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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묘 Oct 08. 2019

아이들과 나의 황홀한 첫 경험

육아 에세이. KTX를 타고 서울역으로, 우리 셋이 고고씽

  하나뿐인 남동생이 결혼한다. 내년 2월의 약속된 날을 향하여 그 대사에 함께 하게 된 모든 이는 운명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올라타 질주하게 되었다. 마지막 정거장까지 잘 도착하기 위해서 중간에 만나는 정거장을 무사통과해야 한다. '이번 정거장은 상견례, 상견례 역입니다. 정차 후 다시 출발하오니 출발 시간에 늦지 않게 열차에 타시길 바랍니다.'라는 방송과 함께 상견례 역에 도착하였다. 상견례는 9월 한가위 지나고 나서 이루어졌다. 사돈 어르신 내외도 부산에서, 나 역시 강릉에서 올라와야 하는 상황이라 장소는 두 지역 모두 KTX로 용이하게 만남이 가능한 서울역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KTX와 서울역이라는 조건은 아빠로서 처음 경험하는 육아 여행을 떠나게 해 주었다.(동생아, 참 고마웠다. 하하하.)


  셋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가족 모두가 참석하는 것은 무리수라 판단하였고, 그래서 아내와 처음 합의한 것은 내가 첫째를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KTX 기차표를 알아보니 유아 동반석으로 두 좌석을 예매하게 되면 약 3만 4천 원 정도를 결제해야 했다. 사실 이때 더 알아보지 말고 그냥 결제했으면 아마 상견례 당일의 사정이 더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지나친 호기심은 위험하다는 명언도 있지 않았는가. 사뿐히 그 위험성을 즈려 밟았다. 사전에 코레일 홈페이지에서 우리 가족을 다문화 가족 할인 대상으로 등록을 해놓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비용 절감이 이루어지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다문화 할인 대상은 좌석을 3개 이상 예매해야만 적용 가능하기 때문에 조건을 맞추고 예매 비용을 확인한 결과, 이게 왠 걸? 다문화 할인을 받은 세 좌석의 결제 비용이 아까 두 좌석 비용보다 천 원 정도 저렴했다. 난 깜짝 놀랐을 뿐이고, 그래서 아내에게 이 놀라운 사실을 공유했을 뿐인데, 여기서 상황이 바뀌게 되었다. 아내는 첫째 혼자만 가면 둘째가 집에서 심심할 수 있으니 고생스럽겠지만 아이들 기차여행도 하고 서울역도 구경하는 등 견문을 넓혀주는 차원에서 둘을 데려가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너무 힘들 것 같으면 원래 계획대로 첫째만 데려가도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이 말에 왠지 아빠로서 오기가 생겼다는 것은 함정......)


  아내의 말에 솔깃했다. 물론 몸은 더 힘들긴 하겠지만 아이들과 기차 여행을 하면서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것도 좋은 아빠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하는 로망이 퐁퐁 샘솟기 시작했다. 언뜻 달콤해 보였던 그 샘물에 잔뜩 취하여 세 좌석을 장고 없이 결제해 버렸다. 그 후 KTX를 타는 상견례 당일까지 하나? 둘? 하나? 둘? 계속 마음이 갈팡질팡하면서도 어느새 디데이인 9월 28일 토요일 9시 20분, 강릉역 KTX 대합실에서 나는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기저귀, 물, 물티슈, 과자와 젤리, 아이들용 태블릿과 거치대 등이 담긴 무거운 가방만큼 안전하고 즐거운 상견례 육아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책임감 또한 무거웠다. 간혹 서울역과 같은 혼잡한 장소에서 아이를 놓치는 부모의 절규와 상실감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떠올랐다.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천진난만한 두 아이와 함께 서울행 KTX에 올라탔다. 


  강릉과 서울 방면에서 운행되는 KTX 산천은 5호차에 유아 동반석이 위치해있다. 아이들이 어떤 난장을 펼칠지는 조금 예상되기 때문에 최대한 배려받을 수 있는 열차칸에 있어야 한다. 5호차에 들어가 좌석을 확인한 후,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자마자 첫 번째 난관에 부딪혔다. 내 원래 계획은 의자 2개에 첫째와 둘째를 나란히 앉히고 나는 그 뒤의 좌석 하나에 앉아서 계속 시중을 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앉자마자 내가 같은 공간에 없다는 것을 알고 칭얼대기 시작했다. 둘이 잘 앉아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을 빗나가 버렸다. 이때 천사가 나타났다. 내 옆 좌석에 먼저 앉아있던 젊은 여성분이 자기는 좌석을 돌려도 괜찮다고 나에게 얘기했다. 나는 이 말을 처음에는 금방 이해하지 못했다. 

