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에세이. 다뉴브 강에 잠든 이들을 기리며, 그의 가족들을 위로하며
그것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나는 죽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났다.
나와 J 선생님은 학생들을 데리고 1박 2일의 현장 체험 학습을 진행하였다. 기억의 시작은 2일차 아침이었다. 학부모님들과 함께 하는 가족 캠프 형태의 체험학습이었던지 둘째 날 아침에 몇몇 학부모님과 앞으로 체험학습을 어떻게 더 잘 꾸려나갈 수 있을지 피드백을 받았다. 그리고 모든 일정이 끝난 후 학생들을 데리고 복귀하는 도중, 나는 죽었다.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저 학생들을 위해 희생하여 죽었다는 정도만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구체적인 죽음의 과정은 빠르게 스킵되었다. 시점이 바뀌고 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외부 화자처럼(유령처럼?) 집에 있는 가족을 보게 되었다. 하랑이와 예람이가 거실에서 놀고 있고 아내는 부엌의 의자에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하랑이가 아내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 언제 와? 그러자 아내는 입술을 깨물며, 멀리 가셔서 좀 늦게 오실 거야라고 차분하게 대답하였다. 하랑이는 아내를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고 다시 동생이랑 놀기 시작했다. 아내는 그런 하랑이를 보다가 천천히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욕실 안쪽에 부착된 거울을 보다가 아까의 담담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눈물을 펑펑 쏟으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입에서 나오는 울음소리를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그 작은 손으로 연신 입을 부여잡았다. 희미하면서도 끊길 듯하면서 끊기지 않는,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것과 같은 신음 소리가 욕실을 가득 메웠다. 그것을 보고 있던 나도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심장을 연결하는 혈관이 하나씩 끊어지는 것처럼 가슴이 가빠지고 아팠다. 아내가 우는 것을 보고 있던 나도 소리를 내면서 울기 시작했을 때, 그 울음소리가 내 입을 비집고 엉엉 밖으로 흘러나왔을 때, 나는 눈을 떴다. 어느덧 따사로운 아침 햇볕이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던 나를 따스하게 쓰다듬고 있었다. 꿈이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 정말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헝가리에서 많은 한국인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이 크루즈와의 충돌로 침몰했다. 한국인 33명 중 7명이 구조되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사망했거나 실종되었다. 언론은 다양한 관점의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사고 현황과 원인, 사고의 법적 처리 과정, 유람선을 탄 승객들의 사연, 피해자 가족들의 절규에 찬 목소리, 정부 대응의 장단점 등을 다룬 것들이 순식간에 주요 뉴스의 상위권을 차지하였다.
우리 아내의 관심사는 주로 각 승객들의 소서사, 그리고 피해자 가족의 심정이었다. 아내는 사고가 난 날부터 매일 한 번 이상은 유람선 사고에 대해, 속절없이 스러져 간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상실감과 비통함에 차있을 가족들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나는 그것을 계속 들었다. 들을 때마다 또 다른 나 역시 그것은 그야말로 '비극'이라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리고 토요일 밤에 나 역시 죽고 말았던 것이다.
꿈에서 깨어난 다음 날 아침, 뭔가 헛헛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잠깐의 활동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글을 쓰는 일요일 오후, 평상 시라면 그림자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전날의 꿈들이, 오늘은 그 그림자가 매우 길어서 결국 이 마음을 글로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엇이 그런 꿈을 꾸게 한 것일까? 아내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던 그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눈물 흘리는 모습만이 아니라 아내가 욕실에서 그렇게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던 그 절절한 심정까지. 어쩌면 헝가리 유람선 사고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아내의 심정이 전이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 가족들의 뼈저린 슬픔에 공감해 보고 싶었던 나의 마음이 꿈에서 아내의 울음으로 투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꿈의 배경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눈물은 분명 나의 것이었다.
헝가리 유람선 사고로 가족을 잃은, 그럼에도 다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남은 가족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마음이 아프다. 우리 가족에게도 그런 비극이 닥쳐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기에 더욱 공감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것, 그렇게 연대함으로 그들이, 그리고 미래의 나도 아픈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 살아내야 하는 삶이기에. 그것이 인생이기에.
다뉴브강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헝가리 시민들의 모습. 생면부지인 한국인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그들에게 감사하다. [출처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