많다. 몇 권의 소설은 남았으되 놓친 것이 더 많았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엄마는 가시고 없지만, 엄마의 이야기를 꼭 한번 쓰고 싶다. 엄마가 없는 시간 속에서 쓸 내 소설, 그 소설들을 만나고 싶다. 나를 스쳐 간 순간의 숨결과 빛과 냄새와 소리들, 그 순간들을 붙잡아 둘 방법은 나에겐 소설이다. 소설 때문에 놓쳤던 순간들을 소설로 붙잡으려 한다. 단지 그것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