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가는 길
2017년 봄, 원폭 피해자 문제를 다룬 소설 <흉터의 꽃>을 출간했다. 이 소설을 마무리하기 위해 2016년 8월 초 히로시마에 가기로 했다. 소설 때문에 일본에 간다고 하니 남편은 어이없어했다. 소설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니면서 소설 쓴답시고 일본에 간다니 기가 막혔을 것이다. 해외에 가본 적도 없고, 영어나 일어도 한마디 못하는 내가 히로시마에 혼자 갈 엄두를 내다니, 나조차 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 소설을 구상할 때 내 고향 합천에 관한 가족사 소설을 쓸 작정이었다. 합천에 관한 이런저런 자료를 모으다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나는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을까. 우리 할아버지도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히로시마에서 살다가 해방이 되고 귀국하셨고 아버지도 히로시마에서 태어나지 않았는가. 합천이 고향이면서 합천이 한국의 히로시마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천 출신인 내가 이 사실을 몰랐다면 대한민국 사람들 대부분 원폭 피해자 문제에 대해 모르겠구나 싶었다. 누군가는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쓰기 위해 합천 원폭 피해자 회관부터 찾았다. 피해자들의 구술을 듣고 관련자들을 만나 취재를 하면서 원폭 문제에 조금씩 접근했다. 소설의 도입부는 합천 출신인 주인공 정현재가 합천의 원폭 피해 복지회관으로 가서 원폭 피해자들의 증언을 듣는 것에서 시작했다. 왜 하필이면 합천사람들이 멀고 먼 일본 히로시마로 가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추적하고 원폭피해를 당하게 된 과정, 귀국하고 나서의 힘든 생활상. 원폭 피해의 유전성 문제를 다루었다. 합천에서 소설을 시작했으니 소설의 마무리는 히로시마에서 끝내야 할 것 같았다. 인터넷으로 히로시마에 관한 자료를 조사했으나 뭔가 미진한 느낌이 들었다. 제대로 소설을 끝내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히로시마에 직접 다녀와야만 할 것 같았다.
물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은, 8월의 히로시마는 한증막처럼 습하고 무더웠다. 히로시마의 매미 소리는 우리나라의 매미 소리와 달리 금속성이 섞여 있어 유난히 시끄럽고 귀에 거슬렸다. 마치 원혼들의 원한에 찬 울음소리로 들렸다. 끔찍한 원폭의 상흔을 지운 히로시마는 세계평화를 외치는 평화의 메카, 평화를 상품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는 도시로 변해 있었다. 히로시마 평화공원 제단 앞 비석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편히 잠드소서. 잘못은 되풀이하지 않을 테니.” 문장의 주어가 없는 만큼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 애매모호한 문구다. 누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는 주어가 없는 문구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피폭국이라는 신화로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교묘히 덮으려 하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들이 은근슬쩍 피해자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일본의 의도가 히로시마 평화공원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었다. 히로시마가 말하는 평화는 가해자의 책임을 덮으려는 평화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알맹이가 없는 평화였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은 역사의 상흔을 근본적으로 진단하고 치유하는 장소, 기억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망각을 위한 장소였다.
피해자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반성이 없이는 평화는 오지 않으며, 역사적 비극은 반복된다. 우리가 과거에 저지른 일본의 잘못에 대하여 끊임없이 책임을 물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