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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묘 Jan 30. 2020

글로라도 배웠으면 좋겠다
; 2월 육아도서 10선

육아 에세이. 10권 읽고 초보 아빠를 탈출할 수 있을까

셋째가 엉금엉금 기어와 화장실 문턱에 자신의 몸을 척 걸친다. 첫째와 둘째는 내 양 무릎에 앉아 양치질을 하는 중이다. 저 다음을 막아야 하는데 운신하기가 어려우니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솔아, 여기 들어오면 안 돼! 여기 들어오는 거 아냐! 아냐, 아냐, 얌마! 들어오지 마!”

아내는 설거지를 하느라 부엌에 있어 내가 소리치는 말을 듣지 못한다. 8개월 된 솔이는 어떻게 자기 얘기를 하는 줄은 알고 방긋 웃는다. 내가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간절한 표정과 외침을 오히려 어서 오라고 잔뜩 환영해주는 것으로 오해한 것 같다. 솔이는 두 다리에 힘을 줘 바닥을 차더니 어느새 문턱을 쑥 넘어 버렸다. 물기로 미끄러운 화장실 바닥에 안착한 솔이는 마냥 자신이 해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바닥을 손으로 마구 친다. 솔이의 옷이 축축하게 젖어간다. 미리 막는 것에 실패한 내 마음도 축축하게 가라앉았다. 아이고.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가 넘었다. 어른들은 피곤한데 아이들은 여전히 팔팔하다.  


우리 아이들은 꿈나라로 가는 시간이 늦은 편이다.(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통계적으로 어떤 집단에 속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보통 23시가 지나야 하나 둘 잠들기 시작하고 23시 40분 정도 되어야 부모에게 프리 타임이 주어진다.(그 짧은 시간에 뭐라도 집중해서 하고 자면 새벽 1시에 자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가끔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사람은 아이들을 21시에 다 재운 후 자신만의 시간을 온전히 갖는다고 한다. 그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여러 취미 활동을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 부러움이 사무친다. 나도 그런 시간 갖고 싶다! 그러다 보니 취침 시간만 되면 아이들을 자꾸 다그치게 된다.


“빨리 자! 왜 안 자! 새 나라의 어린이들은 일찍 자야지! 지금부터 돌아다니면 잠을 안 재울 거야! 밤새도록 놀게 할 거야! 누워! 일어나지 마! 움직이지도 마! 왜 지금 물을 마셔! 한 번에 좀 하자!”


진부하고 폭력적인 언사로 아이들을 강제로 재우려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 괴롭다.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런 식으로 재울 수밖에 없나 하는 자괴감도 든다. 확실히 애만 셋이지 육아는 아빠로서 왕초보임을 새삼 깨닫는다. 육아에서 어떤 철학도 없고 북극성도 없으며 구체적인 전략도 없다. 내 상황과 편의를 우선하는 이기적인 아빠로서 하루하루 버티는 것 같다.(이런 과정이 밤마다 자주 반복되니 마음이 어렵다.)


보통 이성을 쉽게 사귀지 못하는 친구가 있을 때 주위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연애를 글로 배워서 그렇다고 하는데, 아니 그럼 본능적으로 그게 가능한가? 그럼 타고나야 연애할 수 있는 거야?(…… 죄송합니다. 제가 좀 흥분했네요. 연애를 많이 못 해봐서.) 나는 위의 농담과 생각이 다르다. 자신이 잘 모르는 세계는 글을 통해 간접 경험이라도 해봐야 한다. 육아 또한 마찬가지, 육아를 글로라도 배웠으면 좋겠다. 이건 진심이다. 그렇게라도 해야지 육아를 대하는 안목이 트일 것 같다. 지금껏 그저 상황이 닥치는 대로 해왔지만, 정말이지 초보 아빠로서 실전을 통해 갈고닦는 육아력에만 의존하는 것에는 한계가 왔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다.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아이들을 기르는 지도 궁금하다. 찾아가서 인터뷰를 할 수도 없으니, 결국 답은 책이다. 그래서 개학하는 3월 전까지 육아 관련 도서를 집중적으로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글로라도 육아를 배우겠다는 생각을 나만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읽을 책을 검색하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수많은 육아 도서가 넘쳐나는 것은 내 생각을 뒷받침하는 나름의 증거가 아니겠는가?(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는 법) 그중 10권의 책을 골라봤다. 