  '좌석을 돌린다는 게 무슨 얘기지?'

  내가 의아해하는 눈으로 쳐다보니 그분이 한 번 더, 

  "앞에 있는 좌석을 돌려도 된다고요."

  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왜냐고? 나는 좌석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방금 처음 알았거든!


  우와, 우와 하면서 "어떻게 돌리는 거예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기차 물정 모르는 내가 답답했던지 같은 라인의 반대쪽 좌석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바로 일어나 의자 밑에 있는 레버를 발로 누르면서 살짝 의자를 밀자 빙글 하면서 아이들이 앉아 있던 좌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담담한 표정과는 다르게 마음은 이미 놀라움과 경탄의 연속이었다.(세상에, 여러분, 저 혼자 여태 좌석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거예요?) 아이들은 나와 마주 보게 되자 안정을 찾았고 이내 바깥 구경하다가 내가 건네 준 과자를 먹으면서 자기들끼리 놀기 시작했다. 이로써 첫 번째 난관을 극복하였다. 이 글을 빌어 마음씨 따스했던 이름 모를 이웃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강릉역에서 서울역까지는 약 2시간이 걸린다. 아이들은 1시간은 잘 버텼지만 결국 남은 1시간이 매우 지루했었나 보다. 다시 칭얼칭얼 대려고 하길래 번개 같이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내 KTX 와이파이에 연결하여 아이들에게 넘겨주었다. 첫째는 공주와 함께 동화 속 세상으로 놀러 갔고, 둘째는 공룡의 세계로 탐험을 떠났다. 태블릿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지만 주위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보여줄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그렇게 육아 과정에서 태블릿 의존이 더 심해지게 되었다, 나나 아이들이나...... 흑.) 이렇게 두 번째 난관도 빠른 조치로 큰 탈 없이 넘어가게 되었다.


  서울역에 도착했다. 장소는 서울역 안에 위치한 한정식 식당! 12시가 상견례 시간인데 약 20분 동안 늦지 않게 부지런히 달려가야 한다. 가방을 다시 메고 휴대용 유모차를 열차 밖으로 내린 다음,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안아서 내려주었다. 둘째가 유난히 오래 걸으면 격렬한 반응을 표출하기 때문에 유모차는 필수였다. 첫째는 내 옆에서 씩씩하게 잘 따라왔다. 오랜만에 와본 서울역은 역시나 엄청난 인파로 정신없었고 혼잡스러웠다. 첫째도 이렇게 사람 많은 곳은 처음이었나 보다. 나에게, 

  "여기는 싫어. 사람이 너무 많다." 

  계속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딸아, 나도 동감이다. 아빠도 이제 서울에서 살 자신은 없구나. 

  딸이나 나나 여유 있고 한가로운 시골 도시 생활에 매우 익숙해진 것 같다. 그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목적지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오늘의 중요한 거사를 치를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둘째는 유모차에 타고 있으니 잃어버릴 염려는 전혀 없지만 첫째를 혹시 놓칠까 봐 계속 옆에 잘 있는지 신경 쓰면서 이동했다. 어느덧 약속 장소인 한정식 집에 도착했다. 우리가 마지막이었다. 내 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사돈 어르신의 가족이 먼저 와있었다. 부모님 얼굴을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이 둘을 나 혼자 오롯이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부모님과 나눌 수 있기에, 그렇게 하여 잠시라도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어색하면서도 나름의 화기애애한 대화 속에서 나는 아이들이 나중에 배고프면 또 밥 달라고 칭얼댈까 봐 열심히 밥과 반찬을 입으로 날랐다. 아이들은 잘 받아먹다가 계속 앉아서 얌전히 밥만 먹는 게 지겨웠는지 이내 방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세 번째 난관, 이렇게 방에 계속 있는 상태에서 이 아이들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태블릿을 또다시 보여주기에는 너무 횟수가 빈번하다. 그런고로 최선의 해결책은, 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마음껏 움직일 수 있도록 같이 놀아주는 것이었다. 빠른 판단에 따라 신속하게 움직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밖에 나오니 유모차를 가지고 지들끼리 잘 논다.

