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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묘 Jan 22. 2020

탈모 아빠의 사소한 고민

육아 에세이. 모발 이식/증모/가발과 육아와의 관련성을 고찰해 보자

고민은 사소한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첫째 딸(6세) : 아빠, 우리 이제 곧 할머니 집에 가요?
아빠 : 그래, 좀만 지나면 대구 할머니네랑 안양 할머니네 다 갈 거야.
첫째 : 아빠, 나는 안양 할머니랑 안양 할아버지랑 안양 삼촌이랑 대구 할머니가 좋아. 난 대구 삼촌이랑 대구 할아버지는 싫어.


추측해 보건대, 안양 할머니랑 안양 할아버지는 최근에 만나 익숙함이 남아 있기 때문이고, 대구 할머니는 첫째에게 워낙 잘해 주셔서 그런 것 같고, 안양 삼촌은 첫째와 엄청 헌신적으로 놀아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아빠 : 랑아, 그럼 대구 삼촌이랑 대구 할아버지는 왜 싫어?
첫째 : 음, 난 대구 삼촌은 좋은데 대구 할아버지는 싫어!


이유는 말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첫째. 

대구 삼촌이 다시 좋다고 이야기한 이유를 나 혼자 추측해 보건대 대구 삼촌은 강원도에 출장 있을 때 집에 간혹 들러서 맛있는 것도 사주기도 하고, 그렇게 안면을 익혔던 기억이 첫째에게 갑자기 떠올랐으리라.


아빠 : 랑아, 그런데 대구 할아버지는 왜 싫어?
첫째 : 음, 머리가 없어. 대머리니까, 머리가 없어서 좀 그래.
아빠 : ???!!!!!!!
엄마 : (당혹해하면서도 크게 웃으며) 그런 이유로 사람을 싫어하면 어떡하니?


뒤통수가 얼얼했다. 아내가 나를 바라보면서 씩 웃더니, ‘남편, 가발 해야겠네.’ 이렇게 한 마디 던졌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현재 내 머리 위쪽으로는 한창 사막화가 진행 중이다. M자형 탈모와 정수리 탈모가 같이 진행되는 가운데 번쩍이는 이마는 빠르게 그 영역을 확장 중이다. 마치 녹지대가 어떤 생명도 자라지 않는 사막으로 변하는 것처럼 변화하고 있다. 결혼하기 전에는 단골 헤어숍에 가서 연 100만 원 이상의 두피 탈모 케어를 받기도 했고, 모 한의원에서는 두피에 봉침을 정기적으로 시술받기도 했다. 탈모 전용 샴푸를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어성초를 숙성시켜 그 액을 머리에 뿌리고 밤마다 10개의 손가락으로 두피를 건반 삼아 광란의 광시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검은콩을 으적으적 먹기도 했다.


부질없었다.(아니, 그나마 그렇게 해서 다 벗겨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그건 너무 긍정적인 자기 합리화 아니냐……. 흑.) 여하튼 이제는 자연의 섭리이자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은 많이 편해졌다. 예전에는 그나마 있는 머리를 활용하여 어떻게든 스타일 만드느라 매일 머리카락은 스프레이와 왁스 범벅이었다.(예전에 어떤 교장선생님은 내 머리를 보고 ‘너는 머리에 바가지 썼냐?’ 이렇게 막말을 던지신 적도 있다.) 머리 스타일 잡느라 어떤 때는 거울 앞에서 한 시간 넘게 머리를 만진 적도 있다. 이게 얼마나 괴로운 작업인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가리고 싶어도 도무지 가려지지 않는 이마의 빈 구석이 보일 때 찾아오는 좌절감이란……. 이 지난한 과정 속에서, 잡을 수 없는 꿈을 잡기 위해 그동안 노심초사한 내가 어느 순간 불쌍했다. 없는 머리로 만든 스타일이 또한 그다지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이것은 실로 이중고다! 스타일을 만드는 과정도 고통이고, 만들고 나서도 바람이 날리면 휭~ 비어버리는 부분을 보면서 그토록 부정하고 싶은 정체성을 강제로 확인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래, 나는 탈모인이다, 이렇게 인정해 버렸다.(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 신세계가 열렸다. 아침에 스타일 만들려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된다. 출근 시간도 단축되고, 제품 때문에 고생했던 내 두피도 이제 해방이다. 머리 꾸미는 용도의 물품을 사지 않아도 되니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다. 그리고 이 탈모 상황을 십 분 활용하여 수업 시간에 가끔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로 삼기도 한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그저 시간의 흐름에 나의 머리카락을 맡길 뿐이었다.(득도한 신선 같지만) 

모발 이식의 부작용,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절대로!

