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에세이. 낙장 불입, 육아의 세계에서 아빠로서 살아가기
랑이(6살)가 거실에서 유튜브를 보다가 갑자기 방에 있는 나에게 뛰어든다. “아빠, 무서워.”하며 내 품을 적극적으로 파고드는데(새삼 그렇게 적극적일 수가 없다) 왜 그런지 물어보면, “무서운 광고야, 무서워, 이상한 게 나와.”하며 얼굴을 가슴팍에 묻는다. 알고 보니 좋아하는 만화의 에피소드가 한 편 끝나고 나면 다음 동영상으로 넘어가는 그 사이에 좀 이상하고 괴기한 분장을 한 캐릭터나 사람이 나오는 광고가 뜨는 것이었다.
하긴 람이(4살)도 아무 생각 없던 시기를 지나 요즘에는 무서움이라는 것을 알아 버렸다. 동영상을 보다가 조금이라도 자기가 무섭다고 느끼면 나에게 막 달려온다. 곧 “무서, 무서.”하며 태블릿 쪽을 손가락질하고 다시 나를 본 채 어깨를 움츠리면서 “무서, 무서.”하며 오들오들 떠는 시늉을 한다.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저 무서워하는 아이들을 꼭 안아주고 손 붙잡고 가서 광고를 넘겨주는 정도? 그래도 아빠가 그렇게 반응해주면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안심해서 다시 공룡이나 콩순이나 미니 특공대에 집중한다. 이때 문득 떠오르는 질문. 내가 지금 무서워하는 건?
지금 떠오르는 건……, 곤충일 까나? 진심이다. 학교가 강릉에서도 변두리에 있는 칠봉산 밑에 있어 굉장히 자연 친화적이다. 여기서 자연 친화적이라는 것은 각종 곤충, 벌레가 많다는 의미와 상통하다. 최근에 수업할 때도 귀뚜라미나 노린재가 슬쩍 들어와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어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그럼 나는 담담한 표정과 달리 속으로는 뭉크의 <절규> 속 주인공처럼 비명을 지른다.(요새 애들 말로 깜놀한다고 하지요. 벌레 너무 무섭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빗자루를 가져와 혼내주고 내쫓는 와중에 다시 한번 나에게 펄쩍 달려들어 자기 마음을 받아달라고 내 옷자락이라도 붙잡을까 봐 단단히 대비를 한다. 몇몇 아이들이 선생님은 정말 용감하다고 엄지 척하지만, 얘들아, 사실 그렇지는 않단다. 빗자루로 여러 번 스윙하는 동안 혹시라도 그 곤충이 나를 덮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내 동체시력은 초긴장 상태이고 팔과 다리의 근육에는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너희들은 알 수 없었겠지……. 간혹 왕벌이라도 등장하면 그땐 완전 얼음이 된다. 애들한테 “야, 반응하지 마. 벌은 가만히 있으면 안 쏘이니까, 괜히 난리 치지 마라.”하며 쿨 한 척하지만, 행동은 정반대이다. 물리면 아프니까.
곤충을 처음부터 무서워했던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그 당시는 국민학교였지만)는 오히려 곤충은 내 친구였다. 그 당시 살던 곳도 강릉의 노암동 근처였는데 본격적인 개발이 이루어지기 전이었다. 동네를 조금만 벗어나면 논과 밭, 숲과 무릎 정도로 자라 늘 바람을 먼저 맞는 풀이 가득한 들판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 시절을 추억해 보면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그때는 사마귀나 잠자리, 방아깨비 등 어지간한 곤충들은 다 맨손으로 만졌다. 올챙이를 잡으러 논두렁을 매일같이 헤맸다. 논두렁 속에 혹시 있을 수도 있는 거머리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곤충 친구들이 서식하는 들판에서 뛰놀고 친구들과 풀밭을 뒹구는 것은 일상이었다. 곤충 친구들아,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을까.
오히려 곤충보다 다른 것이 더 무서웠던 시절이었다. 해가 져서 어두컴컴해지면 친구들한테 들었던 귀신 이야기들과 TV에서 인기 중에 방영되었던 ‘전설의 고향’ 속 귀신들의 이미지가 자꾸 떠올라 날 무섭게 했다. 화장실 거울에서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고, 한밤중 깜깜한 방구석에는 정체불명의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를 내려뜨린 여자가 서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밤중에 아버지나 어머니가 잠깐 밖으로 뭘 사 오라고 시키거나 집 밖의 창고 같은 곳에서 뭘 가져오게끔 하면 몹시 원망스러웠다. 늘 벌벌 떨면서 전후좌우를 살피고 접근했다가 용무를 마치면 전력 질주로 돌아오곤 했다. 무섭다고 툴툴 대면 남자가 뭐 그런 것을 갖고 무서워하냐는 핀잔으로 배만 불렀다.(그래서 지금 뱃살만 잔뜩 있는 것은 아닐까? 하하……, 죄송합니다. 비겁한 변명이었네요.)