  

그렇게 노는 도중 상견례 자리는 거의 마무리되었다. 세 번째 난관도 잘 극복한 뒤, 짐을 챙겨 식당에서 나왔다. 기차 탑승 시간은 오후 2시이었는데 식사가 1시 10분쯤 끝나 기다려야만 했다. 먼저 사돈 어르신 가족과 송별 인사를 나눈 후, 우리 가족은 서울역 3층? 4층? 아무튼 그쯤에 있는 수많은 카페 중 빈스 베리에 들어가 음료를 마시면서 함께 기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노트북에서 램 용량을 잡아먹는 다양한 작업을 동시에 하면 내부에 열이 오르는 것처럼 상견례의 자리에서 형의 역할하랴, 아이들 건사하랴 정신없었던 나의 뜨거웠던 정신 속을 청량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달랠 수 있었다. 첫째는 할머니 옆에 앉아, 둘째는 내 무릎에 앉아 블루베리 요거트 스무디를 쪽쪽 열렬히 빨아 마시고 있었고, 나도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던 중 둘째가 마시다가 뭐가 불편했는지 갑자기 몸을 뒤틀면서 커피를 들고 있는 나의 오른팔을 팍 쳐버렸다. 내 손에 들려있던 그 유리컵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낙하해 버렸고, 지면과 맞닿은 순간 처절하게 박살이 났으며 커피는 껄떡거리는 개가 여기저기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한 오줌처럼 바닥과 의자 곳곳에 자신의 존재감을 뿌렸다. 와, 카페에서 컵이 깨지는 사건이 벌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행히 가족이 있어서 같이 대응했기 때문에 빠르게 수습이 되었지, 나 혼자였다면 멘탈이 바로 퓨즈 끊어지듯이 나가버렸을 것이다.(아, 아마 혼자였으면 카페에 안 들어가긴 했을 것 같다. 하지만 무슨 수로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30분 넘게 서울역에서 강릉행 기차를 기다렸을까 생각해 보면 그것도 보통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네 번째 난관은 이렇게 도둑같이 찾아왔다가 순식간에 물러갔다.


  카페에서의 해프닝 후 열차를 탈 시간이 되어서 가족과 송별 인사를 나누고 아침에 기차에 탔던 것처럼 동일하게 올라탔다. 예매한 좌석으로 가보니 내 옆좌석에 앉을 사람이 아직 오지 않았는지 자리가 비어 있었다. 여기서 내가 섣부르게 판단했다. 어쩌면 내 옆자리가 아예 비어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좌석을 돌려 서로 마주 보게 미리 배치했다. 바람은 바람으로 끝났다. 어떤 아저씨가 내 옆자리로 오더니 마주 해놓은 좌석을 보고 매우 곤란한 표정을 지었고, 나에게도 "이건 좀......" 하며 난감해했다. 그래서 다시 좌석을 원위치를 시켰다. 오늘 여정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난관이었다. 아이들이 아빠가 안 보이면 당연히 칭얼댈 것은 분명했다. 결국 좌석 하나를 희생했다. 내가 앉을 좌석에는 가방과 같은 짐을 올려놓았고 나는 아이들 좌석 두 개의 사이에 앉아 양 옆에 첫째와 둘째를 끼고 강릉까지 두 시간을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가면 갈수록 의자 사이에 껴서 앉아있는 것이 몸에 부담을 주었다. 엉덩이와 등이 아팠다. 의자끼리 서로 맞닿은 테두리가 내 등을 반으로 나누려고 했다.(등에 선이 그어지는 줄 알았다. 그 느낌 알죠?)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했다. 두 시간 동안 도저히 이런 육신 상태에서 아이들의 심심함을 내가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태블릿을 오늘은 더 이상 보여주지 않겠다는 결심을 빠르게 포기했다. 오디세우스의 심정으로 고향을 향해 기차를 달리는 동안 첫째는 약 1시간 30분 동안 태블릿을 보면서 평안한 시간을 보냈고 둘째는 많이 피곤했는지 내내 잠을 잤다. 시간은 정직하다. KTX는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고 나는 셋째를 데리고 마중 나온 아내의 차를 두 아이와 함께 탈 수 있었다. 강릉의 오디세우스는 그렇게 페넬로페와 재회하고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아내가 그날 밤 나에게 물었다. 

  "할 만했어?"

  그때는 그저 피곤한 목소리로 "괜찮았어. 재밌었어. 할 만했어."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그 후 첫째는 서울 기차 여행이 재밌었다고 가끔 나에게 이야기한다. 사람이 많아서 다시 가고 싶지는 않지만 즐거웠다고. 둘째 하고는 더욱 친밀감이 붙은 느낌이다. 시도 때도 없이 이제는 안긴다.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이 아빠를 아빠로서 존재하게 한다. 내가 아빠임을 잊지 않게, 아빠로서 무한동력을 갖고 살게끔 한다.

  다시 아내의 물음을 떠올려본다. 할 만했어?라는 질문에 그때는 변변찮고 식상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간 지금이라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아빠로서 매우 황홀한 순간이었어.

  정말 여러 모로, 다양한 의미에서 황홀함에 물든 하루였다. 

  첫째와 둘째에게나, 초보 아빠에게나 다시는 찾아오질 않을 황홀한 첫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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