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이유로 공립학교를 그만두고 대치동 학원가에 진출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국어 계의 일타강사가 되어 평생 쓰고도 남을 돈을 긁어모으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었다. 시작은 내실 있는 국어 전문 학원이었는데 그 학원은 시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오가는 학생 수는 엄청났고 선생님들에 대한 페이도 충분하게 지불했다. 여기서 경력을 몇 년 쌓으면서 입소문만 잘 타면 온라인 일타강사와 직장인처럼 낮에 일하는 재수종합반 강사가 되는 것도 꿈이 아니리라.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운명이었다. 국어 전문 학원이었기에 학교별 내신 대비 수업과 수능 대비 수업은 기본이었고, 거기에 독서 및 논술 수업을 추가적으로 운영했다. 나도 중등부, 고등부에서 학교별 클래스(예를 들어 대치중반, 경기고반 등)를 맡았었다.
학교보다 학원이 좋았던 점하면, 먼저 전적으로 강의에 집중할 수 있었던 점을 강조하고 싶다. 상담 실장님이 학생 관리를 다 해주셨기 때문에 나는 강사로서 수업 간 학생들과 래포 형성만 잘하면 그 외에는 신경 쓸 것이 없었다. 내 수업의 질을 높이는 데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또한 강사 역량과 학원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수업 스터디를 매주 1~2회 정도 진행했었다. 학원 내 모든 강사가 모여 강의 방식과 내용에 대해 토론하고 원장님 앞에서 시범강의를 하는 식이었는데, 시강 후에는 원장님의 자상한 피드백을 받았고(음, 정확히 이야기하면 샌드백이 되었다) 그 여파로 하루 종일 끙끙대기도 했다. 시강을 포함한 수많은 수업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강의 역량이 안 늘면 이상한 상황이었다.(그때를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했나 싶을 정도로 빡셌다.)
그리고 학생들의 집중력이 남달랐던 점도 꼽을 수 있겠다. 대치동 학원생들의 수업 내 반응은 공교육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내 역량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공립학교에서 수업할 때에는 어떤 식으로 하든지 간에 교실에서 3~4명은 자거나 딴짓하는 학생들이 있었고 그 학생들이 나에게는 항상 과제였다. 반면 학원에서는 어찌 보면 지루한 강의식 수업이 90분 동안 계속되는 데도 그런 학생이 없었다. 아마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훈련받아 왔던 시간과 환경의 차이, 강의실 내 인원의 차이, 동기 부여의 차이 등 핵심 요인을 하나로만 특정할 수 없을 만큼 여러 이유들을 열거할 수 있다.(다만 여기서는 공립학교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학원가에서 경험한 신기한 현상을 소개하려는 것이니 불편하시더라도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그런 장면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볼펜이 종이 위에 미끄러지는 소리만 울려 퍼지는 교실에서 강사가 오른손으로 칠판 위쪽을 지목하면 십여 명의 학생의 눈이 온통 그곳으로 쏠린다. 다시 강사가 손을 떼고 잠시 왼쪽으로 이동하면 모든 눈이 왼쪽으로 이동하며 강사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리느라 실내가 조용해진다. 다시 강사가 칠판 쪽으로 붙어 판서하기 시작하면 모두 고개만 위아래로 까닥거리면서 쓱쓱 필기하는 저마다의 소리가 일체감 있게 하모니를 이룬다. 학생들의 손, 고개, 눈 외 다른 신체 부위는 일체 움직임이 없다. 매우 절제된 자세로 공부하는데 좋게 얘기하면 바른 자세와 집중력을 유지하는 학습 습관이 잘 형성되어 있는 것이고 슬프게 얘기하면 그저 공부하는 기계 같다. 이것은 당시 대치동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강하게 훈련되어 왔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다. 이렇게 학원 시절 경험을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가 있다. 이들이 이런 학습 태도만 그 긴 시간 동안 단련했을까. 다른 것은 어떨까. 당신은 이 질문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루는 학원의 중학생 클래스에서 <운수 좋은 날>을 읽고 독서 토론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가정 폭력으로 당장 신고당했을 츤데레 김 첨지와 간절히 바랐던 설렁탕을 먹지 못한 채 목숨이 다한 그의 아내의 안타까운 삶을 요목조목 들여다보고 당시 일제 강점기 시절의 사회 구조와 우리 민족의 어두운 삶을 설명한 후, 특별히 하층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현재와 연결하여 성찰해 보는 등 인물을 둘러싼 다양한 배경과 시사점까지도 함께 이야기를 나눌 계획이었다. 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아마 그 수업이 특별하게 기억에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업 막바지에 자유 토론을 진행하는 중 “김 첨지가 가난하게 살게 된 핵심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아이들에게 던졌다. 다양한 의견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고등학생에 비해 중학생은 정말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김 첨지 개인에게도 원인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대적 배경을 심도 있게 다뤘으니 사회 구조적인 부분을 원인으로 제시하는 아이들도 절반 이상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면 아이들끼리 토론을 붙인 후 내가 정리할 때, 가난의 문제는 개인 차원으로 국한시켜서는 안 되는, 사회 구조까지도 고려해야 할 문제임을 제시하면서 여러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적 의식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을 키울 것을 호소하며 마무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원인에 대한 답변을 듣는 지점부터 내 의도는 망했다. 비율로 말하자면 10명 중 8명 정도가 가난의 원인을 김 첨지 개인의 탓으로 돌렸고, 남은 2명 정도가 개인보다 사회 구조의 모순 때문이라고 답했다. 예상보다 편차가 컸다. 8명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아무리 힘들고 가난해도 개인이 더 열심히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잖아요. 열심히 노력해서 잘 된 사람도 많은데 사회 탓하면 안 되지 않나요? 김 첨지가 노력 안 한 게 잘못이죠.”
