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묘 Feb 06. 2020

가족의 완성

육아 에세이. 셋째의 탄생과 귀여움에 관하여

“선생님, 셋째 생기면 아마 엄청 귀여울 거예요.
저도 아이가 셋이나 있는데 셋째가 가장 귀엽더라고요.”

우리 반에 자녀가 셋인 학부모님이 몇 분 계신데 셋째 출산을 2개월 정도 남겨 두었을 때,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이거였다. 너나 할 것 없이 셋째의 귀여움은 차원을 달리한다고 하시니 마치 이 세상에서는 만날 수 없는 환상의 고양이 같은 귀여움이랄까?(복슬복슬 보들보들 야옹야옹, 상상의 나래를 펴 보시라) 그렇게 자꾸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는 정말로 그 정도로 귀여울까 반문했다. 그때는 셋째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라 아직 만나보지도 못 했으니, 그 말이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글쎄, 정말 그렇게 귀여울까? 진짜 뿅 하고 나오면 첫째랑 둘째와는 다른 느낌이 들까?’하는 의문이 무럭무럭, 궁금함과 기대감도 모락모락.




셋째가 2019년 6월, 드디어 세상 빛을 보았다. 회복실에서 솔이를 안아 들고 요기조기 살펴봤다.

‘야, 정말 피는 속일 수 없구나, 눈은 랑이랑 똑같은데 얘는 쌍꺼풀이 혼자 없네, 그것 참 신기하네. 코도 언니 닮은 것 같고, 입은 오빠 닮았나? 그나저나 정말 작구나. 랑이와 람이도 이렇게 작았었나? 여자애인데 머리숱은 왜 이렇게 없지, 날 닮으면 안 되는데. 랑이도 처음에는 머리숱이 많이 없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평온한 기색으로 누워있는 아내를 보았다. 아내는 랑이나 람이 때보다 감동이 컸던 것 같다. 솔이를 가슴팍에 올려놓고 두 아이의 출산 후와는 다르게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것을 보니, 제왕절개로 셋째까지 출산한 엄마의 마음은 아빠와도 많이 다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청 벅찬 마음으로 셋째를 안아 들고 막 엉엉 울거나 터지는 울음을 참느라 흡흡흡 하지는 않았다. 참 작았지만 그만큼 무거웠다. 첫째나 둘째를 안았을 때보다도 더욱 무거웠다. 둘에서 셋으로 넘어가는 육아 구간이 단순히 더하기가 아닌, 제곱 이상임을 짐작했기에, 또한 가장으로서 더욱 많은 식구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사무쳤기에, 그때는 오히려 탄생의 감격을 마음껏 누리기보다는 비장하게 마음의 각오를 굳건히 했던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셋째를 내려다보았다. 안 귀여웠다.


셋째가 집으로 왔다. 솔이가 초반에는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느라 새벽에도 자주 깨 앵앵 댔다. 아이를 둘이나 길렀으니 그 정도는 당연히 예상했다. 그래도 우유 잘 먹여 배가 좀 부르면 솔이는 곧잘 잤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새벽에도 거의 안 깨고 풀로 자기 시작했다. 첫째보다는 둘째의 성향을 닮은 것 같다. 솔이가 사실 특별히 아빠, 엄마를 위해서 한 것은 없다.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했을 뿐이지만 무척 고마웠다. 잠을 잘 때나 평상시에 깨어 있을 때나 아직 움직일 단계는 아니라 마치 인형 같았다. 상호작용하는 재미가 없어서였는지, 아니면 상대적으로 첫째와 둘째를 챙겨야 하는 의무감 때문이었는지 셋째에게 관심을 많이 못 줬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우리 솔이, 그래서 그런지 조금만 귀여웠다.


