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에세이. <당신이 옳다>를 읽고 감정을 받아주고 공감해 보니
#1
둘째 아들(4살) : 아.. 빠... 아.. 빠... (울먹울먹)
아빠 : 예람아, 누나가 예람이 장난감 가져가서 속상했어?
둘째 : (끄덕끄덕)
아빠 : 그래서 속상했구나, 화도 나?
둘째 : (끄덕끄덕)
아빠 : 화가 많이 나? 얼마나 많이 나? 누나 엄청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니?
둘째 : (도리도리)
아빠 : 그 정도는 아니야? 아이고, 우리 둘째가 화가 많이 났구나. 그랬구나.(더 꽉 안아준다.)
첫째 딸(6살) :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아빠는 참 착한 아빠구나?
둘째 : (아빠 품에 있다가 내려와서 다시 누나랑 논다.)
“아빠는 우리의 감정에 집중해 주는 아빠구나.”
한 사람이 제대로 살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스펙이 감정이다. 감정은 존재의 핵심이다. 한 사람의 가치관이나 성향, 취향 등은 그 존재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중요한 구성 요소들이지만 그것들은 존재의 주변을 둘러싼 외곽 요소들에 불과하다. 핵심은 감정이다. 내 가치관이나 신념, 견해라는 것은 알고 보면 내 부모의 가치관이나 책에서 본 신념, 내 스승의 견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감정은 오로지 ‘나’다. 그래서 감정이 소거된 존재는 나가 아니다. 희로애락이 차단된 삶이란 이미 나에게서 많이 멀어진 삶이다.
(중략)
자기 존재가 집중받고 주목받은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확보한다. 그 안정감 속에서야 비로소 사람은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하다.
(중략)
그때 내가 아이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면 공감이 아닌가. 공감이다. “나는 미처 몰랐지만 너는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하고 아이의 그 마음을 받아 안는 것, 그것을 바탕으로 아이의 존재 전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공감이다.
모든 인간은 각각 개별적 존재, 모두가 서로 다른 유일한 존재들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같은 감정을 갖지 않는다. 다르다. 그러므로 공감한다는 것은 네가 느끼는 것을 부정하거나 있을 수 없는 일, 비합리적인 일이라고 함부로 규정하지 않고 밀어내지 않는 것이다. 관심을 갖고 그의 속마음을 알 때까지 끝까지 집중해서 물어봐 주고 끝까지 이해하려는 태도 그 자체다. 그것이 공감적 태도다. 공감적 태도가 공감이다. 그 태도는 상대방을 안전하게 느끼게 하고 믿게 하고 자기 마음을 더 열게 만든다.
<출처 : 당신이 옳다 | 정혜신 저>
언제나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이 순간임을 잊고 살아왔던 것이다.
#2 (#1의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후)
첫째 : (겨울왕국 화장품 가방을 들고) 아빠, 이것 좀 봐요. 여기 뭐가 들어있게요?
아빠 : (귀찮은 기색으로) 하랑아, 아빠 지금 힘들고 피곤하니까 저리 가서 혼자 놀아.
첫째 : (무시하며) 아빠, 여기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아요?
아빠 : (짜증이 확 올라와서) 하~랑아, 아빠 좀 쉬고 싶으니까 의자에서 좀 내려와. 너 혼자 잘 놀 수 있잖아.
첫째 : 싫어! 나 아빠랑 놀 거야. 난 아빠를 사랑하니까, 아빠 옆에 있을 거야!
#3 (이후 첫째의 원아 수첩에서 발견한 담임선생님의 메시지)
하랑이가 아빠가 방학했다고, 그래서 아빠랑 더 많이 놀 수 있어서 좋다고 신나 하네요.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