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죽던 날(청소년 장편소설)

저승에 온걸 환영해- 4

by 나비

내 이름이 적힌 유골함 앞에 활짝 웃고 있는 내 사진이 보였다. 고등학교 입학식이 열리는 학교 강당 앞에서 저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죽은 내가 내 유골함을 들여다볼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사진 속의 나를 더는 쳐다볼 자신이 없어 뒤돌아섰다.

신참 귀신인 나는 견학 온 것처럼 납골당을 돌아다녔다. 안개가 낀 듯 흐릿해서 밤인지 낮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반짝이고 눈썹 같은 초승달이 보였다. 밤인데도 주변 사물이 다 구별되었다. 아마도 내가 귀신이 되었기 때문에 밤에도 귀신처럼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았다. 진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납골당 이름이 천사의 정원이라더니 곳곳에 대리석 천사 조각상이 보였다. 사람들인지 귀신들인지 구별이 안 되는 이들이 삼삼오오 돌아다니며 산책을 하거나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연한 물감으로 그린 그림 속 사람들처럼 약간 흐릿하게 보였다. 귀신들도 몰려다니며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장난을 치거나 시끄럽게 싸우거나, 심지어 귀신들끼리 손을 잡고 다녔다. 느티나무 아래 둘러앉아 떠들거나 바둑이나 장기 두는 흉내를 내는 귀신들도 보였다. 귀신들은 둥글게 원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기도 했다. 마치 공원에서 한가롭게 놀고 있는 것 같았다.


천사의 정원에서 마음에 드는 건 바로 거대한 팽나무와 느티나무였다. 드넓은 정원 사이에 거인처럼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 아래 귀신들이 모여 앉아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분수대 앞에 서서 성악가 흉내를 내며 노래를 부르는 귀신도 있었다. 다른 귀신들이 성악가 귀신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귀신들에게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아 멀찍이 떨어져서 그들을 쳐다보기만 했다.

죽은 자들은 이곳에 49일 동안 머물다 진짜 저승으로 간다고 했다. 최녹사 말처럼 이 납골당은 일종의 신참 귀신들이 머무는 임시 대기소이거나 신병 교육대 같은 곳이 맞나 보다. 임시 저승의 생활은 살아있을 때와 비슷하기도 하고 다기도 했다. 귀신이니까 음식을 먹는다거나 잠을 자는 일은 당연히 없었다. 옷이 더럽다고 빨래를 해야 한다든가 목욕을 한다든가 양치를 해야 하는 귀찮은 일도 전혀 없었다.

진짜 저승에 가면 어떤지 몰라도 살아있을 때처럼 볼 수도 있고 소리도 들렸다. 다만 감촉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살아있을 때와 달랐다. 차갑거나 뜨겁거나 거칠거나 부드럽거나 하는 느낌이 없었다. 피부에 와닿는 바람의 느낌, 돌멩이나 나뭇잎의 감촉, 물살의 느낌을 알 수 없었다. 제단에서 피어오르는 향냄새나 꽃향기나 흙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 사라진 것이 죽음이 아닐까 싶었다.

죽어서 저승에서 지내는 것도 또 하나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죽음이라는 것은 끝인데 이렇게 멀쩡히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으니 이것도 또한 삶일까. 다른 게 있다면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번거로운 짓은 안 해도 되니 살아있을 때보다 좋은 건가. 소리가 듣고 볼 수도 있는데, 배도 고프지 않고, 손등을 쓰다듬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바람이 부는데 바람을 느낄 수도 없고 추운지 더운지도 느낄 수 없으니 내가 죽은 것은 확실하다.

내가 귀신이 되어서 그런지 귀신들은 끔찍하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았던 끔찍한 귀신은 보이지 않았다. 나처럼 높은 데서 뛰어내리거나 끔찍한 사고로 죽은 이도 있을 텐데 다들 몸은 멀쩡했다. 귀신들은 죽기 직전에 입은 옷차림 그대로인 듯했다. 그래도 벌거벗고 죽은 귀신은 없는지, 다들 옷은 걸치고 있었다. 소복을 입고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피 칠갑을 한 무서운 귀신도 없었다. 영화에 나오는 끔찍한 모습은 인간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귀신이었던 모양이었다.

여기에서 지내려면 귀신들과 좀 친해져야겠다 싶었다. 일단 내 또래 귀신부터 찾아야 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조직이나 무리에 끼어야만 덜 외롭고 견딜만 할 테니까. 나는 눈치를 보다 귀신들이 모여 있는 만남의 광장 쪽으로 쭈뼛대며 다가갔다.

“으악! 저, 저게 뭐야?”

“세상에! 괴물이다! 저리 가!”

“진짜 징그러워!”

“으! 끔직해.”

나를 본 귀신들은 하나같이 삿대질을 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내가 벗은 채로 돌아다니는 것도 아닌데 어이가 없었다. 나는 귀신답지 않은 귀신들을 쫓아다니며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귀신들이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귀신이 무서워하는 것도 있었나? 귀신들이 나를 피해 팝콘처럼 튀어 달아나는 통에 이유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나는 졸지에 귀신들이 무서워하는 귀신이 되어있었다.<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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