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받은 마음의 상처 , 우리는 어떻게 상처를 회복하는가
-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의도와 상관없이 상처받고 힘들어하고 또 그렇게 극복해나간다.
하지만 상처받는 것도 극복하는 것도 어렵기만 하고 때때로는 상처받은 마음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하며 묵은 감정으로 남기도 한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는 각각의 인물은 상처를 가진 채 살아가고 상처받은 이들이 치유되어가는 과정과 회복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세 인물의 갈등을 보여주는데
주인공인 가후쿠는 딸의 죽음 그리고 그 충격으로 외도를 저지르는 아내에 상처받고
아내의 외도를 알고도 묵인하며 지내다 아내의 죽음을 방치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가후쿠의 와이프인 오토는 딸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외도를 범하고 다니지만, 그것을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남편을 보며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마지막 가후쿠의 드라이버 미사키는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받은 학대로 인한 상처와 산사태 당시 어머니의 죽음을 방치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세 인물의 공통점은 자신은 상처받았음을 그리고 아프다는 표현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그게 자신의 업보인 듯 마음속에 꼭꼭 숨기고 누구에게도 들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상처를 들여다보길 거부하며 상황을 외면하려고 하거나 도망가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절대 맞서거나 해결을 원하지 않으며 언급되기 조차 거부한다.
감독은 이러한 인물들을 '차 안'이라는 공간을 이용하여 그들이 가까워지게 되고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과정을 3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천천히 진행시킨다.
' 차 안'이라는 밀폐된 공간 속에서 그들은 대화를 통하여 서서히 가까워지게 되고,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감독의 의도는 단순히 서로의 만남과 위로가 타인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의 이야기를 통하여 마치 거울처럼 상대방의 상처를 들여다 봄으로서, 자신이 잊고 싶었던, 외면하고 있던 자신을 상처를 들여다보는 게 되는 것이다.
상처받은 이들이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자신이 아파했음을 인정할 때, 진실한 자신을 마주했을 때 그 상처들은 회복할 수 있다고 감독은 말하고 싶은 것이다.
게다가 가후쿠이든 미사키이든 그들에게 상처를 준 대상 그리고 그들이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대상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남자와 외도로 상처를 주었던 가 후쿠의 아내도 자신을 학대하여 상처 주었던 미사키의 어머니도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상처받았음에 분노할 대상도 용서를 빌 대상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어떠한 용서도 변명도 들을 수는 없다. 이 공허한 현실 속에 남아 있는 건 본인들 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상처를 인정하고 극복해 나가며 계속해서 이어질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연극인 바냐 아저씨에서도 잘 드러난다.
모든 것을 잃고 분노와 허망함만 남은 바냐에게 소냐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위로하지 않는다.
삶은 그저 계속 지속될 것이고, 결국 삶의 끝에서 우리는 신에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상처받은 삶을 살았다고..
가후쿠와 미사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삶은 계속해서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삶의 끝에서 다시 만난 이들에게 한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상처받았었다고.