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가 뱀 머리 귀신이 되다니-2
“거참, 시끄러운 놈일세. 그렇게 억울하면 왜 죽었어? 그냥 참고 살지.”
생긴 거 하나는 참 지적으로 보이는데 저토록 단순 무식할 수가 있나? 참고 살 수 있었다면 내가 왜 자살을 했겠는가.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왔다.
“와! 누가 죽고 싶어 죽었어요? 진짜 너무 하시네. 왜 나만 뱀이 있냐고? 완전 불공평해! 제발 이것 좀 어떻게 해 줘요. 여기 귀신들이 전염병 환자 취급해요. 진짜 완전 개 짜증!”
내가 소리를 지르고 팔짝팔짝 뛰어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수호야, 내가 지금은 좀 바쁘단다. 요즘 청소년 자살 문제가 너무 심각하잖니? 그 때문에 저승 청소년 자살 대책회의에 참석해야 한단다. 이따 보자.”
최녹사는 뭐가 바쁜지 또 바람같이 휙 사라져 버렸다. 청소년 자살 대책회의? 저승에서 청소년 자살 대책회의를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런다고 이미 죽은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였다.
진짜 후회막심이다. 머리에 뱀이 돋아날 줄 진작 알았다면 자살 따위는 생각지도 않았을 텐데. 죽어 본 적도 없고 저승에 다녀온 사람을 만난 적이 없으니 저승이 이런 줄 어떻게 알았겠냐고.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물어뜯을 것만 같이 살기등등한 뱀, 갈라진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핏빛 뱀이 머리에 붙어 있다니. 내가 지금 얼굴도 본 적 없는 염라대왕에게 벌을 받은 셈인가. 이것이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결말, 인과응보, 권선징악인가?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에 푹 빠졌었다. 가장 무섭고 오싹한 장면이 바로 메두사가 나오는 대목이었다. 긴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끔찍한 뱀으로 변해 꿈틀거리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돌로 변하게 만드는 무서운 메두사의 모습은 DNA에 박혀 있는 태초부터의 공포를 다 자극했다. 혓바닥을 날름대는 뱀이 우글거리는 장면은 공포의 원형질이었다.
임시 저승의 주민인 보통 귀신들은 나를 무리에 끼워 주지 않았다. 내가 다가가면 질색을 하며 그 자리에서 내쫓기 바빴다. 나도 귀신인데 귀신을 피해 숨어 있어야 하다니 억울했다. 최녹사가 뱀을 떼 주지 않는다면 내 손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바닥에 떨어진 나무 막대기가 보였다. 막대기를 집어 들어 뱀을 떼어 내 볼까 했으나 헛수고였다. 막대기나 돌멩이 하나도 잡을 수가 없다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뱀이 저절로 사라지거나 누가 떼어 주지 않는다면 이 뱀을 제거할 방법은 없다는 말인가.
머리에 뱀 대가리가 붙은 귀신은 책에서도 영화에서도 듣도 보도 못했다. 『해리 포터』 주인공 해리의 이마에 있는 멋진 번개 문신도 아니고 『다빈치 코드』에 나오는 다윗의 별도 아니고 뱀이라니. 죽어서 귀신들에게도 왕따를 당하다니 이거야말로 지옥 중의 지옥이었다.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말은 지어낸 얘기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었나.
천사의 양쪽 날개를 펼친 듯한 웅장한 본관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납골당 중앙에는 본관, 왼쪽에는 신관, 오른쪽에는 황금빛 로열관이 있었다. 거대한 본관 건물과 신관, 관리동과 각 종교별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정원은 쇠락한 왕궁의 정원처럼 보였다.
납골당 이름이 ‘천사의 정원’이라니, 심란하기 짝이 없다. 먼저 떠난 아들을 위해 참으로 낭만적이고 근사하고 우아한 이름을 단 납골당을 고르고 골랐으니까 엄마 아빠에게 감사해야 하나. 하지만 이름만 근사할 뿐 나에게는 악마의 정원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최녹사만 눈에 띄면 쫓아다녔다. 최녹사는 바람같이 나타났다가 번개처럼 사라지며 나를 약 올렸다.
“사장님, 제발 이것 좀 어떻게 해 봐요.”
나는 본관 건물로 들어가려는 최녹사를 가로막았다. 최녹사는 사장이란 호칭에 익숙해졌는지 더 이상 최녹사님이라 부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최녹사는 느티나무 아래에 놓인 페인트칠이 벗겨진 녹색 나무 벤치에 앉았다. 나보고 옆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지만 나는 그대로 서 있었다. 최녹사 곁에 있으니 주변에 어슬렁거리던 귀신들이 멀찌감치 물러서서 지나갔다.
“대한민국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뭔 줄 아니?”
자다가 뭔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입만 열면 귀신 씻나락 까먹는 헛소리나 지껄이는 최녹사가 얄미웠다.
“그게 이 뱀 대가리랑 뭔 상관이에요?”
“바로 자살이야. 청소년 다섯 중 한 명은 자살 생각에 빠지고 사흘에 한 명 꼴로 자살하지. 출산율은 꼴찌인데 청소년 자살률은 세계 1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자살 공화국’인 셈이야.”
최녹사는 무슨 박사처럼 썰을 풀었다. 청소년 자살 대책회의에 다녀온다고 하더니 그 말이 헛소리는 아닌 모양이다.
“헐! 수업 듣는 줄? 듣기 싫거든요. 제발 이 뱀 대가리나 떼 줘요.”
“그걸 왜 나한테 해 달라고 하니? 네 힘으로 해결해야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할 수 있으면 진작 떼어 냈지, 안 되니까 그러죠. 죽으면 다 끝나는 줄 알았는데……. 대체 이게 뭐냐고요?”
나는 발을 구르며 신경질을 부렸다. 최녹사는 잠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우물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듯한 깊고 서늘한 눈빛이었다.
“정수호! 너 왜 죽음을 선택했지?”
최녹사는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죽고 싶어서죠.”
바보 같은 질문엔 바보 같은 답을 해야 마땅했다.
“왜 죽고 싶었지?”
“살기 싫어서죠.”
당연한 대답이었다.
“왜 살기 싫었을까?”
왜 살기 싫었냐고? 나는 대답을 못 하고 머뭇거렸다.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최녹사를 똑바로 응시했다. 무슨 스무고개도 아니고 왜 곤란하게 자꾸 묻고 난리야?
“난 죽어 마땅한 놈이었어요. 살 이유도, 살 가치도 없었어요. 나 같은 건…….”
최녹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다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 잠시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살 이유가 없었다? 만약에 누군가 네게 살아야 할 이유를 알려 주었다면, 어땠을까?”
“…….”
아무도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살 가치가 없으니 죽어야 마땅했다. 나는 급 우울해져 고개를 떨구었다. 평화의 광장 쪽에서 귀신들이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 귀신들은 임시 저승에서 휴가를 즐기는 것처럼 다들 느긋해 보였다. 안식을 누리는 그들이 부러웠다.(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