젊은이들이 세태를 풍자할 때 자주 사용하는 단어 ‘노오오오력’이 창창한 10대 청소년의 입에서 나올 줄이야. 한 아이의 대답에 다른 아이들이 꽤나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아이들은 자신의 배경지식을 덧붙여서 첫 의견의 논지를 강화하기도 했다. 사회 구조를 원인으로 지목한 학생들은 소수에다 토론 분위기가 한쪽으로 이미 급격히 기울어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전개하지 못했다. 물론 김 첨지를 주된 원인으로 제시한 학생의 의견도 존중한다. 그럼에도 입맛이 씁쓸하고 뭔가 찝찝한 것도 사실이었다. 수업이 끝났을 때 결론은 결국 두 사람의 잘못, 바로 가난해도 극복 못 한 김 첨지 잘못, 토론을 원활하게 진행하지 못한 신묘 샘 잘못. 참으로 서글픈 수업이었다.(그 아이는 토론을 위해 낸 의견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은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고 토론 중에 이야기했다.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자기 것을 나눠줄 수 없다고 얘기했더랬지.)
알베르트 반두라는 보보 인형 실험을 통해 아이가 어른의 행동을 보고 배운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3~6세의 남녀 아이들을 A와 B그룹으로 나눈 후, A그룹에게는 어른이 보보 인형을 폭력적으로 갖고 노는 장면을 보여주었고 B그룹에게는 어른이 보보 인형과 차분히 소꿉놀이를 하는 등 온건하게 노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그다음, 각 그룹별로 아이들을 보보 인형이 있는 방에 들어가게 한 후, 20분 동안 실험자는 자리를 비웠다. 어떻게 되었을까? 충분히 예상이 되겠지만 그렇다. 어른들이 하던 모습 그대로 아이들이 재연하면서 놀았다. A그룹의 아이들은 보보 인형의 머리를 수차례 가격하며 괴성을 질러댔고 B그룹의 아이들은 보보 인형을 껴안거나 같이 소꿉놀이하며 그다지 공격적인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속담 중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는 속담이 왜 만들어졌는지 알 것 같다.
<운수 좋은 날>을 읽고 김 첨지의 삶에 연민하지 못한 아이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타고났던 것일까. 반두라의 실험에 따르면 절대 그럴 수는 없다. 그 아이들도 자라면서 주위의 어른을 보고 배웠겠지. 부모님이나 다른 동네 어른이 보여준 행동이 그런 것밖에 없었으니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그대로 따라 했겠지. 요즘 아이들이 LH 아파트에 사는 친구를 엘사(엘에이취에 사는 사람)라고 놀리고, 휴먼시아에 사는 친구를 휴거(휴먼시아에 사는 거지)라고 괴롭히며 전세나 월세로 사는 친구를 전거지, 월거지라고 하며 차별한다는 기사를 보면 서글프다. 그런데 이건 그 아이들만의 잘못인가? 그 아이들만 개선하면 해결될 개인적 영역인가? 대치동 아이들이 김첨지의 노력 부족이라고 개인 탓을 한 것처럼 그렇게 아이들에게만 화살을 돌리면 될 문제인가?
서울 마포구 주상복합 메세나폴리스는 4~10층에 임대 가구 주민이, 11층부터 29층까지는 분양 가구 주민이 산다. 이 아파트는 불이 나도 임대 세대 주민은 옥상으로 대피할 수 없다. 임대 세대 쪽과 연결된 비상계단은 10층까지만 있기 때문이다. 1층부터 옥상까지 이어지는 계단은 분양 주민만 이용할 수 있다. 별도의 계단, 별도의 엘리베이터는 임대 주민과 분양 주민의 간극을 심화시킨다. 물리적인 거리, 정신적인 거리 모두 계층화해야지 속이 시원한 모양이다. 단지 내 카페에서는 몇 동 몇 호인지 확인한 후 임대 주민에게는 커피를 팔지 않는다. 헬스장은 비좁다는 이유로 분양 주민들이 임대 주민들의 시설 이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의견이 커뮤니티에 자주 올라온다. 청년들이 말하는 헬조선의 축소판이 아닌가 싶다. 이런 어른들과 함께 사는 아이들이 과연 무엇을 보고 배울 수 있을까.
휴거는 원래 기독교 종말론에서 사용하는 용어인데, 하나님이 의인을 하늘로 들어 올리는 현상을 말한다. 의인이 하늘로 올라가려면 먼저 이 사람이 의인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심판이 선결되어야 한다. 그렇게 심판으로 구분된 뒤 하늘로 올라가든, 땅으로 처박히든 할 것이다. 지금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엘사, 엘사 하며 차별하고 휴거, 휴거 하며 그들을 멸시한다면, 조심하자. 언젠가 같은 죄를 지은 우리 모두가 사이좋게 손잡고 휴거 당할 수 있음을. 나와 우리, 우리 사회가 하늘이 아닌, 땅으로 언제든지 처박힐 수 있음을. 앞으로 메세나폴리스 같은 곳이 더욱 늘어난다면 더 이상은 변명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