1. <육아의 조건>, 이보연, 끌레마

현재 EBS 《60분 부모》에 출연 중이며,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KBS 《그랑프리 쇼―불량아빠클럽》 등에 출연한 이보연 소장의 20여 년의 상담경험과 철학을 집대성한 책이라고 한다. 예전 오은영 선생님이 출연했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흥미롭게 본 적이 있다. 이보연 선생님이 출연한 편을 보지는 못했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친밀성 때문에 선뜻 손이 갔다.


2. <엄마 같지 않은 엄마>, 세라 터너, 나무의철학

난 엄마는 아니지만 육아는 같이 하는 거잖아? 꼭 아빠의 육아에 한정해서만 책을 읽고 싶지는 않았다. 역할이 서로 조금 다를 수도 있으니 아빠로서만이 아닌, 엄마나 아빠의 육아 특징을 모두 알고 있다면 육아를 대하는 폭이 더욱 넓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영국 아마존 40주 연속 베스트셀러인 이 책은 표지가 엄청 매력적이다. 엄마가 큰 냄비를 얼굴에 뒤집어쓴 채로 포즈는 마치 환장하겠네 하는 식으로 양손을 들고 있다. 그 앞에서 독자를 향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기는 독자들에게 궁금하면 빨리 책을 구입하라고 재촉하는 듯하다. 


3. <느긋한 육아>, 진 블래크머, 아름다운사람들

아, 느긋한 육아라니, 정말 제목부터 마음속에 감동으로 물결친다. 제목만 보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느긋한 육아를 할 수 있는 것 같은 기대감이 무럭무럭 샘솟는다.(하지만 현실은 다르겠지, 시무룩) 저자는 모성 센스라는 키워드를 8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이를 일상생활에서 연습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500명 엄마들의 경험과 현실 검증된 조언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고 하니 이 중에 나에게 도움되는 조언도 하나는 있지 않을까? 


4. <극한 육아 상담소>, 한혜진, 로지

책 소개말이 눈에 띈다. ‘이 세상에 나쁜 엄마, 못난 엄마는 없다! 오직 엄마가 되기 위한 과정만 있을 뿐!’ 나에게 대입해 보면, ‘이 세상에 나쁜 아빠, 못난 아빠는 없다! 오직 아빠가 되기 위한 과정만 있을 뿐!’ 이렇게 한 번 바꿔서 읽어보니 위안이 된다. 방송작가인 저자도 육아 우울증에 걸리며 절망했을 때, 네이버 포스트에서 육아 관련 글을 연재하면서 자신도 추스르고 다른 사람도 돕게 되었다고 한다. 홍보 문구에서는 무려 200만 엄마들의 공감을 받았다고 하니(무슨 합격자 수로 말하는 에듀윌도 아니고) 그만큼의 내공이 있을지 한 번 읽어봐야겠다.


5. <말 걸기 육아의 힘>, 김수연, 예담friend

국내 최초 0~5세 아이 언어 발달 가이드가 담겼다고 한다. 저자는 아기발달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아기 성장 발달 평가와 초보 부모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러한 주장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둘째는 또래 아이들보다 말이 늦는 편이다. 반면 말귀는 제법 알아듣는 편이라 대답도 잘하고 간단한 심부름도 곧잘 한다. 예전에 지인에게 듣기로는 3~4살 때는 표현력보다 이해력이 더 중요하다 하여 크게 걱정하고 있지는 않은데,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의 언어 발달에 대한 구체적인 배경 지식도 쌓고 내 생각에 확신을 더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수정해야 할 건 당연히 수정해야겠지…….)


6. <미운 네 살, 듣기 육아법>, 와쿠다 미카, 길벗

일춘기가 시작되는 4~5살, 교육학적으로도 아이들의 자기 중심성이 커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말을 잘 안 듣고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내 경험에도 그렇다. 첫째는 4살 때 그러했고 5살이 되면서 나아졌다. 둘째가 지금 일춘기 중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소통을 잘할 수 있을까. 저자는 잘 듣는 것이 중요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이것은 네 살 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아마 자녀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평생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7. <아이의 감정이 우선입니다>, 조애나 페이버, 줄리 킹, 시공사

미국 전역에서 입소문을 타며 미국 아마존 육아, 심리 분야 베스트셀러이다. 제목을 접한 순간 얼마 전 읽었던 정혜신 작가의 <당신이 옳다>가 생각났다. 왠지 <당신이 옳다>의 아이 집중 버전이 아닐까 싶다. 두 저자 중 한 명인 조애나 페이버는 미국 자녀 교육계의 전설로 불리는 아델 페이버의 딸로 교육 전문가의 길을 걸어왔으며, 다른 한 명인 줄리 킹은 예일대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재였는데 출산 후 그들이 이룩한 성과는 육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기존의 방법론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그들의 육아 경험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아마도 훈육과 육아의 외형적인 기술보다 아이의 감정이라는 내적 특성에 집중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지 않았나 싶다. 