뭐, 완전히 속세를 떠나지 못했다. 가끔 아쉬운 마음이 불쑥불쑥 치민다. 아직 그래도 젊은 편인데, 머리숱만 좀 있어도 전체적인 느낌이나 인상이 다를 텐데,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다시 모발 이식이나 증모, 가발과 관련한 인터넷 정보를 찾아보곤 한다. 모발 이식은 비용도 비용이고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심은 곳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다 빠질 수 있다고 하니, 너무나 리스크가 크다.(기껏 큰돈을 들였는데 해괴망측한 머리로 남은 인생을 살 수 없다.) 증모도 마음이 가지만 월에 최소 1번은 관리해 주어야 하는데 그 정기적인 시술 비용이 현재 나의 수입 상 쉽지는 않다.(애가 셋이라 앞으로 그 밑에 들어가야 할 데가 많다.) 그럼 가발? 브랜드별로 가발 비용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상세한 상담은 못했지만 자연스러운 가발을 하려면 그나마 남아 있는 머리를 밀어야 할 것 같아 그 부분이 부담스럽다.


이런저런 이유로 결정을 못 내리고 있으면 불현듯 ‘아이고, 됐다. 의미 없다. 이렇게 살다 죽으련다.’라고 혼잣말을 한 뒤 다시 고민했던 것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다시 그냥 산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내가 사랑하는 첫째가 외할아버지가 대머리라는 이유로 싫다고 하니 좀(아니, 실제로는 많이) 충격이었다. 진짜 가발을 해야 하나? 이번 방학 때 한 번 상담받아봐? 요즘 젊은 사람들도 가발 많이 한다고 그러던데, 그게 흠 될 것은 없잖아? 가발 쓰고 다니는 게 귀찮지 않을까? 아무리 자연스럽더라도 머리에 뭘 덮어쓰는 건데, 답답하지는 않을까?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예전에 봤던 어떤 뉴스가 떠오른다. 초등학생들이 학교에 자기 엄마랑 아빠가 올 때 친구들의 부모에 비해 늙어 보이면 엄청 싫어한다고, 그래서 실제로 집에 가서는 엄마에게 앞으로 학교 오지 말라고, 엄마 때문에 내가 창피하다고 울면서 이야기하는 애들도 있더랬지. 그래서 특히  나이 들어 아이를 낳은 엄마 같은 경우는 주름을 제거하는 성형 수술도 받는다고 했었다. 그 기사에서 나이 들어 보인다는 엄마 아빠에 내가 갑자기 오버랩되었다. 첫째도 나중에 사막화가 끝난 머리의 아빠가 초등학교에 가면 엄청 싫어할까? 딸에게 머리카락 한 올까지 멋진 아빠로 기억되고 싶은 것은 지나친 바람일까?




모르겠다. 모든 것은 가능성의 문제이니. 초등학교에 가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내 머리카락도 아직은 나름 싱그럽게 살아있다. 첫째의 입장도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른다. 다만 탈모인으로서 주체의식을 갖고 삶을 자연스럽게 살고자 했던 나의 평생 다짐과 육아하면서 계속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자녀의 느낌과 바람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전자라면 첫째의 사랑이 내 머리카락에 머물러 있지 않게 아빠로서 더욱 친밀하게 관계를 맺어가야겠지.(그건 내 생각뿐일 수 있다는 게 함정…….) 후자라면 스스로의 신념이자 다짐을 어겼다는 자책은 뒤로 하고 가발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삶에 즐겁게 적응했으면 좋겠다. 그런 선택을 내려야 할 시점이 오기 전에 간절하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다.(부탁이라 쓰고 소원이라 읽는다.) 


전 세계의 생명과학자들이여, 제발 탈모를 치료하는 기적의 약을 속히 만들어 주시길.(3년 내라고 하면 너무 어려운 부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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