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죽던 날(청소년 장편 소설)

1. 저승에 온 걸 환영해-3

by 나비

최녹사는 이곳 천사의 정원 말고도 납골당 열 곳을 맡아서 죽은 자들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의 말 듣는 걸 제일 싫어했지만 최녹사가 떠들든 말든 내버려 두었다. 뇌진탕에서 깨어난 것처럼 멍했기 때문이다. 최녹사는 천사의 정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유래를 한참 설명했다. 내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일 뿐이였다. 무슨 저승사자가 납골당 영업사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승 사장님, 계속 들어야 해요?”

“일단 여기 처음 왔으니 오리엔테이션이라고 생각하고 들어봐.”

“제가 무슨 납골당 직원인가요? 지금 저 듣기 훈련 시키는 거죠? 전 듣기를 젤 못한단 말이에요.”

나는 발을 굴렀다.


“그래, 너 듣기 훈련 시켜주는 거야. 앞으로 잘 들어야 할 일이 많거든. 넌 잘 들어주는 귀신이 되어야 해.”

“뭘 잘 들어요? 귀신이라 이제 숟가락 들 힘도 필요 없는데.”

“하하! 고딩이 뭔 아재 개그를 다 하냐?”

“와! 진짜 저승사자 맞아요? 아재 개그도 알고 고딩이란 말도 아시네. 와! 대박! 근데요? 저승이 왜 하필이면 납골당이에요? 진짜 개 이상해.”



“거참, 물귀신처럼 끈질긴 녀석이네. 귀신들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니까 그렇지.”

최녹사는 49일 동안 이곳에서 지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바쁘다며 좀 있다 보자는 말을 남기고 휙 사라져 버렸다. 그야말로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49일? 삼촌이 돌아가셨을 때 49재를 지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죽은 자들은 49일이 되면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다고 했다.


최녹사의 말에 따르자면 납골당 천사의 정원은 저승 프렌차이즈 가맹점인 것 같았다. 저승도 수용인원이 많아진 탓에 치킨전문점처럼 본점도 있고 가맹점도 있는 모양이다. 최녹사는 천사의 정원이라는 저승 체인점의 사장이나 점장 같았다. 검정 슈트 빨이 죽이는 남자, 스마트폰에 미니 패드를 들고 나타나는 남자가 저승사자라니. 4차 혁명 시대라더니 저승도 디지털화될 줄 상상도 못 했던 바다. 인간 세상이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으니 저승도 인공지능처럼 자동으로 업뎃이 되는 모양이다.



나는 납골당 안을 돌아다니며 안치단을 구경했다. 납골당이나 아파트나 내부를 보면 구조와 모양도 비슷했다. 아파트도 네모나고 층층으로 지어져 있듯이 납골당의 안치단도 층층이었다. 틀에 찍어낸 것 같은 상자 모양도 비슷했다. 아파트 평수가 다르듯 안치단도 크기가 다 달랐다. 아파트에도 로얄 층이 있는 것처럼 안치단도 로얄 층이 있는 듯했다. 3단에서 6단은 안치단이 다 차 있었지만 꼭대기나 맨 밑에는 유골함이 몇 개 되지 않았다. 제일 아랫단과 제일 윗단은 참배하기 불편해서 인기가 없는 것 같았다. 네모 난 안치단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이사 온 자들의 집인 셈이다.



안치단 안에는 고인의 온갖 유품이 놓여 있었다. 고인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과시하는 것처럼 고인을 기념하는 물건이나 장식품 종류가 달랐다. 미니어처 제사상이 유골함 앞에 놓인 안치단도 보였다. 과일과 떡과 고기, 술과 전, 유과가 놓인 제사상은 실제 제사상과 흡사했다. 비싼 위스키병도 있고 막걸리, 소주병, 와인병과 같은 미니어처 술병도 다양했다. 미니어처 햄버거, 피자나 치킨, 콜라나 사이다 병도 보였다. 죽어서라도 배불리 먹고 마시라는 남겨진 자들의 마음인 듯했다. 죽으면 배고픔도 못 느끼는데 산 사람을 위로하기 위한 제사상이 아닐까.



대부분의 안치단 안에는 화려하게 꽃으로 테두리를 장식한 작은 사진 액자가 놓여 있었다. 결혼식 사진, 가족사진, 친구들과 같이 찍은 사진 속에서 죽은 자들의 미소는 죽지 않고 생생히 살아있었다. 어떤 유골함 앞에는 미니어처 기타와 바이올린, 장난감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로봇까지 들어있었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삐뚤삐뚤한 글씨가 적힌 종이 카네이션이 붙어있는 안치단도 보였다. 사람은 떠나고 없어도 사랑은 남는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하얀 데이지와 노란 소국 꽃다발이 붙어있는 안치단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故정수호. 나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서 안치단을 쳐다보았다. 내 이름 앞에 붙은 고(故)라는 글자 하나가 죽음과 삶 사이에 놓인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졌다.

내 아들 수호야, 영원히 사랑한다. 꿈에라도 한번 와주렴.

안치단에는 엄마의 손글씨로 쓴 카드가 들어있었다. 엄마는 저 카드를 쓸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저 유골함 안에는 내 뼛가루가 들어있을 것이다. 만에 하나 내가 살아난다 해도 다시 돌아갈 내 몸은 사라진 것이다. 귀신이 되어 내 유골함을 바라보고 있으니 죽었다는 사실이 비로소 실감 되었다.<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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