8. <육아빠가 나서면 아이가 다르다>, 정우열, 중앙북스

과연 뭐가 다를까 하는 의구심이 살짝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 다르긴 할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자녀에게 주는 영향이 다르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 결과와 사례로 제시되어 있으니. 육아 빠뿐만이 아니라 육엄마가 나서도 아이는 다를 것이다. 엄마의 육아를 평범하게 여기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 같이 느껴져 개인적으로는 제목이 맘에 안 든다. 그럼에도 같은 아빠로서 유쾌하게, 때로 진지하게 육아 문제에 대해 공감할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도 든다. 전문가가 제시하는 이론과 실용적인 방법론이 아닌, 나와 같은 비전문가가 그려낸 아빠의 일상이니까.


9. <프랑스 육아의 비밀>, 안느 바커스, 예문 아카이브

제목에 다른 나라가 붙었다. 위에 소개한 여러 책들도 외국 저자가 있어서 해외 사례라고 보아도 크게 문제는 없지만 제목에 떡하니 프랑스라고 있으니 국내 육아와는 또 다른 문화적 특성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저자는 프랑스의 저명한 아동심리학자인데 책에서는 이십 년에 걸쳐 상담하면서 부모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질문과 해답을 100가지 정도로 제시하고 있다. 모르겠다. 딱 떨어지는 답이 있긴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통계적 경험은 무시할 수 없다. 다만 부모로서 우리 아이들의 고유성을 망각하지 않고 그 해답을 적용해 보는 노력이 필요할 듯하다.


10. <완벽하지 않아서 행복한 스웨덴 육아>, 홍민정, 미래의 창

이번엔 스웨덴이다. 완벽하지 않다……, 응? 지금도 내 육아는 완벽하지 않은데? 아마도 한국 엄마의 특성, 또는 저자의 육아 특성을 ‘완벽함’으로 잡은 것 같다. 대충 맥락이 그려진다. 성과주의와 완벽주의의 포로가 된 한국 사회가 육아에도 은근히 영향을 주었고 저자 자신도 그러한 육아 철학에 알게 모르게 세뇌당했는데 스웨덴에 와서 그게 깨졌다는 식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그런데 스웨덴은 육아 철학도 그렇지만 사회 구조적으로도 육아하기에 좋은 환경이지 않나? 거기는 오후 4시 이후면 다 퇴근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긴다고 하던데, 정말 꿈같은 이야기이다! (너무 부럽……, 아냐, 부러우면 지는 거야.) 다른 세상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재밌다. 한국 사회에서 사는 이 초보 아빠에게 색다른 영감을 던져주길 기대하며 읽어봐야겠다.




10권의 책을 읽는다고 얼마나 내 육아력이 향상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육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 우리 세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에 정성을 쏟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예전 현빈이 정조로 열연한 “역린”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자기 하나 죽인다고 세상이 달라질 것 같으냐 하며 자신을 비웃던 노예상을 단칼에 처단하는 정조(현빈)는 자신의 심복들과 함께 태양을 향해 말을 타고 달려가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 <출처 : 중용 23장>


이윽고 정조(현빈)가 나지막하게, 확신에 찬 어조로 이야기한다. 


‘변한다, 반드시 변한다.’

중용 23장은 내 인생철학 중 하나이다. 진심을 다해 노력하는 정성이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의 성장에 보탬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런 신념을 가진 아빠로서 최선을 다해 책을 읽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겠다. 그리고 언젠가 이 책들을 다 읽고 나면 구체적으로 내용을 소개하는 글을 브런치에 올려 내가 느낀 것을 공유하고 싶다.(10권을 일단 한 달 동안 잘 읽어야겠지……. 글도 시간 내어 부지런하게 쓰고……. 가능하겠지? 하하.)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에서 노력하고 있는 모든 아빠들이 육아에 정성을 쏟는 과정에서 무척 행복했으면 좋겠다.




<지난 글 후기>

깜짝 놀랐습니다. 설 명절이 지나고 지난 글인 “탈모 아빠의 사소한 고민”의 조회 수가 갑자기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아마도 명절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털이 빠진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머리털은 빠지더라도 우리 탈모인의 삶에 행복이 빠지지는 않길 바랍니다. 머리털로 고민하는 모든 분들, 같이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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