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자주 할수록 서글퍼지는 말
아이가 셋이라, 요구도 다양하고, 가끔 그 요구들이 겹치는 경우가 생긴다. 아내가 설거지하느라 내가 셋째 기저귀를 가는 중에 첫째와 둘째가 옆에 장승처럼 지키고 서서 사탕을 꺼내 달라한다. 첫째가 큰 것을 싸고 난 후 뒤처리를 하고 있는 중에 둘째가 자기 쉬하는 거 도와달라고 화장실 문 앞에서 떼를 쓴다. 등원시키느라 둘째 옷 입히고 있는 중에 첫째가 혼자서 공주 옷 입기 힘드니 아빠가 입혀달라고 보챈다. 그럴 때마다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으니, 바로 ‘기다려’다.
내가 자주 아이들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긴 했나 보다. 여전히 보채던 둘째에게 나도 모르게 성이 나 ‘기다려!’라고 소리친 어떤 날, 아내가 내 분노의 외침을 글로 써보면 어떻겠냐고 쓱 던졌다.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니 관련된 에피소드도 많고, 그럭저럭 잘 엮으면 재밌는 글 하나 나오지 않겠냐고.(음, 에피소드는 많지만 잘 엮을 실력은……, 있나? 흠흠.) 여하튼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무의식적으로는 ‘기다려’라는 말이 머릿속에 남아 여러 기억을 헤집었다.
아무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다려’와 관련된 주인공은 역시나 첫째나 둘째이다. 그 둘에게 기다리라고 말했던 대부분의 순간은, 음, 그다지 훌륭하거나 긍정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난, 아이들에게 자꾸 기다리라고 말할 때마다 죄책감이 든다. 좋은 아빠는커녕 오히려 내가 아이들의 주체성과 독립성을 억누르는, 발달 과정의 장애물이 된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몸은 하나이니 동시다발적으로 몰려오는 요구에는 반사적으로 그 말이 튀어나온다. 그렇지 않으면 빚쟁이들이 달려드는 것과 같은 상황에 넋을 놓아버릴 수도 있기에, 정신줄 부여잡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위안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기다리는 힘도 아이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나름대로 일상에서 연습시키는 중이다. 둘째 람이는 아직 혼자서 대소변을 처리할 능력이 없어서 방출 전 기다릴 것을 끊임없이 말해주고 있다. 소변기를 정확한 위치에 딱 갖다 대줄 때까지 람이가 기다려야 하는데 간혹 기다리지 못하고 싸버리면 대략 난감이다. 오줌이 내 손과 람이가 입고 있는 바지에 묻기도 하고, 양이 많을 때면 내 옷에 튀거나 바닥에 주르륵 흘러내릴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순간 짜증 나서 사자후를 내지른다.
첫째 랑이도 마찬가지다. 랑이는 원하는 것을 엄청 재촉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그런 행동이 나나 아내의 심기를 간혹 건드린다.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가끔 랑이가 와서 과일 달라고 요청한다. 내 딴에는 아무래도 고무장갑도 끼고 있고, 하고 있는 설거지도 마무리해 놓고 싶어 일단 기다리라고 한다. 그러면 랑이의 보채기가 시작된다. ‘과일 주세요, 과일 언제 먹어요, 아빠 과일 언제 줄 거야’를 옆에 와서 수십 번 이야기하니, 결국 짜증 폭발과 함께 고성이 발사된다.
첫째나 둘째나 모두 내 고함에 깜짝 놀라 몸을 흠칫하며 떠는 것을 보면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아직도 멀었구나 싶은 자조감으로 착잡해진다. 두려움으로 흔들리는 아이들의 눈동자들이 내 마음 깊숙이 아프게 박힌다. 인내도 중요하지만 정작 아이들의 반응은 인내를 배우기보다는 아빠의 호통을 그저 감내하는 법만 배우고 있는 것 같다. 기다리는 것의 중요성이 아닌, 아빠의 꾸지람을 순간순간 견디어내는 법만 체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쩌면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기다림을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부정적인 감정을 방출하면서 해소하는 쾌감에 나도 모르게 중독되어 정작 아이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편의를 위해 아이들의 마음은 도외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시를 내리면 군말 없이 말만 잘 듣는 아이들로 자라기를 은연중에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이 마음속에서 꼬리를 물다가 불현듯 서글퍼졌다.
