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돈돈~ 돈에~ 돈돈~ 악마의~ 금~전! 정태 씨는 소주병을 나발 불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실업자 정태 씨는 아내와 대판 싸우고 집을 나왔다. 돈을 벌어오라고 바가지를 긁어대던 아내는 이혼합의서를 내밀었다. 실업자에다 이혼남이라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편의점에서 소주 다섯 병과 쥐포를 사들고는 무작정 산으로 올라갔다.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자살할 용기가 없었다. 캄캄한 산길을 걷다 다리가 아파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은 오래된 공동묘지였다. 죽기로 작정한 정태 씨는 누군가의 묘 옆에 앉아 술을 마시다 곯아떨어졌다.
아이구! 이게 웬 횡재야? 이거 소주 아냐? 이게 얼마 만에 보는 술이야? 정태 씨는 두런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달빛을 받은 공동묘지는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정태 씨는 비명이 새어나가지 않게 입을 틀어막았다. 정태 씨는 묘 뒤에 몸을 숨기고 남자들을 엿보았다. 이 야심한 밤에 공동묘지에 둘러앉은 남자들이라니! 혹시 귀신이나 유령이 아닐까? 남자들은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정태 씨의 가방에서 소주와 쥐포를 꺼내 병나발을 불고 있었다. 종이컵 따위 있을 리 만무했다.
이게 대체 얼마 만에 맛보는 술이야? 캬! 죽이는데. 죽고 나서 이렇게 술 다운 술은 진짜 처음이야. 요새는 명절에도 성묘하러 오는 인간도 드물다니까. 추석이나 설이 되어도 술맛 보기 힘들지. 요새는 조상을 발바닥의 때만도 안 여긴다니까. 정태 씨는 심장이 튀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저 네 남자는 죽은 사람들이란 말인가. 이게 정말 꿈은 아닐까? 정태 씨는 자신의 팔을 세게 꼬집어 보았다. 눈물이 찔끔 흐를 정도로 아팠다.
자넨 어떻게 죽었나? 과로사였어요. 새벽까지 야근하다 갑자기 쓰러졌어요. 심장 마비였죠. 일요일에 아이와 한번 놀러도 못 갔어요. 아이에게 못 해준 일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죠. 그때 일곱 살이던 아이가 지금 서른이 넘었어요. 아비가 되어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네요. 남자는 숫제 통곡을 했다.
난 70 평생 마누라 속만 썩이다 간암으로 마누라 고생시키다 죽었지. 마누라가 한 번이라도 제주도 여행 한번 시켜달라고 그리 애원을 했는데 제주도 여행 그게 뭐라고 그 꼴난 소원하나 못 들어 주었지. 평생 술 퍼마시고 노름하다 빚만 잔뜩 남기고 죽었어.
전 자살을 했어요. 저 같은 건, 살 가치가 없다 싶었어요. 공무원 시험준비 하느라 7년째 세월을 그냥 흘려보냈는데 우울증이 오더라구요. 화장실에서 목매달아 자살했는데, 제가 죽고 나서 어머니까지 자살을 기도하셨죠.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겠더라구요. 세상에 하나도 쓸모없는 인간인 줄로만 알고 자살했는데, 그래도 어머니에겐 제가 세상에서 제일 귀한 사람이었는데 왜 그걸 몰랐을까요.
전 부동산 투기에 미쳐 있었어요. 집을 70채나 갖고 있었지요. 그렇게 돈이 많아도 주변 사람들에게 돈 한 푼 쓸 줄 몰랐어요. 강남에 번듯한 빌딩 하나 가지는 게 제 평생소원이었죠. 그날도 계약하러 가던 길이었는데 중앙선을 넘어온 음주 운전차에 받혀 그냥 즉사했어요. 내가 못 쓰고 두고 온 돈이 50억인데 죽고 보니 그 50억이 한낱 개똥보다 못하네요. 세입자들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한 돈으로 50억을 모았는데 죽어서 마시는 이 소주 한 병보다 못하네요.
공동묘지에 모인 네 명의 남자 귀신은 하나같이 후회를 늘어놓았다. 그들은 단 하루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가족들에게 돌아가서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돈보다 더 귀한 건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낸 시간이었다고 했다. 귀신들은 소주를 마시며 훌쩍이거나 통곡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정태 씨는 너무 놀라서 전화를 끄려다가 통화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야! 주정태! 이 미친 인간아! 안 들어 올래? 당장 안 들어오면 너 진짜 이혼이다!
나, 진짜 안 쫓아낼 거지?
당장 돈이나 벌어 와!
귀신보다 더 무서운 아내 황장미에게 바람처럼 달려가 봐야 했다. 정태 씨는 걸음아 날 살려라,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