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 학교에서 진행된 신년 하례식, 이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학교 선생님들과 새해 덕담을 나누며 업무 시작을 알리는 시간. 특별히 이사장님의 하례 말씀은 초보 아빠인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셨다.
이사장님은 올해로 팔순(八旬)이시다. 잠실 교회의 개척자이자 원로 목사로서 –교회 세습 없이 물러나셨다– 우리 학교를 또한 설립하시는 등 쉬지 않고 사역하셨다. 겉으로 봤을 때는 이제 남 걱정 없이 하시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사셔도 될 것 같은 연세이다. 그런 분이 하례 말씀에서 남 걱정하시는 이야기를 하니 좀 의외였다.(내가 이사장님의 삶을 너무 단순하게 판단했었나.)
키워드는 감사, 그런데 감사라는 것을 풀어내기 위해 사용한 소재가 자식에 관한 것이었다. 그동안 자식의 일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 자식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아질 때도 있었지만, 자꾸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자식을 생각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오히려 그를 위해 더욱 기도하게 되고, 그를 바라보는 마음도 한결 평안해졌다고, 결국 우리가 감사하느냐 감사하지 않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사장님의 말씀 속에서 ‘감사’가 아닌 -물론 감사하는 삶도 매우 중요하다- 다른 것에 꽂혔다. 아내에게 종종 아이들 다 결혼시킨 후에는 둘이서 홀가분하게 여행도 가고, 걱정 없이 살자고 농담조로 말했었다. 은연중에 자식 농사가 그렇게 마무리되면 더 이상 자식의 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것으로 여긴 것 같다. 한데 이사장님의 모습을 보니 그렇게 쉽게 끝을 낼 수 있는, 신경 안 쓰고 산다고 해서 신경이 전혀 써지지 않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아, 저렇게 많은 것을 이루시고 자식도 다 품에서 떠나보낸 분도 자식 생각에는 유통기한이 없구나.
뭐, 이런 느낌? 내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팔순의 시간을 빌려와서 삶의 또 다른 단면을 엿본 느낌이었다.
아마 자식은 자식이고, 부모는 부모이고, 각자의 삶이 있는데 자식이 다 장성한 후에까지 걱정하면서 관여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가치관을 강하게 주장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 말도 맞는 말이다.(황희 선생님 같다.) 사실, 잘 모르겠다. 자식을 어떻게 대하는 게 정답인지는. 집에 와서 아내에게 이사장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서 자식 생각은 늙어 죽을 때까지 놓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니, 아내가 이렇게 얘기한다.
“그건 당연하지. 아무리 자식이 독립해서 잘 살아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끝이 난 건 아니잖아?”
그래서 천륜(天倫)인 건가?
그래서 오늘도 앉으나 서나 머릿속에서 자식 생각을 떼어놓을 수 없는 부모로서의 삶을 살아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