육 년 전 이 맘 때였다. 그 날은 강릉 학교 캠퍼스에서 아름다운 꽃과 푸른 나무, 선선한 바람과 함께 했던, 좋은 날이었다. 늘 그렇듯 학생들과 재밌게 수업하고, 동료 선생님들과도 농담하며 흘려보낸 잔잔한 일상이었다. 별 탈 없이 그날도 잘 보내던 중 공강 시간에 잠깐 뉴스를 검색하다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내 그 감정은 애달픔과 비통함을 바뀌어 나를 덮쳤다. 1교시가 막 시작하려고 할 때 일어난 사건이었다. 구조 중이었는데 좋은 소식은 많지 않았다. 처음에 속보로 보도된 전원 구조도 오보로 판명되는 등 무척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사건이 발생된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알 수는 없었기에 그저 비통해하며 발만 동동 굴렀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우리 반 학생들에게 이 소식을 어찌 전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너무나도 거대한 슬픔이었기에 학생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이 충격적인 사건을 알 권리가 있었다. 수업 시간이었나, 아니면 종례 시간이었나.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교실에 들어가서 이 사실을 전했다. 역시나 그 소식을 듣고 어떤 학생은 고개 숙여 울기 시작했고 어떤 학생은 괴로움으로 울부짖으며 분노했다. 어떤 학생은 나에게 와서 이렇게 질문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냐고. 도대체 그 배의 어른들은 무엇을 했느냐고……. 해줄 말이 없었다. 대한민국의 어른 중 한 명으로서 그 학생들의 괴로움과 슬픔, 분노를 그저 묵묵히 받아주어야 했고, 그 이후 나나 학생들이나 모두 서글픈 차분함으로 학교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스러져간 아이들에게 침몰하는 배 안에서 되풀이되었던 말도 이거였다.
‘기다려라, 가만히 있으라.’
아빠의 지시에 군말 없이 따를 것을 랑이와 람이에게 암묵적으로 강요했던 것이 세월호 참사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은 생각이 들어 몸서리쳤다. 지나친 생각이라고? 그렇지 않다. 나와 같은 어른들이 가정이나 학교와 같은 사회 곳곳에서 아이들의 의식을 무비판적인 복종에 길들여지도록 무의식적으로 강요한다면, 침묵과 공포 속에서 그저 입만 다물게 되는 국가는 금세 만들어진다.(사실, 예전에 만들어진 지 오래 아닌가) 아이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결실을 기대하며 자발적으로 인내하는 진짜 기다림이 아닌, 그저 처벌받지 않기 위해 입 다물고 복종해야만 하는 가짜 기다림 밖에 배우지 못하는 국가라면 같은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답 없는 의문만 늘어가니 마음만 답답할 뿐이며, 요즘 뉴스 사회면을 보면서 여전히 못난 어른을 보고 잘못 배우고 있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아 부끄러울 따름이다.(고등학생이 성 착취 방을 운영한 것은 결국 누구를 보고 배운 것이겠는가.)
참사도 벌써 육 년이 지났다. 그 일 이후로 우리 어른들은, 얼마나 바뀌었나? 나는 과연 어떤 어른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답은 여전히 낼 수 없지만, 그저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여섯 살 먹은 딸을 바라보며, 오늘보다 떳떳한 내일을 사는 어른이 될 것을 다짐해 볼 뿐이다. 여섯 살 먹은 딸의 고사리 같은 손을 매만지며, 적어도 우리 세 아이들과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에게 배울 만한 점이 하나는 있는, 그런 괜찮은 어른이 될 것을 다짐해 볼 뿐이다.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버린, 천 개의 별이 되어 버린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다.
임형주,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가을에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당신을 지켜 줄게요
나의 사진 앞에 서 있는 그대 제발 눈물을 멈춰요
나는 그 곳에 있지 않아요 죽었다고 생각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