셋째가 나와 눈을 정면으로 마주치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낸다. 롸저. 내가 웅엥웅엥 하면 자기도 웅엥웅엥. 뭔가 통하는 느낌에 계속 말을 건다. 솔이도 적극 반응한다. 그렇게 의미도 통하지 않으면서 어떤 교류는 일어나는, 기묘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름을 부르면 싹 돌아본다. 호오, 너는 이제 인형이 아니구나. 양 팔과 양다리를 버둥버둥 대면서 배밀이를 하다가 어느 순간 다리로 땅을 지지한 다음 팔로 짚은 땅을 당겨 뒤로 훌쩍 보낸다. 본능에 새겨진 행동, 또는 살다가 습득한 신체 원리를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니 이제는 집을 구석구석 탐험하는 모험가가 되었다. 솔이는 아빠가 있는 곳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다. 아빠가 퇴근하고 들어오면 솔이는 “으아아아아~” 하는 괴성을 지른 다음 아빠 발을 향해 쓱 기어 온다. 아빠가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 솔이는 어디선가 삭 나타나 아빠를 보고 방싯방싯 웃은 다음에 쓱쓱 최선을 다해 기어 온다. 아빠가 거실의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을 때 작은 방에 난방 텐트 속에서 자다 일어난 솔이는 텐트 입구의 천에 걸려 악전고투를 벌여도 포기하지 않고 그 난관을 기어코 뛰어넘는다. 험난한 여정에도 불구하고 솔이는 아빠와 눈길이 서로 닿으면 빙그레 웃어준 다음, “헤헷 헤, 기아야야악~” 하는 특유의 기합 소리와 함께 아빠를 향해 치열하게 쓱쓱쓱 기어 온다. 아빠를 향해 온 힘으로 땅을 짚으며 기어 오는 솔이, 네가 이렇게 귀여운지 몰랐다니, 아빠 실격이구나.

너는 그렇게 하나의 시련을 뚫고 나에게 와 주었다.




와쿠다 미카의 <미운 네 살, 듣기 육아법>에서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는 ‘내 아이라면 내가 혼을 내고 못할 짓을 해도 엄마인 나를 좋아해 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부모가 무슨 짓을 해도 무슨 말을 해도 아이는 부모를 용서해준다. 아이는 언제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엄마인 나를 감싸 안아준다.
- 출처 : 와쿠다 미카, <미운 네 살, 듣기 육아법>


문득 솔이에게 미안했다. 아빠가 먼저 귀여워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솔이가 아빠에게 귀여움으로 와 주었다. 아빠가 먼저 관심을 주었어야 했는데, 여러 이유로 그동안 솔이에게 무관심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솔이는 아빠를 먼저 반겨주었고 늘 아빠를 찾아내어 기어와 주었다. 육아가 단순히 자녀를 키우는 것이 아닌, 자녀와 부모가 함께 성장한다는 관점을 많은 육아책에서 강조하는데 솔이와 나의 경우에도 딱 들어맞는다. 사랑하는 딸, 우리 가족의 마지막 퍼즐인 솔이가 아빠를 더욱 아빠답게 크도록 사랑으로 감싸 안아 주고 있으니 어찌 귀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꿈에 그렸던 다섯 가족의 완성도 이만하면 안성맞춤이다.






<후기>


#1. 솔이 탄생의 배경?

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두 아이의 잠버릇과 관련한 요인이 큽니다. 첫째인 랑이는 예민한 편이라 배고프든, 바스락 어떤 소리가 들리든, 미세한 빛이 스쳐 지나가든, 작은 반응에도 금세 깨어서 엄마와 아빠를 힘들게 했지요. 그리고 그 취침 패턴이 꽤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첫째의 취침 특성을 고려한다면 아내가 둘째를 낳기로 결심하는 것은 사실 대단한 결단이었습니다.(첫째로 끝날 뻔했지요. 람이와 솔이를 못 만날 뻔했습니다.) 다행히 둘째인 람이는 첫째와 다르게 우유 한 번 잔뜩 먹으면 배를 두드리며 끝까지 잤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하나 더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두 배로 잠을 설치거나 하지는 않았지요. 하하. 순하디 순한 람이의 영아 시절이 저와 아내에게 용기를 불어넣었고 결국 막연하게 생각했던 자녀 계획의 마무리, 셋째 출산에 도전하게 하였습니다. (대신 랑이는 일춘기가 빨리 끝났고 람이는 현재 일춘기가 생각보다 오래가고 있습니다. 말을 엄청 안 들어요. 고집도 세고요. 누나에게도 엄청 짓궂게 굽니다. 흑흑. 람이의 일춘기가 어서 빨리 끝나길. 지금은 그저 사랑으로 기다릴 뿐입니다.) 

랑람솔 남매 합체!


#2. 와쿠다 미카, <미운 네 살, 듣기 육아법> 미니 리뷰

아동 심리나 발달 과정과 같은 전문적인 정보를 원한다면 다른 책을 보시고, 일상생활에서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육아 원칙과 실제 사례, 대처법 등을 원한다면 한 번 읽어보세요. 제목이 미운 네 살이라고 되어 있긴 한데 제 생각에는 완전 영아만 아니라면 대체로 다 적용 가능한 육아법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자세한 리뷰로 나중에 만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로라도 배웠으면 좋겠다 ; 2월 육아도서 10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