특히 아버지에겐 내가 귀신을 엄청 무서워했던 것이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맨날 아버지가 겁쟁이라고 놀리고 자존심을 긁으면서 도발하셨는데, 그중 하이라이트는 한밤중의 무덤가를 산책하는 담력 훈련이었다. 당연히 나 혼자서는 안 나가려고 뻗대었다.(무서우니까, 무덤가에 누가 한밤에 가고 싶겠어요.) 그런 나에게 아버지는 늘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나와는 다르게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을 이용하여 나의 경쟁심을 자극했다. 어린 시절 동생에게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은 형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아니면 미안하다. 어떻게든 변명하고 싶어서……, 흑.) 아버지가 운동선수 출신이어서 그런지, 살살 자존심을 긁어서 따라오게 하는 것을 잘하신다. 담력 훈련에 억지로 데리고 나가려고 그날은 살살이 아니라 정말 박박 긁어서 결국은 동생이 먼저 앞장서고, 내가 중간에, 아버지가 맨 뒤에 서기로 했다. 동네를 조금 벗어나 을씨년스럽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무덤을 향해 걸어갔다. 인가도 드문 곳이라 불빛도 거의 없고, 소리는 그저 바람 소리, 부엉이 소리, 풀 밟히는 소리 같은 것들뿐. 동생 뒤를 졸졸 따라가다가 괜히 섬뜩하여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가 없는 게 아닌가. 순간 당황했는데 갑자기 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쿵, 너무 놀라서 그대로 뒤돌아 집을 향해 우사인 볼트처럼 달렸던 기억이 있다. 내 줄행랑은 그렇게 흑역사가 되었다.
이제 불혹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는 오히려 곤충을 무서워하고 귀신은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해 보자면, 전자는 허클베리 핀처럼 지내던 강릉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안양으로 이사 간 후부터, 자연과 멀어진 도시 속에서 살게 되니 결국 곤충과 친구로서는 결별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후자는 자라면서 귀신 이미지에 많이 노출되었기도 하고, 사실 귀신보다 세상에는 더 무서운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다만 아빠가 된 후부터 곤충보다 무서운 것이 생겼다. 곤충은 목격하는 그 순간만 무섭고 꺼리는 마음이 들뿐이지, 눈앞에서 사라지면 내 마음속에서도 금세 사라진다. 하지만 이것은 그 순간에도 놀라면서 잘못될까 봐 무섭고 그 이후에도 계속 생각이 난다.
첫째가 태어난 지 몇 개월 좀 안 되었을 때이다. 아침에 침대 앞에서 급하게 외출 준비를 하는 중에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랑이가 바닥에 대자로 엎드린 채 무지막지하게 통곡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잠깐이면 괜찮겠지 하고 내가 보던 랑이를 침대 위에 올려놓았는데, 얘가 혼자 막 움직이더니 눈 깜작할 사이에 침대에서 떨어진 것이다. 부딪히던 소리가 제법 컸고 랑이의 울음소리도 심상치 않았기에 아내도 부엌에 있다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아내는 너무 놀라 당황한 채로 울먹울먹 했고 손과 발은 동동거렸다. 랑이를 바로 안아 상태를 확인했는데 코피가 살짝 나고 입안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코피가 나니 혹시라도 뇌 쪽에 문제가 생겼나, 오만가지 걱정이 몰려오면서 나도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느낌이었다.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무서워 원래 일정은 뒤로 미룬 다음, 랑이를 데리고 바로 병원 응급실로 갔다. 다행히 엑스레이나 기타 검사 결과 타박상만 있었다. 그날 아내한테 엄청 혼났다. 아빠로서 처음 겪어보는 정말 무서운 순간이었다.(이런 교훈을 얻었는데 나중에 둘째도 똑같이 침대에서 떨어졌다. 역시 혼나고, 셋째는 그래서 아주 조심 중이다. 이제는 아예 침대에는 올려놓지 않으려고 한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최근 등이 오싹한 경험을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조심하지 않으면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루는 아이들이 거실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화제가 시사 뉴스로 옮겨갔을 때, 내가 “그 새끼들은 그게 문제야.”하는 식으로 격한 언어를 사용했던 것 같다. 조금 있다가 랑이가 “새끼가 뭐야? 새끼야.” 이러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게 아닌가. 가슴이 철렁했다. 잘 수습하기 위해 랑이에게는 “아빠가 나쁜 말 썼어. 미안해. 랑이는 그런 말 쓰면 안 돼요.”하고 말았지만 정말 가슴이 철렁한 순간이었다. 아빠로서 엉뚱한 본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은 늘 무섭다.
그러니 육아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할 것은 못 된다. 깊은 고민 없이 아이들과 즐겁게 어울리고 놀기만 한다면야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러면 아빠가 아니라 일일 베이비시터에 머무는 수준이 아닐까 싶다.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금 또는 나중에 고생하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혹시라도 내 잘못된 말과 행동으로 인해 아이들이 잘못될까 봐, 잘못 클까 봐 걱정스럽다. 어떻게 보면 아빠이기 때문에 육아의 순간이 때로는 겁나고 무섭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겁나도 할 수 없다. 이미 아빠가 되었으니까. 낙장 불입(落張不入)이다. 손을 털 수 없는 육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무서워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선을 다하여 무서움을 극복한 시간만큼 또한 가치 있는 것도 없다. 처음에는 기저귀 가는 법도 몰라 어쩔 줄 몰라하고, 분유 타는 법을 몰라 아이들의 배고파하는 괴성에도 발만 동동 구르고, 첫째 목욕시킬 때 혹시라도 놓칠까 봐 잔뜩 긴장했던 초보 아빠의 밑에서 랑이가 58개월을, 람이가 33개월을, 솔이가 8개월을 그럭저럭 잘 지내온 것을 보면 대견스럽다. 랑이가 약 3~4살쯤 어디서 배워왔는지(어린이집에서 배웠겠지) ‘아빠, 힘내세요’를 부르고 날 꼭 안아줬던 순간은 무척 감동이었다. 람이가 3살쯤 아빠 잘 자라고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공룡 인형을 나에게 주고 갔던 순간도 참 따스했었다. 솔이가 이제 아빠를 향해 무한 포복으로 달려오는 것을 볼 때마다 기특할 뿐이다. 아빠로서 이런 판이라면 물릴 수 없어도 오히려 대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